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반계서당(磻溪書堂)
부안의 반계서당(磻溪書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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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1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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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더불어 살아가며 실사구시 학문을 바탕으로
유형원이 반계수록(磻溪隨錄) 26권을 완성한 곳

산 가운데 기와집이 한 채 있다. 늦가을의 오후 기와집 마루에 앉아 앞을 바라본다. 앞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 저 끝에는 갯벌이 보인다.

마루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나는 방안을 들여다본다. 방안에는 누군가 사른 향이 반쯤 타다 말고 향대에 꽂혀 있다. 그 앞에는 붓으로 거칠게 그린 얼굴이 있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이다. 반계수록(磻溪隨錄)의 저자. 이익,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실사구시 학문의 물줄기를 연 사람.

누가 이곳 부안군 보안면의 반계서당을 찾아와 향을 사르고 간 것일까? 농민이리라. 농민을 걱정하고 농민을 위해 평생을 산 반계를 농민은 기린 것이리라.

농업이 천대받는 이 시대에 농민으로 산다는 것이 그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나는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부모님이 농민이고 나 또한 어려서 들일을 했지만 결국 나는 지금 농민이 아니다.

농민이 아닌 자가 어떻게 평생을 논밭에다 바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반계는 농민을 알았다. 그는 농민과 함께 살았으므로.

반계는 태어날 때부터 농민은 아니었다. 한양에서 태어난 그는 광해군 시절의 복잡한 정치 상황에 의해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다행히 다섯 살 때부터 글을 배웠는데 일곱 살 때에 벌써 서경(書經)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효종 4년에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愚磻洞)에 정착한다.

이듬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를 치르지 않고 학문에 전념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조선 곳곳을 찾아다닌다.

그는 두 차례나 벼슬에 천거됐으나 사양하고 부안 우반동에서 농민들을 가르친다. 반계서당이 그 장소이다.

(지금의 반계서당은 1974년 전라북도에서 반계가 살았던 우동리 마을을 지방기념물 22호로 지정한 이후에 서당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산 중턱에다 기와집으로 서당을 복원한 것이다.)

그는 반계서당에서 자신의 학문 연마에도 노력한다. 그의 학문은 성리학을 주로 하여 역사, 지리, 선술(仙術), 시서(詩書)에 걸쳐 있었다. 이런 학문의 결과와 농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그가 완성한 책이 바로 반계수록이다. (반계수록은 영조 46년 왕명에 의해 26권 전권이 발간돼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반계수록은 농민을 중히 여기는 사상을 근본에다 깔고 있다. 농민이 농사를 짓게 하려면 우선 양반들의 토지 겸병(兼倂)을 막고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할 것을 주장했다. 균전제(均田制)이다.

반계서당이 있는 부안군 보안면은 동북쪽으로 고부면과 접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인 조선시대의 그 고부군이 지금의 고부면이다. 전봉준이나 김개남은 반계를 어떻게 여겼을까? 동학농민군 요구 사항에 들어있는 균전제의 모태는 무엇일까?

생각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뻗다가 하나로 모아진다. 이 나라를 수천년 동안 먹여 살려온 것은 농민인데 왜 그들은 아직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가?

오후가 다 가도록 반계서당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돌담 아래에서 구절초만 가을 오후 햇살을 받고 있다.

아무도 오지 않기에 나는 오래도록 반계서당을 떠나지 못한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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