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원자력 안전규제 '난맥상' 바로잡아야 한다
[E·D칼럼] 원자력 안전규제 '난맥상'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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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2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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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국내 원전안전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무능과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무비(無備) 아래 하루하루 줄타기하고 있다. 규제자가 거안사위(居安思危)하지 못하고, 사업자는 해현경장(解弦更張)하지 않고, 산업계는 좌고우면(左顧右眄), 기술자는 무사안일(無事安逸), 청와대는 우이독경(牛耳讀經), 여의도는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사이 24기 원자로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무력(無力) 속에 24시간 갓길을 내달리고 있다.

격납건물벽에 구멍이 나고 금이 가도, 증기발생관이 터지고 망가져도, 핵연료다발이 멍들고 부풀어도, 냉각재계통에 이물질이 들어가도, 그래서 주민, 군민, 국민의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도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곳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데도 없다.

그간 유체이탈(遺體離脫)했던 원자력계는 자기성찰 한 번 없이 신세타령만 하고, 대학교수는 현정부의 탈원전 정책만 비판하며 영문도 모를 학생들 앞세워 거리에 나섰다. 서명하지 않은 교수는 색안경 끼고 따돌리는 전체주의가 판치고 있다. 도대체 이러다가 정작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할 우리 원자로는 누가 돌볼 것인가?

태양, 풍력, 수력, 전지와 함께 지능형전력망으로 한반도 미래를 다시 그리며 끌어갈 원전을 훨씬 저렴하고, 더욱 안전하게, 아주 청정하게, 그래서 폐기물이 확 줄게 만들어야 할 텐데, 그래서 원자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신재생만으로는 모자라니 같이 갈 날을 기다리며 온고지신(溫故知新)해야 할 텐데… 도대체 그런 데가, 그런 곳이, 그런 이가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것이 올 가을을 슬프게 한다.

필자는 지난 7월~8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지역주민단체의 요청으로 5월10일 한빛 1호기 제어봉 조작실수로 인한 원자로 출력급증 사건의 민관합동대책위원회 민측 전문가 대표로 참여한 적이 있다. 불안과 심려의 대상이 된 동 사건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주민, 군민, 국가에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은 백수해안을 오갔던 한 달 남짓 가마미에 이르러 실망으로 끝났다. 원안위는 조사는 따로 하지 말고, 원안위 조사결과와 향후계획에 대한 기술적 문제 확인과 대책 마련만 요구했다. 이는 원안위가 주도한 조사결과에 동조하라는 것이며, 근본문제의 원인 파악과 엄정중립한 재조명을 원천봉쇄하는 것이었다.

사건 관련자와의 개인 면담이 불가하여 사건의 진행 과정에 대한 독립적 경위 파악이 불가능한 가운데, 건네받은 자료나 답변은 내용이 천편일률에 이구동성으로 이미 결론 내린 사건에 대해 요식행위를 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기술원과 한수원 내부 보고자료 열람도 하지 못하는 사이, 사건 전모를 축소, 은폐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원안위가 조사 초기에 사건 관련 주요 사실과 물리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였는지도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에 민관합동대책위 임무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원안위의 실수를 무마하고, 원안위가 책임을 전가하는 거수기가 되어달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한빛 1호기 민관합동대책위 주민측 전문가 대표직을 물러나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총리실이 나서서 하루빨리 주민, 군민,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를 구성,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간 꾸준히 필자가 지적한 안전규제 난맥상이 저번 사건을 통해 재확인된 것이라는 생각이며, 안전규제를 하루빨리 관료중심에서 기술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따라서 원안위 사무처는 규제권한 이행이 아닌 행정지원 기능을 하도록 하여 기술중심으로 규제전환이 필요하다. 안전규제의 선진화를 위해 기술원과 지자체에 규제 권한을 이양하여 기술중심의 규제행위가 현장에 부합되도록 민관산 육안(六眼)체제로 원자력안전의 견제와 균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하여 원안위 및 기술원을 관료중심 운영으로 주도하려는 규제기관의 인적 청산과 체제 쇄신,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 그래야 원자력이 신재생을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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