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삶
죽음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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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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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염원한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라고 한 이유는 극히 일부이겠지만 오히려 죽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신화로나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를 건강한 삶의 대척점인 죽음을 통해 생각해보자.

이런 상상을 해보자. 인간이 수백년, 수천년 동안 살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토록 오래 사는 사람은 행복할 것인가?

필자는 수백년, 수천년 동안 산다면, 늙어가면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되면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의 극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화로 인한 끔직한 질병을 수십가지 가진 채 몇 백년을 산다면, 아마도 본인이나 가족들 모두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까. 치매 환자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이에 관해 그리이스 신화에 아주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신에게 잘 봉사한 대가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몸을 받은 무녀(巫女)가 불사의 몸에 덧붙여 늙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은 말하지 않았기에 수천년 동안 살면서 몸은 늙고 늙어 추해져갔고, 그 고통에 신에게 제발 죽게 해달라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이야기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엘리어트의 황무지에도 나오는 이 신화는 영원히 산다는 것이 불행일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묘사한 것을 또 하나 든다면 ‘걸리버 여행기’에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태어나는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람, 즉 죽지 않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늙지 않고 청춘으로 수백년 이상 산다고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사회 제도가 그대로임을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증손자, 고손자, 아니 10대 후손 이상과 같이 살아가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정말 지겨워지지 않을까?

또 나아가 사회제도나 신체가 수백년, 수천년 이상 살 수 있도록 적합하게 바뀐다 하더라도 지금의 제도로 70~80세로 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루살이는 하루가 평생이고, 인간은 70~80세가 평생이며, 하루살이의 하루는 인간의 70~80년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중세의 수도원, 수녀원에는 인골(人骨)을 비치해 두고 늘 죽음을 명상하면서, 즉 인간은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인생의 헛됨을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죽음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필자는 때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응급 소생술을 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건강한 삶은 바로 만족하는 삶이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온갖 유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면서, 죽음이란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 어차피 찾아올 손님이라면, 불청객으로 맞이하든 친구로 맞이하든 오기 마련이라면 친구처럼 맞이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행복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는 남겨진 가족에 대한 우려와 영원한 이별이 주는 단절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란 살아가면서 자기가 죽은 뒤의 일을 잘 준비해둔 사람이라는 뜻이 될 것이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일야 말로 가장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수백년, 수천년 이상 사는 것이 행복일 수 없기에 결국 자기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오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승열 / 강릉 동인병원 응급의학과장,
영동 응급의료 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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