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데일리 윤호철 기자]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선으로 암이나 희귀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 아픈 이들에게는 소중한 빛과 같다. 베타선을 방출해 암 세포를 죽이는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구리-67(Cu-67)도 드디어 국내 생산을 시작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박원석)은 입자 가속기인 RFT-30 사이클로트론을 활용, 국내 최초로 Cu-67을 생산하는데 성공, 하반기부터 의료기관에 공급할 예정이라고 3일 밝혔다.
연구원 박정훈·허민구 박사팀은 먼저 표적 플레이트와 도금장치를 자체 개발해 Cu-67을 만들 수 있는 도금표적을 제작했다. 도금표적에 사이클로트론의 양성자 빔을 조사해 방사성동위원소 Cu-67을 만들어낸 후 자체 개발한 도금표적 분리장치를 이용해 1차 분리하고, 이온교환수지 크로마토그래피법※으로 고순도의 Cu-67을 최종적으로 분리해내는데 성공했다.
Cu-67은 진단용 감마선과 치료용 베타선을 모두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테라노스틱스※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방출되는 베타선의 평균에너지가 141keV(킬로전자볼트)로, 투과력이 작아 수 밀리미터 크기의 암 세포도 통과하지 않고 세포조직 내부에 머무르며 파괴할 수 있다. 치료 효과가 탁월한데다 기존 의료용 동위원소에 비해 반감기가 짧아(약 2.5일) 체내 피폭이 상대적으로 적어 의학계에서도 차세대 치료용 동위원소로 주목하고 있다.
이에 최근 선진국에서는 Cu-67을 표지한 항체나 펩타이드를 이용해 림프종, 대장암, 방광암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에 대한 임상실험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Cu-67은 이런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생산공정이 몹시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국내에서는 지금껏 생산하지 못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번에 자체 기술로 Cu-67을 생산하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생산한 동위원소의 암세포 사멸효과도 입증했다.
연구원은 현재 한번에 수십 mCi(밀리퀴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는 약 3개 연구기관에 동시 공급 가능한 수준이다.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서울대병원, 전남대병원, 경북대학교 등 10여개 연구기관이 사용을 희망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번에 생산 성공한 Cu-67 외에도 연구용원자로 하나로와 입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 등을 이용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와 방사성의약품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대로 민간기업에 적극 이전해 의약품이 안정적으로 국민에게 공급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민간기업 등에서 생산하기 힘든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와 방사성의약품은 직접 생산한다.
현재 가동 정지 중인 하나로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 몰리브덴-99, 요오드-131, 이리듐-192, 홀뮴-166 등을 생산해왔으며, 특히 갑상선암 치료로 익숙한 요오드-131은 국내 수요의 70%를 담당해왔다. 또 신경모세포종 등 희귀 소아암을 치료하는 요오드-131 mlBG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 공급한다.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의 사이클로트론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면역진단용 지르코늄-89를 국내에 공급하고 있고, 특히 종양 진단용 스칸듐-44, 암 진단용 원료물질 게르마늄-68을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이번 연구성과로 차세대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인 Cu-67을 생산목록에 추가하게 됐다.
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위명환 소장은 “이번 생산시스템 구축으로 우리나라 의학계가 차세대 암치료기술을 선점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수백mCi 생산수준으로 생산능력을 강화, Cu-67의 저변확대 및 아시아권 수출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