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에너지 환경문제, 규제만으로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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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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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박사)

온실가스 감축 등 정책목표, 명확한 실현방안 보이지 않아
묘수·비책은 없어… 시장 기능 되살려 문제 해결해 나가야

 

전력산업을 흔히 규제산업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전기 뿐만 아니라 물, 에너지, 교통, 통신산업도 국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강력한 규제 대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경쟁체제 도입과 민영화의 물결이 밀려왔다. 선진국은 물론 중남미, 동남아, 동구의 국가도 지금은 대부분 시장체제를 도입하였다.

그렇다고 전력산업이 규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과거의 규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한편으로 소비자 보호,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이던 국민에게 양질의 에너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효율이 높다면 굳이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많은 국가에서 전력산업을 시장중심으로 운영하는데는 시장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미 20년전에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하였다. 발전과 판매사업에서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전력시장을 도입하여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금씩 미루어지던 구조개편은 몇 걸음 못가고 중지되었다. 아예 과거의 독점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최근 들어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탈원전과 탈석탄과 같은 새로운 정책목표가 제시되고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재생에너지 공급의무, 원전과 석탄발전의 건설 및 운전 중지,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강력한 규제장치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또한 목표달성을 위하여 에너지 신산업, ESS 보급, 전기차와 수소에너지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확대 방안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원대하고 야심찬 비전과 목표는 있으되, 실천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어느 것 하나 시장에 의해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나같이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붓거나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야 가능한 것들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전력산업에서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규제와 정책지원만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이대로 가면 과거의 규제는 그대로 둔 채 계속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는 꼴이니 명맥이나마 유지하던 시장의 숨통마저 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에너지산업은 사실 규제 뿐만 아니라 시장이라는 수단이 작동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전력가격은 실시간 경쟁을 통해 도매시장에서 결정된다. 판매과정에서 탄소나 재생에너지 부담금이 부과되기도 하지만, 소매요금에 모든 비용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반영된다. 당연히 전기요금도 이전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이나 화석연료 발전단가는 조금씩 올라가고 재생에너지 단가는 계속 낮아지니, 양자가 역전되는 ‘그리드 페리티’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되면 재생에너지 보급에 추가적인 비용인 지원금도 필요없게 된다.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인증서 즉, REC 거래가격이 ‘0’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지원금을 추가로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사업자는 시장가격만으로도 투자비를 충분히 회수할 수 있으니 서로 경쟁하게 되고 공급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커지게 된다.

엄청난 초과이익은 애시당초 가능하지도 않으며,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사업자를 중심으로 산업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려면 ESS와 같은 보완장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모두 다 사업성을 만족시키고 경쟁력이 확보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 논쟁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문제도 결국은 가격으로 귀결될 것이다. 과연 규제와 지원금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산업의 친환경화, 신산업 육성이 가능할 것인가 짚어보아야 한다.

규제의 본질은 시장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규제의 범위도 안전, 환경오염, 인허가와 같은 기본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절감, 재생에너지 공급처럼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규제를 통해 보다 큰 비용이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거나 장기적으로 사회적 편익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정책수단은 대체로 규제로 인한 의무이행, 기술개발, 추가비용과 같은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시장기능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규제란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하는 제한적인 수단이다.

공급의무화, 요금지원, 배출권 할당, 오염물질 규제 등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규제다. 그러나 규제는 이에 상응하는 비용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이를 위해 여러 지원책과 촉진방안이 강구되어야 하며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비용은 원가에 반영되고 서비스의 가격은 상승하며, 이로 인해 소비자의 자발적인 감축과 사업자의 기술적 노력이 수반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경제주체의 몫이며, 건강한 사회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시간이 흘러 문제가 해결되면 지원금은 사라지고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작동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누군가 어디선가 한마디의 선언으로 기존의 질서와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허망한 숫자를 만드는데 인력과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요금을 그대로 두어도 추가비용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디서 무슨 비용을 줄여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부채를 계속 쌓아가면서 언젠가 한꺼번에 해결하면 된다는 것일가?

2020년 이 시대에 구호와 선언만으로 복잡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이제라도 시장의 기능을 되살려서 난마처럼 얽혀있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에너지 환경문제 해결에 묘수와 비책은 없다.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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