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누드의 진정성(2)
위안부 누드의 진정성(2)
  • 에너지데일리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04.09.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안부 누드 파문이 가라앉았다. 이승연씨는 큰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위안부 누드 문제를 더 이야기하는 것은 이승연씨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곤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전편에서 마무리짓지 못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겠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누드에 대한 인식수준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기존의 연예인누드와 차별되는 기획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진행된 이번 위안부 누드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위안부 누드의 내용이 예술적이고 기존의 누드와 차별성을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위안부 누드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상품화하여 대량으로 소비시킬 목적이 있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기획사인 로토토측은 자신들의 진정성을 시험받을 목적에서였는지 한때 시사회를 열겠다고 했지만 믿고 싶은 것을 더욱 믿는 심리로 볼 때, 시사회를 열었다 하더라도 대중들에게 진정성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이번 누드뿐만 아니라 모든 연예인 누드에 대해서 비판할 때 논거로 드는 성의 상품화와 상업주의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의 상품화와 상업주의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목일 화백의 요구르트 누드 퍼포먼스는 원래 30분으로 기획되었지만 시작한지 3분만에 중단 당했다. S우유업체의 광고용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성의 상품화일 뿐 예술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검열이다.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잘못 가해진 것이다. 메세나운동은 어쩌란 말인가? B사이트에서 실시된 누드셀프카메라페스티발은 연예인의 누드와는 달리 일반 성인들이 개개인의 평범한 몸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획으로 시작되었으나, 이 페스티발 기획자는 구속수사를 받았다. 음모나 성기, 정액 등이 보이는 사진이 게재됐다는 점과 상업주의가 구속수사의 논거다.

현재는 성의 상품화와 상업주의라는 논거만 들면 모든 비판이 완벽해지는 상황이다. 또한 누드의 진정성도 좀처럼 얻기 힘든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을 할 때는 논리의 비약을 조심해야 한다. 몸이나 성의 상품화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성평등 문화에 역행한다는 결론을 내려면 그 사이에 '인간소외'라는 논리적인 연결점을 하나 더 두어야 한다. 상업주의와 연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비판받은 누드 표현물이 많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성의 상품화가 비판받지만 지식의 상품화가 비판받지 않는 이유는 지식의 상품화는 인간의 소외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액과외 같은 지식의 상품화는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되는 학생들을 소외시키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 성의 상품화와 상업주의 역시 같은 논리를 가지고 논해져야 한다.

성을 상품화했을 때 누가 소외되는가? 대체로 상품화 대상이 소외 받기 때문에 성의 상품화를 근거로 내세우는 비판도 대체로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위안부 누드는 어떠한가. 소외된, 소외될(!) 누군가가 있나? 당연히 있다. 바로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누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생각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수익금의 일부를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쓰겠다는 말로 소외를 해소할 수 없다.

이러한 말은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는커녕 그동안 일본의 시민사회단체의 상당액의 금전 배상을 거부하는 등 금전적인 보상보다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온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위안부 누드는 잘못될 수밖에 없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이 일어나 정대협의 수요집회에는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이로 인해 빚어졌던 그들에 대한 소외를 극복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이는 역사의 진보를 이룬 작은 사건으로도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마음 고생을 많이 했을 이승연씨에 대한 지나친 소외도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주)에너지데일리
  • (우)07220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38길 13-7 주영빌딩 302호
  • 대표전화 : 02-2068-4573
  • 팩스 : 02-2068-45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병훈
  • 제호 : 에너지데일리
  •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719
  • 등록일 : 1999-07-29
  • 인터넷등록번호 : 서울 아 01975
  • 등록일 : 2012-02-16
  • 발행일 : 1999-09-20
  • 발행인 : 양미애
  • 편집인 : 조남준
  • 에너지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너지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nergydaily.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