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병들었는가?
누가 병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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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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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근무하다 보면 가끔 인간의 몇 가지 특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누가 병들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병들이 정신증이나 신경증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를 진료하게 되므로 응급처치, 즉 소생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질병에 대해 최소한은 알아야 한다. 정신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이라 함은 환자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해로운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참고적으로 말하면 정신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흔히 말하는 횡설수설하고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신증이라고 한다. 환각이나 환청을 보는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이 대표적인 정신증이다.
반면 사고나 행동은 정상이지만 마음의 문제가 있는 것을 신경증이라고 한다. 히스테리, 즉 전환장애나 신체화 장애가 대표적이다.

이미 예전의 칼럼에 말한바 있지만 손발이 마비된다고 표현하면서 쓰러지는 증상이 바로 전환장애다. 그런데 전환 장애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대부분의 전환장애 환자의 보호자들 또한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환장애 자체가 보호자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무의식이 있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환자야 말할 것도 없고 보호자도 사실은 환자인 경우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전환장애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환자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다르지만 응급실에 온 청소년 환자가 있었다. 응급실에 온 이유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해서다. 때린 이유는 이 환자가 이른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비행청소년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절도, 가출 등등… 보호자가 때릴 때 이 환자는 중학생이었는데 아버지가 무서워, 공포에 질려 소변을 지릴 정도였다.

이번만이 아니라 그전에도 몇 번이나 소변을 지릴 정도였다고 한다. 보호자인 부모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보호자, 특히 모친도 나름의 진단으로는 환자였다. 그야말로 완벽주의자였다. 병적일 정도로,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기를 원하는 부모의 요구에 오히려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는 너무나 냉정하고 가혹하면서도 그 어머니는 의료진에게는 얼마나 예의 바르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지, 교양이라든지, 뭐하나 불만스러운 것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의료진에게 흠 하나 잡을 수 없이 완벽하면서 자식에게는 완벽을 요구하면서 가혹한 것은 비정상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모들은 표면적으로는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필자의 지적에 동의하고 가족이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 모두가 문제라는 필자의 조언을 받아들였지만,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보호자도 있었다. 아니 환자라도 데려온 사람은 지극히 정상이고, 보호자로 온 사람들이 오히려 환자인 경우도 있었다. 환자로 온 사람은 의료인이었다.

결혼한지 1주만에 남편과 시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자라고 해서 왔는데 응급실에 근무하는 모든 의사와 간호사의 판단은 그 반대였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정신병자일 가능성이 많고 환자는 정상이라는 것이었다. 환자로 온 사람이 의료인이었기에 담담하게 의료진들이 올바른 판단을 해줄 것을 믿고 온 경우였지만, 이 환자를 진료하면서 참으로 황당했다.

의학에서는 insight라는 말이 있다. 정신과에서 흔히 하는 말인데 병식, 즉 자기 병에 대해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한다. 정신과 환자들은 흔히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흔히 하는 말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단을 받은 말기 환자들도 일시적으로 병식을 부정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도 있지만, 자기가 병들어 자식을 병들게 하면서 혹은 자기가 병들었음에도 오히려 정상인 며느리, 아내가 병들었다고 믿거나 믿고 싶어하는 병은 사실 병식이 있기 전에는 난치다.

인간은 누구나 인격과 성격에 문제가 있다. 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과 함께 건강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병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병식이 없다면, 자기가 환자임에도 정상인 사람을 환자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김승열 / 강릉동인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영동응급의료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