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와 시(詩)가 만났을때
전기와 시(詩)가 만났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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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9.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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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전등
그것은 시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다가온다

일제 때는 식민지의 아픔이었고 희망의 표식이었던 등불

60년대에는 꿈을 상징하고 현대에서는 분열된 의식을 표상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과 몽상, 그것은 촛불에서만 강렬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밤안개가 밀리지 않더라도, 함박눈이 흩날리지 않더라도 가로등 불빛 아래 서면 우리는 추억에 젖는다. 그리하여 추억은 상상과 몽상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에 전혜린이 ‘레몬빛 가스등’이라는 구절로써 유럽(독일의 몬트리얼)의 등불에다 낭만을 채색한 바 있지만 그 이전부터 이 땅의 시인들은 등불에서 낭만을 보아 왔다. 그와 함께 삶의 빛과 그늘을 인식하였다.

전기가 만들어 내는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등불.

그것을 이 땅의 시인들이 어떤 이미지로 구체화했는지를 다루려면 몇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제 시대에서 현대까지의 시들 중에서 등불이 소재로 돼 있는 시 4편만을 살펴보았다.

시의 등불은 전기에 의해 켜지는 등불만으로 한정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이 어떤 등불이든 (시에 있어서 자잘한 구별은 참으로 하찮은 것이므로) 그것의 이미지는 전기 등불과 같은 것이기에, 모든 등불을 애써 구별하지 않고 다루었다.

이제 시 속의 등불을 찾으러 가자.

언제 등불이 우리의 시에 나타났는가?

일제 때 우리의 현대 문학은 시작한다. 현대시 역시 그 때에 시작한다.(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현대시의 시작으로 잡는 일반적인 주장에 의거하여)

현대시가 막 시작한 당시 상황은 일제 강점기였고 이 땅의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시인은 ‘모국어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서구의 기법을 받아들였고 또 어떤 시인은 ‘모국어를 무기로 하여 일제와 싸우기 위해’ 노래하기보다는 절규하고 선언하는 데 앞장섰다.

어디에 속해 있든 그들은 민족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 시대 주지주의 시를 썼던 김광균의 ‘와사등(瓦肆燈: 가스등)’을 보면 거기에는 조국을 잃은 시인의 비애가 나타난다.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 - 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냐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위의 시는 전혀 어렵지 않다. 시인은 길거리를 걷다가 허공을 본다. 그에게 잡힌 풍경은 “차단 -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라고 묘사된다. 그것에서 시인은 무엇을 느끼는가? 이어지는 말이 직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일제 시대의 등불은 ‘슬픈 신호’였다.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도 이용악은 좀더 적극적이다. 그는 ‘등불이 보고 싶다’고 외친다. 아주 깊고 깊은 산골에서 등불이 보고 싶다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강렬한 희망을 읽는다.

하늘이 금시 무너질 양 천둥이 울고
번갯불에 비취는 검은 봉우리 검은 봉우리

미끄러운 바위를 안고 돌아 몇 굽이 돌아봐도
다시 산 사이 험한 골짝길 자욱마다 위태롭다

옹골찬 믿음의 불수레 굴러 조마스런 마암을 막아보렴
앞선 사람 뒤떨어진 벗 모두 입다물어 잠잠
등불이 보고 싶다
등불이 보고 싶다

귀밀 짓는 두멧사람아
멀리서래두 너의 강아지를 짖겨다오.

위의 시 역시 어려운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인은 자욱마다 위태로운 험한 골짝길을 지나서 귀밀 농사를 짓는 두메에 이른다. 거기에서 등불을 보고 싶다고 외친다. 그냥 한 번 외쳐보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이나 반복한다. 강렬한 요구이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민족은 분단을 만난다.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한 시는 60년대 내내 이어진다. 이런 분단의 회고는 아픔이다. 그것은 김광균이 ‘와사등’에서 보여준 그 아픔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인들은 아픔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희망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성기의 ‘역(驛)’이라는 시에서 그 유명한 ‘푸른 불의 시그널’을 말하게 된다.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이 있다.
빈 대합실에는
의지할 의자 하나 없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만 역처럼 내가 있다.

물론 위의 시는 제목이 ‘역’이고 그것은 시인 자신의 삶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시를 살려주는 것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 것은) 첫구절의 그 선명한 이미지 ‘푸른 불 시그널’이다.

기차의 통과를 알리는 푸른 불빛의 작은 전등. 그것이야말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내온 세대가 아직도 꿈을 잃지 않았음을 웅변해 준다.

80년대의 민주화 시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면 시인들은 역사의 아픔보다는 현대의 징후를 읽는 일에 더 민감해진다. 풍요로운 시대는 소비 시대이며 그것은 포스트모던으로 말해지는 권위 벗어나기와 중심파괴를 불러들인다.

이런 시대에 시를 쓴 기형도의 ‘바람은 그대 쪽으로’를 읽어 보면 전등 불빛은 이전의 아픔이나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나 혼자만 느끼는 불빛이며 내가 만지는 물체이다.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있다. 외롭다. (중략)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생의 벽지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등피(燈皮)를 다 닦아내는 박명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

이제 우리에게 등불의 불빛은 너무 약해져 버렸다. 그만큼 고전적인 의미는 약화된 것이다. (기형도의 시 ‘도시의 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 눈을 털고 있다.’ 이전의 가로등은 그 불빛을 통해서 눈을 더 잘 보이게 만들어 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눈을 터는데 이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아픔도, 희망도, 꿈도 없는 수단)

그러나 시인은 등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직도 등의 겉[燈皮]을 닦고 있다.

등불은 여전히 우리 옆에 살아 있는 것이다. 전기가 있는 한 전등 불빛이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늘 아름다운 시적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할 것이다.

전기와 시가 만날 때, 거기에는 삶의 아픔과 희망이, 꿈과 고뇌 그리고 애증이 있다. 전기 역시도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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