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카쇼 방사능폐기장에서 되돌아본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로카쇼 방사능폐기장에서 되돌아본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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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9.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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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선례로 삼다가는 우리만의 상황 간과할 수도
안전성 못지않게 견해차를 줄여나갈 마음가짐 필요
▲ 일본 로카쇼의 방사능 폐기물 매립장의 모습

일본 혼슈 동북부 끝에 자리잡은 로카쇼의 일본 원자연료(原子燃料)주식회사(JNFL. 이하 일본원연) 시설단지를 찾아나선 길. 아오모리(靑森) 지방의 삼나무 숲이 버스 차창을 메운다. 숲은 너무나 울창해서 숲속에는 어둠이 서려 있다.

일본 소설에서, 말하자면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 ‘열흘 밤의 꿈’ 같은 데서, 왜 ‘어두운 삼나무 숲’이라고 표현하는지 알 만 하다.

국내에서 본 적이 없는 삼나무 숲이라서 이국정취를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여행의 느낌은 오지 않는다. 국내에서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와 관련해 가졌던 질문들이 내 마음 속을 채우고 있다. 그것들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른다. 빛깔은 회색이다.

로카쇼의 일본원연 시설단지에 인접한 문화교류 플라자에 이른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3층 건물은, 건축면적이 1562평에 이르고 그 내부에는 대회의실, 소회의실, 연수실, 도서실, 관리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다.

홍보책자에 의하면 플라자는 재단법인 ‘로카쇼 문화진흥공사’에 의해 움직인다고 돼 있다. “플라자는 주민의 문화 활동과 인재육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라는 이사장인 戶田 衛의 말도 실려 있다.

대회의실에서 홍보 담당 주사인 熊倉은 로카쇼 문화교류 플라자는 “사람과 자연과 문화와 산업이 공생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많은 문화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화는 늘 교류해야만 하는 것인가? 문화의 본질은 교류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축적돼 온 삶의 방식으로서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말하자면 문화는 지역마다 그 지역 나름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비단 문화만이 아니라 경제에서도 강한 집단은 교류(경제에서는 무역이 되겠지만)를 강조해마지 않는다. 그들은 교류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동양의 식민지 사냥에 나섰는데 그 때부터 내세운 게 ‘교류’였던 것이다.

원전 관련 시설이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좋다. 그 방식이 ‘문화센터 건립에 의한 문화교류’여야만 하는 것인가? 국내에서부터 지니고 있던 질문이 로카쇼 문화교류 플라자에서 반복된다.

잠시 후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우리나라 산자부의 원전 정책 결정자들도 여기에 왔으리라. 그들은 이런 플라자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도 이걸 세우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만 한 것은 아닌지. 이러한 일본 추수주의(追隨主義)가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에 관한 우리 만의 해법을 찾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

일본원연 시설단지 내의 <방문자 센터>로 간다. 이곳에서 방사능폐기물 재처리 시설에 관한 과학적 설명을 듣는다. 일본원연은 프랑스의 재처리 기술을 받아들여 현재 재처리시설을 건설하고 있으며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20년 전부터 방사능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익혀 왔다는 점에 이르면 일본의 준비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방문자 센터를 벗어나 차를 타고 일본원연의 시설 단지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저준위 방사능폐기물 매설지, 재처리공장, 재처리시설 관리사무실, 에너지관리 시설, 우라늄 농축공장, 일본석유 비축단지 등등이 자리하고 있다.

 


방사능 폐기물 저장 드럼





드디어,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매설지에 도착한다. 우리의 원전수거물관리센터의 핵심 시설에 해당되는 곳이다.

제1매설지와 제2매설지 사이에 있는 10평 남짓한 전망대에서 밖을 내다본다. 창 바로 아래는 쑥밭이다. 쑥밭에는 쑥대들이 솟아 있어서 쑥대밭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쑥대 끝에 달린 회색의 자잘한 쑥꽃.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후 가장 먼저 솟은 풀이 쑥이었다던가? 그걸 내세우며 목욕탕마다 ‘쑥 사우나’가 만들어지던 때도 있었다. 고개를 들자 2003년 9월 18일 오후 세시 반 현재의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끼어 있다. 회색이다. 그 빛깔은 쑥꽃과 같다.

회색이 겹쳐져 다가온 탓인지 아더 퀘이틀러의 책 <야누스>가 떠오른다. 그 책에서는 인류가 히로시마를 신기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히로시마 이전에는 개체의 죽음만을 경험했다.

히로시마의 원폭은 인류 전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더 이상 AD라는 시대구분을 쓰지 말고 PH(Post Hiroshima)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주장이 호응을 얻는지 외면당하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자살했다. 너무나도 암울한 현실을 더 견딜 수 없다면서.

저준위 방사능폐기물 제1매설지로 시선을 고정한다. 전망대 안에서 일본 원자원료주식회사 홍보실장이 매설지에 관해 설명을 한다.

 


일본 로카쇼의 방사능 폐기물 매립장의 모습





“일본의 52개 원전의 방사능 폐기물은 재처리과정을 거쳐 고준위와 저준위로 나누어지는데 우리는 모든 저준위 폐기물을 매설한다. 이곳 매설지는 저장 드럼(Drum) 300만개를 매설할 수 있는 넓이가 확보돼 있다. 현재는 제1매설지와 제2매설지만 사용하고 있다.”

드럼을 ‘도라무’라고 일본 발음으로 해 대는 그의 억양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우리가 일본 식민지였기에 일본식 영어 발음이 무의식 저 깊숙이 저장된 탓인가?

홍보실장은 3분간에 걸친 설명을 마친다. 설명이 길다는, 그래서 약간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300년 동안 관리된다는 일본의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그 300년에 비하면 3분이 아니라 20년도 짧은 것이다.

그런 깨달음에 이어서 우리의 원전수거물관리센터에 관련된 시책들이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홍보실장은 한국의 반핵단체들이 제시하는 ‘구멍이 난 드럼’에 관해서 보고 받은 적이 없다고 억양을 높인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없다. 우리는 드럼의 외관검사(外觀檢査)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설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방사능이 유출될 리는 없다. 보다시피 매설지는 땅을 파서 만들었다.

드럼이 다 쌓이면 그 위에다 강화 콘크리트(reinforced concorete)를 붓는다. 그렇게 해서 큰크리트 덩어리로 만든 다음 흙으로 덮는다.”

위험 논란성이 빚어지는 시설에 관한 관리 측의 모든 설명이 그러하듯, 일본원연의 설명 역시 안전성을 자신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오리 사과로 알려진 아오모리 사과 가격이 일본원연의 방사능폐기물 재처리시설이나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에 의해 전혀 영향받지 않고 있다는 홍보실장의 설명의 뒤로 하고 가까운 온천지로 향한다.

고마끼 온천에는 비가 내린다. 노천탕에 몸을 담근다. 온천의 수증기가 피어올라 안개처럼 흐른다. ‘온천 안개’라고 명명해 놓고 앞을 보니 비안개가 눈에 든다.

온천 안개와 비안개가 섞인다. 하나가 된 안개. 따뜻한 온천 안개는 제 온기를 내어주고 찬 비안개는 그 온기를 받아들여 하나가 된 것이다.

두 견해가 크게 부딪힌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다면 그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미세한 차이의 견해들도 전혀 상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두 개의 견해로 남아 있게 된다. 그 당연한 사실을 온천 노천탕에서 확인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전 수거물’에 관한 많은 논란이나 ‘2조원의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경제적 판단에 앞서는, 서로 간의 온기이다. 서로의 입장을 받아들여서 견해차를 줄여보려는 온기. 그리하여 나중에는 서로 섞일 수 있는 그 온기.

안개에 감싸인 아오모리의 삼나무 숲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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