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화 칼럼(1)
교수들의 성폭행,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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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성폭행,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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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3.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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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7월 일본의 한 노래방에서 동국대 사회학과 A교수가 일본인 여제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교원징계심의위원회에서는 “성추행이 있었음은 사실이나 정황으로 볼 때 해임처분은 너무 가혹하다”면서 A교수에 대해서 정직 1개월 조치를 내렸고 동국대측은 2001년 5월 A교수를 복직시켰다.

위원회는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해임된 서강대 B교수에 대해서도 재심의 신청을 받아들여 해임을 취소하고 정직 3개월로 징계를 재조정하는 등 대체로 성폭행교수의 책임을 경감하는 결정들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위원회는 학생과 여성계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그 존재 의의가 의문시되던 터였다.

동국대 A교수 사건에서 위원회가 말하는 정황이란 술에 취해서 성추행한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성추행을 했는데 해임처분은 가혹하다’는 논리는 그나마 타당한 점이 없지는 않다.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A교수는 여제자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키스를 하면서 치마밑으로 손을 넣어 더듬었다고 한다. 이런 행위는 강제추행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A교수는 판사인 친구의 법적 조언을 받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응했다. 이에 대해 A교수사건 대책위측에서는 “약간의 시각차이가 있다”며 그 관점을 부정하지만 A교수측이 그렇게 주장하고 나서면 그것은 이 사건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는 책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른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가 만취하기 전에 강제추행을 인용한 경우, 즉 강제추행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술을 마신 경우와 술을 마시면 강제추행이라는 일을 저지를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일 때에는 면책(감경)되지 않기 때문이다.

술에 만취하지 않았다면 A교수는 강제추행죄의 책임을 진다. 술에 만취했더라도 애초에 추행을 할 의도가 있었거나 취하면 추행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면 A교수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한 것으로서 역시 강제추행죄의 책임을 진다.

이 사건에서 A교수는 지속적으로 술을 마시고 점차적으로 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행위가 지속적인 점을 감안하면 술을 마신 상황에서는 물론이고 취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전적으로 부정할 정도로 의식상태가 혼미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설령 만취하여 의식상태가 혼미했다고 하더라도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규정이 있다. 만취해서 의식없이 몸부림을 치면서 저지른 행위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일관된 추행에 관련된 행동을 보였다는데, 이 때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특별한 이유없이 부정하는 것은 가해자편에 기운 해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추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만취하고 기억이 없다해도 추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는 A교수측에서 특별한 반박증거를 내지 못하면 책임을 부담하는 쪽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문제에서 책임회피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규정인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규정의 존재의의를 찾을 수가 없다.

A교수 사건이 터진 직후 동국대 사회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대자보 스티커 설문조사결과 28%의 학생들이 “남자가 술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답변을 보였다는데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술에 만취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법적으로 무죄 또는 책임감경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더라도 도의적인 측면에서 A교수는 술취한 후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교수직을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동안 사건의 피해자는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교수의 행위를 참지 못하고 지난 2002년 3월 A교수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왔고, 마침내 지난 2월 25일 서울지법에서 “A씨는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비록 최종판결도 아닌 민사의 지법 판결이기는 하지만 중범죄인 강제추행죄가 인정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최종심에 가도 별로 달라질 일이 없다고 본다.

강제추행은 징역으로는 10년이하를 복무해야 하는 중범인데다가 파렴치범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제추행을 했을 때 교수직을 떠나야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술에 취했다느니, 해임이 가혹하다느니, 학문적 성실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느니 하는 위원회의 논리는 우습다.

학문적성실성은 재야에서나 계속 발휘하라고 하라. 그 정도 사건이 터지면 이미 그 학과는 그 교수로부터의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함을 모르는가?

교원징계심의위원회는 앞으로 교수들의 학내성폭력행위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 새학기도 시작되었다. A교수의 행위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 파렴치한 중범죄 행위를 묵인하고 있는 뻔뻔한 교수들과 학교 재단은 이제부터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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