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누드의 진정성(1)
위안부 누드의 진정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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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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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은 조화와 균형을 갖춘 육체의 아름다움을 정신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그리스의 전통이 한 때 억눌리기도 했지만 르네상스를 통해 부활했고 근대 이후로 누드 표현은 서양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한편 누드 표현의 전통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 화백의 ‘해질녘’이 일본 문부성 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자 <매일신보 designtimesp=28240>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해질녘’의 감상기가 소개되었는데 그림 사진은 나체를 보일 수 없다는 이유로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누드에 대해 생경스러움을 느끼는 우리 대중들의 태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인규 교사가 개인홈페이지에 자기 누드 사진을 올렸다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교육계와 지역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이 두해 전의 일이다.

그러다 갑자기 작년부터 누드가 넘쳐나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는 누드가 많아지면서 수익성을 위해서 저마다 차별성을 강조하느라 각종 테마누드가 기획되어 나오고 있다.

이 사이에 위안부를 대상으로 하는 이승연 누드-기획영상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까지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라는 기술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누드를 자연스러운 예술적 표현 대상·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향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상황이 이러하니 이승연의 위안부누드가 고대 그리스적 전통부터 기원하는 정신적 아름다움이 담긴, 많은 표현수단 가운데 하나로서의, 누드를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의 진정성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이는 거의 예정된 것이다. 컨텐츠제공업체들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누드 표현물을 쏟아부으면서 돈을 끌어 모으고 이렇게 넘쳐나는 누드에 한국누드협회장인 하영은씨는 “연예인의 누드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누드가 아니다” 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중은 고상한 예술적 표현으로 봐야할지 부끄러운 통속물로 봐야할지 선택의 의무감으로 당혹스러워한다.

김인규 교사 사건, 이목일 화백의 누드퍼포먼스 사건, 누드셀카축제에서 체모가 보인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된 베드러브 사건 등에서 보이는 누드에 대한 과민반응은 대중들이 선택의 의무감으로 당혹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을 방증한다.

누드를 제공하는 연예인 당사자들은 어떤가? 그들의 예쁜 얼굴과 너무 알려진 얼굴은 누드모델로서는 핸디캡이다. 몸 전체로 고루 가야할 시선을 얼굴로 끌어모아 감상을 방해한다. 힙이나 유방을 강조하는 등 그들은 애써 고혹적인 눈빛과 자태로 무엇을 느끼라고 강요하고 있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면서 벌써 예술적인 것에서 멀어져 있다. 모델들은 신체의 균형과 조화미를 느낄 수 있게, 익숙함 속의 생소함과 생소함 속의 익숙함을 찾을 수 있게 누드를 보여주지 못하고 예술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파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돈이 모이지 않았다면 애초에 누드 열풍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드 표현물에 원래 관능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상업주의와 결부해서 관능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발휘된다, 또 관능만을 강조하는 것을 개성으로 봐준다 하더라도, 상업주의는 정형성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 정형성은 흔히 예술성을 해치는 쪽으로 작용한다.

수용자 환경을 생각할 때도 범람하는 연예인 누드가 비밀스러운 온라인을 통해 개개인들에게만 보여짐으로써 누드는 공개되면, 함께 보면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준다. 결국 몸에 대한 당당한 태도를 갖기도, 몸에 대한 미의식을 확인하기도 어렵게 된다. 상업주의가 만들어내는 폐해의 전형이다.

이상과 같은 일련의 상황 속에서 위안부를 주제로 하는 이승연의 누드가 나왔는데다 기존의 누드 제작 기획과정에 비추어 볼 때 다른 점은 오직 주제가 위안부라는 점뿐이고 그 밖의 사항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이승연이 위안부누드를 누드라는 표현수단을 통한 기획영상물이라고 믿어달라고 주장하더라도 대중들은 그 말의 진정성을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민족감정까지 개입된 사안이다.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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