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아가씨로 불러도 성희롱 될 수 있다
아가씨를 아가씨로 불러도 성희롱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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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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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지역 농활에 참가했던 서울대 학생들이 나이 많은 60~70대 현지 주민들이 여학생에게 ‘아가씨’, ‘아줌마’라고 부른 것에 대해 성희롱을 주장하며 예정보다 일찍 농활을 마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9일 현재 서울대 총학생회 홈페이지(http://chonghak.snu.ac.kr)는 ‘서울대 학생들이 분별없이 행동했다’며 항의하는 수많은 네티즌들로 인해 다운돼 열리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해 ‘아가씨를 아가씨로 불러도 성폭력이 될 수 있냐’고 묻고 있다. 또 60~70대 노인들이 부른 것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다며 학생들을 나무라고 있다.

충남농민회는 노인들이 ‘아가씨’,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무슨 큰 뜻을 가지고 그렇게 했겠느냐”며 “학생과 농민들 사이의 사소한 문화적 갈등”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총학생회측은 “‘아가씨’, ‘아줌마’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불쾌감이 생길만한 대화가 오가고 여학생들의 숙소에 농민들이 들어오기도 했다”며 “학생들이 성폭력 문제를 농민회측과 논의했지만 성폭력 개념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보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교감이 회식자리에서 여교사들에게 ‘술 따를 것’을 요구한 행위에 대해 여성부는 성희롱 결정 처분을 내렸으나, 서울행정법원 제2부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성희롱 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간에 다양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성희롱은 우선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의 감정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성희롱을 정의할 때는 성범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성희롱을 당하는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면 성희롱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하 세부규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정의가 되어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이러한 정의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 한번 마추치는데 여자가 기분 나쁘다고 성희롱이면 눈길 한번 제대로 못주겠네?”, “친구로서 어깨에 손을 올려도 성희롱인가?” 이렇게들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법원도 교감이 여교사들에게 ‘술 따를 것’을 요구한 것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본 듯하다.

그러나 이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 아닐까 한다. 많은 여교사들이 연속적으로 거부했다는 정황이 성희롱을 인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다. 여교사들이 성희롱이라고 생각했다는 점과 술을 따르는 것을 많은 여교사들이 연속적으로 거부했다는 점을 봤을 때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문기사를 보면 대부분의 성희롱 사례에서 성희롱이 일어난 정황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기자들이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게 보도하지 않은 듯하다. 정황을 밝혀야 한다. 성희롱사건에서 주관적인 모욕감을 뺀다면 객관적인 부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사건의 주변 상황, 즉 정황이다. 대체로 주관적인 사정보다 객관적인 사정에 따라 판단할 수 없기에 성희롱판단에는 이 객관적인 정황이 중요시된다. 똑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정황에 따라 성희롱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상 성희롱으로 엮는다면 엮이지 않을 행위는 거의 없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서부터 성희롱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불러도 성희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능글맞은 눈으로 괜히 집적대는 몸짓으로 느끼하게 “아가씨~” 이럴 때 그 아가씨가 불쾌함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이번 농활에서 문제의 여학생이 성희롱이라고 주장했는데, 아가씨라고도 부르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점 그보다는 불쾌한 대화가 오고갔다는 점, 여학생의 숙소를 들락날락했다는 점 등은 정황으로서 중요한 사실들이 될 듯하다. 따라서 아가씨를 아가씨로 부르는 것이 어쩌면 술집아가씨라는 맥락에서 부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을 확인해봐야 한다. 아마도 현재로서는 성희롱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희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성희롱을 했는지 잘 모른다고 해도, 아무리 그 사람이 60~70대 노인이라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 노인은 비판받아야한다. 나이 많은 것으로 유세를 부릴 수는 없다.

차제에 성희롱 학칙, 법규 등 성희롱 규정에 있어서 좀 더 치밀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사안별로 각각 구성요건을 달리해서 정의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성희롱연관성이 높은 행위에 의한 성희롱 사건은 보다 쉽게 성희롱이 성립하도록 하고 성희롱연관성이 낮은 행위에 의한 성희롱 사건은 좀 더 어렵게 성희롱이 성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성희롱 사건은 정황이 중요하다.

<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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