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에너지정책 수립, 시스템에 의한 접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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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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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박사)

얼마전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가 발표되었다. 기술작업반 결과를 토대로 탄소중립위원회에서 2개월의 검토를 거쳐 시나리오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세부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짚어보기 어려우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이중 전환부문만 보면, 1안에는 석탄발전이 일부 남아있고, 2안에는 석탄을  빼고 가스발전만 일부 반영되었다. 3안은 화석연료 발전을 전면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 온실가스배출량은 2018년 대비 1안과 2안은 대략 97% 줄어들고, 3안의 경우 순배출량 ‘0’인 넷제로이다.

2017년 이후 에너지와 온실가스 분야에서 다양한 정책이 발표되었다. 대부분 현 정부들어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에너지 및 환경분야의 목표와 비전을 담고 있다. 2017년 ‘신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과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2018년 ‘3차 에너지 기본계획’, 2019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2020년 ‘2050 저탄소 사회비전포럼 검토안’과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그리고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등이 있다.

모두 국가에너지와 전력수급, 그리고 이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시나리오가 어떤 구속력과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탄소중립 선언에 따른 후속조치의 하나로 이해된다. 제시된 시나리오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정책이나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성격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정책 수립의 당위성과 구속력 문제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제시되면, 관련된 계획이나 로드맵 수립에 있어 사실상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만들어지는 관련분야 계획은 이미 제시된 비전이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시행계획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2017년 ‘신재생에너지 3020’이 만들어지자 이를 기반으로 '3차 에너기 기본계획'과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 최근 정합성이란 틀에서 국가계획간의 연계성이 강조됨에 따라, 개별계획의 독립적 의사결정이나 결과제시가 어렵다. 국가계획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타당하나, 어디선가 먼저 답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자잘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 많은 전문가와 인력이 참여해본들 지엽적인 내용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개별계획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목적이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 어지럽게 난립한 정책과 계획의 정비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책의 일관성 문제다. 이슈가 제기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위원회가 만들어진다.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명분으로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다. 이러한 방식이 위원회의 내실있는 운영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국가정책 개발이나 계획 수립은 일관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어느날 갑자기 급조되거나 보여주기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금도 에너지분야는 다수의 국가계획이 서로 촘촘하게 얽혀있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정부, 연구소, 대학, 주관기관 등 관련조직과 다양한 논의구조를 통해 해당분야의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문가는 물론 정치권, NGO, 지자체 등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의견제시와 피드백도 이루어지고 있다. 온실가스분야만 하더라도 이미 여러차례 공식적인 논의구조에서 검토와 분석결과가 제시되었다.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이미 있는 자료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가정책의 연속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객관성과 전문성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산업, 건물, 운송 등 많은 분야에 걸쳐있지만, 전환부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산업은 경제와 직결되어 한계가 있고, 나머지 분야도 당장 뽀족한 수단이 없거나 제한적이다. 전력이 그나마 에너지믹스를 바꾸거나 저장기술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산업이나 수송, 건물도 이미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전력이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그 비중 또한 계속 높아질 것이다. 전기자동차 보급, 전기에너지로 연료전환, IT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 주택과 건물의 분산전원 확대 등으로 전력화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 논의에서 전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구조에 전력수급 및 계획분야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환경 시민단체를 포함하여 다수의 비전문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들어 정책 수립과정에서 모델이나 계량적 접근보다는 주관적 논리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나아가 공론화, 국민참여와 같은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공청회나 청문회와 같은 의견수렴 과정과 계획수립 절차가 어지럽게 섞여있다.

언제부턴가 기술경제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던 프로세스가 정치·사회적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력분야는 수급안정, 수요관리, 계통운영, 신기술 등 상당한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정책수립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이라는 국가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에너지나 환경문제는 단순히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온실가스배출량을 전망하고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한 감축수단을 찾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수단으로 인해 국민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부담도 짚어보아야 한다.

누구도 미래의 일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재 가능한 기술과 조건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합리적으로 전망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망은 객관적인 데이터와 절차를 통해 추론하고 정량적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약 검증가능한 프로세스가 없다면 굳이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국가계획의 객관성 확보와 공감대 높이기 위해서는 시스템 기반의 정책프로세스 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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