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저유가 시대의 에너지안보
[ED칼럼] 저유가 시대의 에너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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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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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박사 / 한국탄소금융협회 부회장

[에너지데일리] 사상 초유의 저유가 시대가 왔다. 

30년 전 유학시절, 대학원 시험문제 중에 ”유가 배럴 당 20달러는 적당한지에 대해 논하라“가 기억난다. 한 학기 내내 마이클 리버 교수님(미국 아리조나 대학)이 유가 20달러가 형성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말씀해주신 덕분에 아직도 내 기억 속 유가는 20달러가 그 중심에 있다.

오후 4시쯤이면 어김없이 벤치에 앉아 사막 속에 불타오르는 석양을 지긋이 바라보며 시가를 피우던 교수님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님이 되셨다. 10년 전만해도 교수님은 우리 아들을 당신한테 보내라고 하셨다. 잘 키워주시겠다고. 그러나 교수님은 이제 부축이 필요하실 정도로 거동이 어려워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구레나룻는 계속 유지하시는 걸 보면 구레나룻은 교수님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당시 TV 프로그램 중에 ”The price is right“이라는 오락쇼가 있었다. 물건에 대한 가격을 가장 근접하게 맞추는 사람이 우승하는 프로그램이다. 만약 이 프로그램에서 현재의 유가를 맞추는 시도를 한다면 누가 가장 잘 맞출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필자는 에너지경제학을 강의할 때마다 중간고사 시험에 반드시 이 문제를 낸다.

유가, 배럴당 20달러는 적당한가?

코로나사태가 트리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경기침체 징후가 수면 아래 오랫동안 머물면서수요가 증발되고, 사우디와 러시아의 치킨게임이 공급과잉을 증폭시키면서 유가는 자유낙하를 했다.

정말 20달러 시대가 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유가는 20달러를 심리적인 마지노선으로 여기면서 20달러를 넘어도 다행이라는 듯이 저유가가 연출되었다. 게다가 미국이 나서서 사우디와 러시아의 치킨게임을 말리고 다른 OPEC 멤버들이 감산에 동참했지만, 연초만 해도 60달러가 넘던 유가는 선물 만기 하루 전에 마이너스를 찍었다.

공급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가격조절 기능인 저장(인벤토리)능력이 바닥이 난 것이다. 쓰다 남은 유전, 하다못해 운반선까지 이용했지만 더 이상 저장할 곳을 찾지 못하자 구매자에게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판매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치킨게임은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였다는 것을 알아채는 데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이를 무시하고 애써 여유로운 척 하던 트럼프는 블러핑이 더 이상 먹히지 않자, 이란을 공격하는 제스쳐를 보인다. 중동의 전운을 시장에서 리스크로 인식하도록 시선을 끄는 전략을 쓴 것이다.

이 또한 시장이 모르는 채 받아준다. 왜냐면 시장가격이 더 이상 마이너스에 머물도록 해 봤자, 즉 미국의 셰일가스를 공격해서 미국경제를 악화시켜봤자 미국은 마지막 강력한 카드인 달러를 무기화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달러는 결국 자원을 가진 국가들의 화폐가치를 폭락시키게 되니 미국을 압박하는 것은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것과 같다는 것을 수차례 경험한 바 있어, 중동으로 시선을 끄는 제스쳐를 강한 가격시그널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제유가는 아직 30달러 초반에서 머물고 있다.

우리는 저유가 과정이 코로나사태와 함께 진행되는 동안 세 가지 힘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째, 시장의 힘이다. 마이너스 유가란 돈을 줄테니 제발 사가라는 말이다. 인벤토리라는 저장능력이 공급조절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능이고, 이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곧 비용이며 이것이 시장에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역시 시장은 그 힘이 위대하다. 결국 800달러가 넘던 체사피크 주식은 13달러에 거래되는 것을 목격한다.

둘째, 가진 자의 힘이다. 자원을 가진 자는 이를 얼마든지 무기화한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치킨게임을 하면서 유럽에 잘나가는 에너지기업의 지분을 확보한다. 얼마나 영리한가?

셋째, 아는 자의 힘이다. 에너지시장을 연구해 온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유가는 반드시 반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가와 환율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가장 큰 줄기는 유가와 달러를 연결하는 줄이다. 그리고 10년 주기로 유가는 출렁인다는 것도 유가 예측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정설로 통한다.

이번 사태로 우리는 큰 교훈을 얻었다.

첫째, 에너지안보는 단지 고유가 시대에만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유가로 국제금융시장이 위협받자 에너지 관련 투자시장은 꽁꽁 얼어붙는다. 결국 에너지 수급은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 상류부문 투자를 외면하면 곧 10년 주기설과 같이 고유가 시대에 먼 산만 쳐다봐야 한다.

둘째, 에너지안보는 어느 하나를 외면하고 어느 하나를 강력히 민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신재생은 좋고 원전은 나쁘다는 식의 논리는 에너지안보를 오히려 위협하는 것이다. 어느 에너지원도 완벽한 에너지는 없다. 에너지안보는 보다 나은 에너지를 찾아간다기 보다 더 나은 조합(MIX)을 찾아가는 데 솔루션이 있다. 천연가스의 비중을 높힐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셋째, 에너지안보는 가격조절 기능을 갖추는 데 있다.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는 더더욱 가격 조절의 주도권이 없다. 하지만 이를 완충할 시설과 제도를 갖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저장설비와 같은 인프라와 에너지허브와 같은 제도는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코로나는 리스크이다. 리스크는 그 존재를 부정하면 할수록 비용이 누적된다. 새로운 산업구조가 펼쳐지는 데 에너지산업이 빨리 적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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