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11] 에너지 효율이냐, 형평이냐
[제언-11] 에너지 효율이냐, 형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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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3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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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 / 주(駐) 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 문재도 / 주(駐) 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
고유가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소외된 계층에게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불편 없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따르면 전기 혜택 없이 사는 사람이 인도 7억명, 아프리카 5억5000만명, 아태지역 2억2000만명 등 총 16억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전기요금을 제때 못내 단전되어 촛불을 켜고 자다 일가족이 화재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한전이 동절기에는 단전을 유예하고, 에너지 기업들이 기금을 조성해 어려운 이들의 전기요금을 지불해서 최소한의 전기는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에너지를 헌법에 보장된 생존권 또는 행복추구권과 연관시키거나, 공공재라고 주장하며 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는 만큼 정부가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에너지도 시장에 의해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으며 기초생활 수급자 등 소외계층은 사회보장 차원에서 별도의 배려를 하면 된다고 한다.

현대 문명생활에서 자동차, 전자기기 등 모든 문명의 이기가 에너지 없이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란 점에서 시장에서 대체공급이 보다 원활한 일반 상품과는 사회적 파장이 다르다.

따라서 모든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에너지 분야에 어느 정도의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때로는 에너지 공급을 국가가 직접 하기도 하고, 아니면 민간 기업이 담당을 하되, 가격, 설비, 안전 분야에 규제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에너지 시장은 공정 경쟁을 위해 정부 개입이 어느 정도 수반되는 규제시장(regulated market)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사회적 형평 차원에서 소외 계층의 에너지 사용을 보다 용이하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정책은 대략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최고 가격제, 요금 승인과 같이 가격 결정에 개입하여 서민용은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도록 하거나, 특정 연료의 사용처를 지정하여 한정된 소비자들이 저렴하게 에너지를 사용토록 해주는 것이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도나 장애자용 차량에 값싼 LPG사용을 허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이 가격을 결정되도록 하되, 경제력이 약한 계층에는 보조금 지급이나 면세 조치와 같은 별도의 소득 보전을 통해 최소한의 에너지 사용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농어업용 면세유 공급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자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하고, 때때로 정책 대상과 수혜 대상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기 사용이 불가피하게 많아지는데도 지나친 전기요금 누진율로 인해 중산층의 부담이 급증하고, 병원에 갈 형편도 안되는 사람이 가정용 의료기기 사용할 경우 엄청난 전기료 부담을 지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통계미흡 등 행정 능력이 모자란 경우에 불가피하게 이용된다.

반대로 후자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우월하나 이를 집행할 행정력과 집행의 투명성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우리의 경우 과거에 전자 방식이 선호되었으나 점차 후자의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수혜 집단의 변화에 대한 저항도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민영화와 연계하여 신자유주의적 조치라고 강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시장은 효율을 가져오지만 사회가 추구하는 형평성을 항상 달성하는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형평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원가에 충실한 가격 결정 또는 시장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되 서민 보호와 같은 정책 목표는 다른 복지 수단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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