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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일대 학살행위를 .........
 진실
 2016-09-05 20:51:49  |   조회: 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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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총, 기관총, 따발총 그리고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일대 학살행위를 .........


..... 현장에서 피살자 24명, 부상자 3,500여명, 체포된 자 1,000여명,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자 200여명 ......... ]





[ ..... 평북 유일의 수산기술학교 .... 폐쇄하여 공산당 정치훈련소로 ....... ]



[ ..... 전위대인 폭도들을 동원하여 군중들을 강제해산 ..... 많은 학생들을 부상 .......

.... 홍석황 장로가 공산폭도들의 폭행을 막으려 하자 ..... 그 자리에서 타살 ........ ]





< 45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의거 특별기고 >



당신들은 신의주 학생 반공의거를 아는가?!


조동영 / 평북민보 주필 학생의거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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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학생들은 왜 들고 일어났는가



8.15 해방의 기쁨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 북쪽에는 소위 해방군이라는 명목하에 소련의 붉은 군대가 진주했다. 원래 공산주의 본질과 공산당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던 북한 사람들은 그래도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준 군대라 하여 감사의 환대와 존대의 마음을 표시해 보였다.


그런데 이 붉은 군대가 북한 백성들의 기대와 의사에 반하여 살인, 방화, 강도, 강간 등 갖은 만행을 자행하여 해방의 희열과 흥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온 북한 천지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초조의 생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비로소 그들은 해방군이 아니라 日帝(일제) 이상의 침략군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애국국민들은 점차 이들과 또다시 투쟁해야 할 역사적 운명을 지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붉은 군대의 주구인 북한공산도당들은 그들과 야합하여 그들의 만행과 비행을 비호하면서 합리화하기에 급급해 했다. 친일파가 사라지면서 다시금 매족, 매국의 반역행위를 보게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계급투쟁과 숙청이라는 이름아래 무고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추방하는 동족상잔의 반역행위를 저질렀다.
특히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과의 국경지대로 소련군과 공산군 출입의 관문이 되어있는 만큼 그들의 행패가 막심했다. 아울러 평북도청 소재지로 공산당 본부가 자리 잡고 있어 공산당들의 횡포와 만행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점차 그들의 탄압은 신성한 학원에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즉, 학교 교사를 마음대로 징발하여 그들의 병사 내지 숙소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일부 학교는 완전히 폐쇄하여 공산당 정치훈련소로 개칭하여 학생들에게 공산주의와 共産黨史(공산당사)를 가르치며 우리민족문화를 말살하고 대신 공산노예교육 주입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학생들은 학원의 신성과 자유를 부르짖으며 공산賊徒(적도)들의 행패와 만행을 규탄하고 기회만 있으면 총궐기할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위 행진하는 학생 집중사격 24명 즉사, 3천5백여 명 부상



이렇게 민심이 날로 악화되어가자 공산도당들은 소련 진주군의 만행과 야욕 그리고 자기들의 비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위에 시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이른바 군중대회를 개최했으나 이러한 대회는 도리어 그들의 악정과 만행을 규탄하는 성토대회로 변하는 사태가 비일비재 하였다.


때마침 11월 21일 평북 용암포(신의주에서 80리 떨어진 항구도시)에서 인민위원회(당시는 정치위원회) 주최로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시민대회가 열렸다.

이날 식순에 따라 각계 대표자의 기념사가 있었는데 당시 평북학생자치대 용암포 대표가 연설하게 되었다. 학생대표는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공산당의 불법행위를 규탄했다. 특히 당시 용암포에는 평북 유일의 수산기술학교가 있었는데 공산당이 학교를 폐쇄하여 공산당 정치훈련소로 대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생대표가 공산당의 불법행위와 행패 등을 지적 성토하자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군중들은 이에 호응 공명하면서 박수와 환성으로 그간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폭발시켰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용암포 공산당 당수인 이종흡은 공산당 전위대인 폭도들을 동원하여 군중들을 강제해산시키면서 학생들과 충돌했는데 그들을 곤봉과 철제 체인 등을 휘둘러 많은 학생들을 부상시켰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던 용암포 제일교회 홍석황 장로가 공산폭도들의 폭행을 막으려 하자 그들은 홍장로를 그 자리에서 타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신의주 소재 남녀 7개 중학교로 구성된 평북학생자치대는 11월 23일 오전 9시 남자 중학교(6개교) 3,500여명을 대표하는 간부학생들이 신의주 제일공업학교 강당에 모여 공산당 타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이날 오후 2시(처음에는12시) 정각을 기해 총궐기하여 일제히 행동을 감행키로 결의했다. 그리고 6개 학교를 3개조로 편성하고 평안북도 보안부와 평북공산당 본부 그리고 신의주시 보안서를 각각 담당하여 진격 점거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총궐기를 사전에 탐지한 평안북도 보안부장 한웅(평북공산당수)은 공산당의 비정과 만행을 규탄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외치며 맨주먹으로 행진하는 나이어린 학생들에게 소총, 기관총, 따발총 그리고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일대 학살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많은 희생자를 냈다. 당시 학생들의 투쟁상황과 공산당들의 천인공노할 만행 등은 상술할 수 없으나 여하간 결과는 참담했다. 현장에서 피살자 24명, 부상자 3,500여명, 체포된 자 1,000여명,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자 200여명 등, 우리나라 학생 독립투쟁 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희생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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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탄압 질곡에서 해방되자 소련 제국주의가



일제 36년간의 질곡과 탄압에서 우리는 8.15해방으로 조국광복을 맞이했으나 이 해방의 희열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운명은 다시 우리 젊은 학생들로 하여금 일제 대신 신판 적색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반소, 반공의 피어린 투쟁을 강요당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 애국 학생들의 피어린 발자취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기록한 것이며 또한 그 업적도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결국 해방된 조국을 적화하려던 국제공산주의자들의 흉책을 끝까지 분쇄하기 위해 우리 학생들이 또 다시 정의의 투쟁과 희생을 아끼지 않은 것이 바로 신의주 학생반공 의거이다.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의거가 항일투쟁의 대표적 학생봉기라면 신의주학생 반공의거는 반공투쟁의 대표적 학생의거로서 우리역사에 길이 남을 학생의거의 양대산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도 광주학생의거의 날인 11월3일을 ??학생의 날??로, 신의주 학생반공의거의 날인 11월 23일은 ??반공학생의 날??로 제정 공포했다.(오늘날 이 두 학생기념일은 행정령 간소화라는 구실아래 취소됨)



동독, 헝가리보다 수십 년 앞선 반소 반공 학생의거



돌이켜 보건데 오랫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에 기인한 문화봉쇄정책 아래 있던 우리민족이 새로운 소련 적색제국주의의 정체와 진상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자유세계의 어느 국민이나 정치가들도 철의 장막 뒤의 크레믈린의 음흉한 정책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2차 대전이 끝난 후 10년 혹은 2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세계는 점차 그 체험과 관찰을 통해 비로소 크레믈린의 야욕의 정체를 인식하며 각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청년학생 특히 신의주의 젊은 학생들은 불과 3개월간의 경험으로 적색침략주의와 그 포악상을 정확히 간파하고 민족자주권과 자유수호의 희생자로서 반공의 선구가 되어 우리나라 반공투쟁의 효시를 이루었다는 데에 신의주학생반공의거의 역사적 의의와 교훈이 있다할 것이다.


신의주학생반공의거 때 나이어린 학생들의 맨주먹 시위에 북한공산적도들과 소련 붉은 군대는 야만적인 잔학행위를 감행했다. 그들은 일제 장총을 비롯해서 권총, 따발총, 기관총, 심지어는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의거진압에 혈안이 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반공의거가 얼마나 치열했으며 또한 심각했던가를 가히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다.



1953년 6월 동독노동자들의 반소시위사건, 1956년 10월 헝가리 국민의 반공의거, 1968년 8월 체코 국민의 반소의거 등에서 소련은 모두 군대를 진격시켜 이들 의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더욱이 56년 헝가리 반소 반공의거 때는 그 잔학성에 대하여 전 세계 자유 진영 국민들의 분격을 자아내어 헝가리 의거민들에게 격려의 서신과 위문품을 보내게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사회단체연합회 주관으로 위문품을 모아 국제 적십자사를 통해 전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동유렵 인민들의 의거 보다 10년 내지 20년 훨씬 앞선 1945년 11월23일의 신의주 학생반공의거 때 그들은 벌써 전차 아니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반공인민을 학살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신의주학생반공의거를 계기로 소련은 수많은 청년학생들을 체포, 구금하여 그중 약 200여명을 시베리아에 유형을 보냈다. 즉, 신의주 학생반공의거에 관련하여 체포된 소위 정치범(실은 애국자)들이 우리 한국민족으로서는 시베리아 유형 제1호가 된 셈이다. 그 후 북한에서는 소위 중대정치범들은 이 시베리아 유형이 상례가 되었다.



신위주의거가 이북 각지의 학생의거 계기적으로 촉발


일찍이 우리는 한 주권국가 국민이 타국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노예노동을 강요 당하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들어 보지도 못했다. 이것만 보아도 공산주의에는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할 것이다.


신의주 학생의거야말로 우리나라 집단적 반공투쟁의 시초로 조국해방투쟁사상 특히 반공투쟁사상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으며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또한 당시 이 의거를 계기로 분열, 분산되어 있던 북녘의 민족세력을 결합시켜 반공투쟁역량을 강화한 정치적 의의도 과소평가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각종 반공의거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촉진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의거를 계기로 북녘 각지에서는 요원의 불길처럼 반공 반소의거가 계속 일어났다. 즉, 1946년3월4일 함북 길주의 고려학생동맹의거, 동년 3월 30일 함흥 학생의거, 동년 5월 평양 학생의거, 49년 1월 황해도 해주 학생의거, 50년 10월13일 역시 황해도 신천학생 유격대 투쟁 등이 학생의거를 비롯해서 청년, 일반시민들의 각종 반소 반공의거가 점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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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forum.co.kr/bbs/view.php?id=all&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10


<45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의거 특별기고>


당신들은 신의주 학생 반공의거를 아는가?!

조동영 / 평북민보 주필 학생의거 참가자










[ ..... 임신중인 ... 부인을 배를 갈러 죽이였고 .........

...... 부녀의 젖·배·음부·볼기등을 함부로 찔러 미처 절명되기전에 땅에 생매장 .......... ]




조병옥, 제주소요사건과 관련 공산계열의 만행 폭로


1948년 06월 08일

경향신문 1948년 06월 09일



조경무부장은 공산계열이 감행한 만행의 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남조선의 질서를 교란하고 치안을 파괴하여 북조선과 같이 소련에 예속시키려는 공산계열의 목적달성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무자비한 폭동만행은 총선거실시에 따라 민중에 대한 공포심 주입과 단말마의 최후 발악으로 더 한층 포학과 잔인성을 나타내었으니 그 일예를 제주도 폭동에서 들면 다음과 같다.



폭동이 일어나자 1읍 12면의 경찰지서가 빠짐없이 습격을 받었고 저지리 청수리 등의 전 부락이 폭도의 방화로 전부 타버렸을 뿐만아니라


그 살상방법에 있어 잔인무비하여 4월 18일 신촌서는 6순이 넘은 경찰관의 늙은 부모를 목을 짤러 죽인후 수족을 절단하였으며 대동청년단 지부장의 임신 6개월된 형수를 참혹히 타살하였고


4월 20일에는 임신중인 경찰관의 부인을 배를 갈러 죽이였고 4월 22일 모슬포에서는 경찰관의 노부친을 총살한 후 수족을 절단하였으며 임신 7개월된 경찰관의 누이를 산채로 매장하였고


5월 19일 제주읍 도두리서는 대동청년단간부로써 피살된 김용조의 처 김성히와 3세된 장남을 30여명의 폭도가 같은 동리 김승옥의 노모 김씨(60)와 누이 옥분(19) 김중삼의 처 이씨(50) 16세된 부녀 김수년 36세된 김순애의 딸 정방옥의 처와 장남 20세된 허연선의 딸 그의 5세 3세의 어린이등 11명을 역시 고히숙집에 납치 감금하고 무수 난타한 후 눈노름이라는 산림지대에 끌고가서 늙은이 젊은이를 불문하고 50여명이 강제로 윤간을 하고 그리고도 부족하여 총장과 죽창·일본도 등으로 부녀의 젖·배·음부·볼기등을 함부로 찔러 미처 절명되기전에 땅에 생매장하였는데 그중 김성히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어왔다.


그리고 폭도들은 식량을 얻기 위하여 부락민의 식량 가축을 강탈함은 물론 심지어 부녀에게 매음을 강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등 천인이 공노할 그 비인도적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총선거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平壤에서는 거의 매일 이것을 방송........



..... 2월 7일 이후 그들이 범한 폭동·파괴·살인·방화 등 건수(3월 23일 현재)는 다음과 같이 전율을 금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경찰관서 108개소 ..... 경관피살 24인 ........]





한민당, 선거문제에 관해 임위에 메시지 전달


게재지명 동아일보


게재일자 1948년 04월 11일, 1948년 04월 13일, 1948년 04월 15일

날짜 1948년 04월 11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원조하기 위하여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총선거를 온전히 수행하도록 할려는 귀 위원단의 가지 가지의 고심과 노력에 대해서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귀 위원단이 늘 고조하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특히 본당은 이에 대하여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당은 과거에 있어서 당수 宋鎭禹씨와 정치부장 張德秀氏를 살해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금번 선거에 있어서도 입후보자를 암살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절대적 요망은 안심하고 입부호도 하고 선거운동도 하고 투표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 위원단이 특히 이 점에 유의하시는 것은 크게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금번 귀 위원단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취한 방침은 결과에 있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파괴하게 될 우려가 많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할려는 목적과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선거를 잘하기 위해서 선거에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입후보도 하고 마음대로 투표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민중으로 하여금 강제로 선거에 보이코트시킬 목적으로 폭동·파괴·방화·살육 등 수단을 不擇하는 사람들에게 그 행동을 마음대로 하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서 제공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유엔의 결의에 보이코트하는 모국의 지령을 받아서 이번 총선거를 방해할려는 북한의 인민위원회에서는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대해서 총선거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平壤에서는 거의 매일 이것을 방송하고 있는 것을 우리들 자신의 귀로 직접 듣고 있습니다. 이 지령을 실행하기 위해서 2월 7일 이후 그들이 범한 폭동·파괴·살인·방화 등 건수(3월 23일 현재)는 다음과 같이 전율을 금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경찰관서 108개소
테러 102건

경관피살 24인
동 부상 75인

경찰가족 피살 1인
동 부상 9인

관공리 피살 3인
동 부상 16인

양민 피살 12인
동 부상 131인

총기 피탈 79건
탄환 피탈 1,305발

기관차 파괴 61량
객차화차 파괴 11량
기차노선 파괴 13건
전화선 절단 214건
통신기구 파괴 9건
전주 절달 72본
동력선 절단 5건

경찰관서 방화 5건
관공서 방화 3건
양민가옥 방화 28건
관공서 파괴 13건
양민가옥 파괴 15건
도로교량파괴 29건



그리고 최근 북한에서 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선거 때는 북한의 공산군이 38이남으로 쳐내려 온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신경전을 위한 일종의 모략적 풍설이라고 하더라도 선거일 임박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더욱 광범위로 파괴·방화·살육 등 소위 무자비한 투쟁을 할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연백지방에서는 음료수 우물에 독약을 투입하는 등 행동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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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이 침묵하면 현역 장교들이 발언할 때


"이 영화로 해서 정훈교육이 안된다. 국방부 장관이 나서서 이 영화의 집단발포 장면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어야 사병들이 동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충정어린 건의를 할 때이다.



趙甲濟




오늘 점심 때 40代 후반의 여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지난 여름에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봤다고 한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하여 적어도 수십 명을 학살하는 장면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울었다고 했다.


"말로만 들었던 광주사태가 저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국군이 이런 집단이구나 하는 분노도 치솟았습니다. 내가 아들이 있다면 절대로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며칠 전 조갑제닷컴에서 그 장면이 조작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더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린 데 대한 배신감이랄까요? 그런데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저처럼 속아넘어갈걸요?"


공수부대원들이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와 버스에 깔려죽지 않으려고 조건반사적으로, 자위적으로 발포를 시작했다. 여러 차례 조사에 의해서 확정된 이 사실을 날조하여 '평화적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조준사격'으로 둔갑시킨 영화사는 "이 영화는 사실을 근거로 극화했다"고 하여 관객들에게 사실로 믿을 것을 권유한다.


70만 국군의 사기를 지켜야 할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은 국민들이 공수부대를 살인집단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한 이 영화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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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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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노동청 앞 쪽에서 경찰병력이 돌진하는 시위대 차량에 의해 4명이 압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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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시위대들은 몽둥이, 쇠파이프, 쇠갈고리, 도끼 등 흉기가 될만한 것은 전부 다 들고 있었으며 시위상태도 이전과 약간 달라졌습니다"


"장갑차 1대만 빠른 속력으로 도망가는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여 계엄군 1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충장로 쪽으로 갔습니다.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해 들어옴과 동시에 시위대 쪽에서 총소리가 연발로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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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column.asp?P_Index=52348


"영화 '화려한 휴가' 90% 이상 조작"

광주사태 진압 공수부대 지휘관들 기자회견에서 밝혀



김동문 칼럼니스트, kdm0003@never.com





광주사태 당시 전남도청 책임자였던 11여단 61대대장 안부웅, 62대대장 조창구 예비역 대령 등 공수부대 출신 장교들은 군을 반군으로 왜곡 조작한 영화 ‘화려한 휴가’는 대선을 앞두고 80년 광주사태 당시 공수부대의 자위적 진압작전을 시민들에 대한 '집단학살'로 왜곡한데 대해 당시 작전을 직접 지휘했던 예비역 장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전사령관 출신의 민병돈 예비역 중장을 비롯한 공수부대 출신 장교들은 21일 전쟁기념관 무궁화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화려한 휴가'가 전남도청 앞에서 있었던 공수부대의 '자위적 사격'을 애국가를 부르는 평화적 시위대에 대한 집단적 발포로 왜곡한 제작자의 사실왜곡과 이를 방관한 국방부에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성명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는 공수부대의 광주사태 진압과정을 편파적'악의적'정치적으로 왜곡'조작했다'면서 국방부는 이와 관련 장병 특별 정훈교육을 실시 할 것 등을 요구하며 '오는 30일까지 영화 제작사가 공수부대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의 자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광주시민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1980년 5월 21일 대낮에 전남도청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광주시민들이 먼저 '화려한 휴가'의 왜곡을 지적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광주사태 당시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안부웅 대령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아 소총에 실탄을 장전한 뒤, 무릎 쏴 자세를 취한 다음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히 사격하는 장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도,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도 없었던 점을 강조했다.



이날 광주사태 당시 진압과정에서 오른쪽 팔을 잃은 조창구 예비역 대령은 '어제 그제 두 번 연속으로 영화를 봤지만, 영화의 90%이상은 조작됐다'고 지적한 뒤, 군 조직체계상 민간인에게 어떻게 집단 발포하는 작전을 할 수 있겠는가. 여태껏 진술한 모든 진실은 외면됐다. 그 결과 '화려한 휴가'라는 날조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지난 95년 서울지검 국방부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에는 당시 공수부대의 발포는 시위대가 탈취한 장갑차를 몰고 군인들을 향해 돌진, 공수부대원을 깔아 사망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위적 조건반사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안 대령은 '오늘까지 진실을 반복해 얘기해왔지만, 일부 사람들만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뿐'이라며 '영화를 보니 너무 황당하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검찰, 청문회, 대법원 판결까지 확실히 규명된 것을 왜곡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병돈(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예비역 장군은 광주사태 당시 '민간인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소총 기관총 장갑차로 중무장 한 뒤, 헬기를 향해 사격하고 교도소를 습격했다,면서 '167명의 민간인과 함께 4명의 경찰관 23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그렇다면 광주시민과 공수부대도 다 같은 역사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민 장군은 이어 '지난 27년간 광주사태에 대한 여러 차례, 여러 측면의 조사를 통해 진실이 다 드러났는데도, 이런 반군날조를 한 제작사측은 '이 영화는 사실을 근거로 극화했다'는 취지의 말을 자막에 넣어 사실인 것처럼 꾸몄다'면서 '공수부대를 살인집단으로 믿고 있을 이 영화를 본 많은 국민들에게 이제는 국군이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 주최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장경순(자유수호국민운동 명예의장) 전 국회부의장, 이대용(자유수호국민운동 공동의장) 전 주(駐) 월남 공사, 김홍렬 재향군인회 해군부회장, 김병관 서울시재향군인회장 등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안부웅 씨의 증언 중 일부 요지 <5.18 수사자료 중에서>




"군중들이 "와와" 소리를 지르며 호응한 뒤, 칼과 도끼 등을 든 사람들이 시위대의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병력 바로 앞에까지 와서 도끼로 병사들의 철모를 툭툭 치면서 "이 새끼를 이걸로 골을 빠개 버려?", 그리고 가위, 칼 등을 눈앞에 대고 "이걸로 눈을 쑤셔버려?" 등의 위협을 해 우리 병사들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병력들은 꿈쩍도 않고 있었습니다."


"차량 싸이렌을 울리며 가보니 어느 은행 앞에 저희 1개 팀 8명이 2백여 명의 시위대에게 포위 당해 그야말로 돌과 화염병으로 타작을 당하는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며 도망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싸이렌을 울리고 가니까 시위대들이 후속부대가 오는 줄 알고 사방으로 도망갔습니다. 시위대가 해산하고 난 뒤에 보니 최상규 하사는 다리가 부러지고 김영상 중위는 얼굴을 돌로 난타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6-7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공수대원들은 경계만 하며 시위대에게 해산을 종용하고 있는데 시위대가 먼저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던지니까 병사들이 흥분하여 때린 격입니다. 공수대원들도 시위대들이 던져대는 돌과 화염병에 무수히 많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약 2백 미터 정도 되는 지점에서 차량에 불이 나는 것이 목격되어 1개 지역대 병력을 제가 데리고 가보니 "경남" 번호판을 단 타이탄 트럭 1대가 불타고 있었으며, 운전사로 보이는 사람이 구타당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운전수는 경찰에 인계하여 후송시키고 다시 로터리로 복귀했습니다."


"5월 19일이면 진압초기로서 초기부터 착검하고 진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군에서 사용하는 대검은 날이 서 있지 않고 무딘 상태입니다. 대검으로 물건을 자를 수는 없습니다. 광주사태 유언비어 중에 공수대원들이 대검으로 여자 유방을 잘랐다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군의 대검으로 사람 살을 자른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6시경 대치 중인 계엄군(61대대) 배치선 1미터 전방까지 40대 남자가 접근하여 협박'(내용 : 네놈들이 있던 강원도 오음리 지역의 군인가족을 몰살키 위해 시민을 현지로 보냈다) 한 후 군중 속으로 뛰어 들며 선동, 시위대 전진 투석, 주동자 체포하려다 계엄군 3명 부상"


"당시 노동청 앞 쪽에서 경찰병력이 돌진하는 시위대 차량에 의해 4명이 압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21시 경이 지나자 시위대가 앰프를 단 차량으로 도로상을 돌아다니며 최초로 시위대의 선무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애끓는 듯한 소리로 시민들을 자극하는 방송을 했습니다. 목소리와 억양이 마치 이북에서 대남 방송하는 여자들의 억양과 똑같아 계엄군 입장에서 보면 전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시민들이 들으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내용은 "지금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려고 왔다.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야 되겠느냐, 금남로로 전부 모여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방송이 있은 다음부터 시위양상이 격해졌습니다."


"그 당시 시위대들은 몽둥이, 쇠파이프, 쇠갈고리, 도끼 등 흉기가 될만한 것은 전부 다 들고 있었으며 시위상태도 이전과 약간 달라졌습니다"


"장갑차 1대만 빠른 속력으로 도망가는 계엄군을 향해 돌진하여 계엄군 1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충장로 쪽으로 갔습니다.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해 들어옴과 동시에 시위대 쪽에서 총소리가 연발로 났습니다."


이 때 사격명령을 내린 적은 절대 없습니다. 순전히 급박한 상황에서 부대원들이 조건반사적인 사격, 그러니까 돌진하는 시위대의 차량에 압사 당할지도 모른다는 심한 공포감으로 인해 실탄을 삽입하여 발사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실탄을 가진 병사들을 사격통제하지 못한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대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대도 전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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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진하여 한 병사를 깔아뭉개 즉사케 하자 부대원들이 조건반사적으로, 자위적으로 발포했을 뿐이다 ....... ]



[ .... 광주진압 초기에 공수부대는 최루탄과 방패도 없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시민들의 投石과 차량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실탄을 휴대하지 않고 오로지 곤봉으로써만 진압했다.

계엄령하에서 민간인이 군대에 대해 投石과 차량돌진으로 대항할 때 어느 정도의 진압이라야 적정한가 ....... ]





[광주사태 진압 공수부대출신들의 성명서 전문 ]




영화 '화려한 휴가'의 反軍선동을 규탄한다!

영화사측에 경고하고, 국방부에 요구하며, 광주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공수부대에서 근무하면서 북한군의 再남침을 저지하여 오늘날 국민들이 누리는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 번영을 지켜내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해왔다.

최근 개봉되어 7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KTX에서까지 상영되고 있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광주사태 진압 공수부대를 표적으로 삼아 터무니 없는 왜곡과 조작을 자행하여 反軍감정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정치권은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광주사태 진압군으로 출동했던 공수부대 지휘관 출신들을 비롯한 우리 특전사 동지들은 이런 사태에 분노하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뜻을 밝힌다.



1. 영화 '화려한 휴가'는 '사실에 근거하여 극화했다'는 자막을 통해서 영화내용이 사실이라고 믿게 하려는 숫법을 썼다.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당연히 공수부대와 국군에 대해서 反感과 증오심을 품게 되어 있다. 이 영화는 사실에 입각하여 극화한 것이 아니라 공수부대의 광주사태 진압과정을 편파적으로, 악의적으로, 정치적으로 왜곡, 조작하였다.


2. 특히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발포장면은 터무니 없는 날조이다.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탄창을 M16 소총에 끼우고 무릎쏴 자세로 애국가를 부르는 평화적 시민들을 향해서 아무런 경고 없이 집중 사격하여 수백 명을 살상하는 장면은 완전한 造作이다.


1980년 5월21일 낮에 전남도청 방어 임무에 투입된 공수 7, 11여단의 부대원들은 장갑차, 트럭, 버스로 무장한 수십만 명의 시민들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었다. 실탄은 중대장 이상 장교들에게만 1인당 15발씩 지급된 상태였다.
시민측이 장갑차와 버스를 몰고 공수부대원들을 향해서 돌진하여 한 병사를 깔아뭉개 즉사케 하자 부대원들이 조건반사적으로, 자위적으로 발포했을 뿐이다.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도, 요청한 사람도 없었음은 1995년의 검찰 조사에서도 확인되어 아무도 처벌되지 않았다.


3. 그럼에도 영화 '화려한 휴가'제작진은 공수부대만 표적으로 삼아, 유태인을 학살하는 나치군대처럼 그리고 있다. 특히 애국가를 부르는 평화적 시민들을 공수부대원들이 무자비하게 사살하는 장면을 통해서 공수부대가 마치 대한민국에 대해 총을 쏘는 반란군인 것처럼 묘사했다. 전남도청을 死守했던 공수부대원들이 뻔히 눈을 뜨고 살아 있는데도 이런 조작과 명예훼손이 자행되고 있으나 국방부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영화제작사가 오는 9월30일까지 이에 대해서 사과하고 광주투입 공수부대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때는 民刑事上의 自救조치를 취할 것이다.


4. 국군장병들의 사기를 무너뜨리고 軍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약화시키게 될 이 영화의 왜곡과 조작에 대해서 침묵해온 국방부에 요구한다. 국군뿐 아니라 국가의 정통성을 지켜가야 할 국방부 장관은 영화사측에 대해서 의법조치를 취하고 국민과 국군 앞에서 공개적으로 공수부대의 집단발포가 없었다는 사실을 발표하여 군의 신뢰를 회복하라!


5.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이 영화를 競選과 선거에 이용할 목적으로 선전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6. 광주진압 초기에 공수부대는 최루탄과 방패도 없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시민들의 投石과 차량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실탄을 휴대하지 않고 오로지 곤봉으로써만 진압했다. 계엄령하에서 민간인이 군대에 대해 投石과 차량돌진으로 대항할 때 어느 정도의 진압이라야 적정한가.

민간인이 무기고를 습격하여 소총, 기관총으로 중무장하고 헬기에 대해서도 사격하고 광주교도소도 습격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들만 배치했다는 유언비어가 시민들을 흥분시켰다.

167명의 민간인과 함께, 4명의 경찰관과 23명의 군인이 戰死했다. 그렇다면 광주시민과 공수부대도 다 같은 역사의 피해자가 아닌가? 피해 시민들에 대한 보상도 끝나고 역사적 단죄도 끝나 民軍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해야 할 시점에서 또 다시 공수부대를 '살인집단'으로 왜곡하여 反軍감정을 확산시키는 저의는 무엇인가?


7. 우리는 광주시민들의 양식에 호소한다. 1980년 5월21일 대낮에 전남도청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광주시민들이 먼저 '화려한 휴가'의 왜곡을 지적해줄 것을 기대한다. 사실은 신념보다도 중요하다.



8. 국군은 국가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武力이다. 우리는 남북한의 반역세력이 대한민국을 뒤엎는 데 장애가 되는 국군을 국민들과 이간질시키기 위하여 예술을 정치선동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계속해서 감시할 것이다. 국군도 헌법 5조의 명령에 따라 국가안보와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라!



2007년 9월21일


민병돈 전 특전사령관,
안부웅 제11여단 61대대장,
조창구 제11여단 62 대대장 등 특전사 출신 예비역 장병 일동




(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2007-09-22
2016-09-05 20: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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