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이달중 해결 희망… 강릉시·의회 결정 관심
지난 2001년 3월, 상업운전을 개시한지 10년여만에 발전이 중지된 한국수력원자력 강릉수력발전소(도암댐).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사실 강릉수력이 문제가 됐을 당시 기자는 에너지 관련 계통에 종사하지 않을 때라 속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문제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수준이었고, 간간이 “수질이 개선돼가고 있다”는 전언만 들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발전정지 후 8년여가 흐른 지난 3월 그곳을 가볼 기회가 찾아왔다. 인제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르포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 송병훈 기자
▲ 적막감(寂寞感)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에 시설용량 8만2000kW(4만1000kWⅩ2기) 규모로 자리잡고 있는 한수원 강릉수력발전소. 지난 1991년 1256억원의 예산으로 세워진 강릉지역 유일의 수력발전소라는 나름 의미있는 곳인데도 이곳에 첫 발을 내디뎠을때 느낀 감정은 적막감이었다.
물론 어느 발전소나 규모에 비해 근무하는 직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 때 많이 근무할 때는 직원수만 80명선까지도 다달았다는데 현재는 20~30명선에 머물고 있다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이들 역시 현재 발전이 정지된 상태인 만큼 필수인원과 발전재개의 당위성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한 인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 찾아오는 사람들
그럼에도 나름 분주한, 한 곳은 있었다. 바로 홍보관. 이곳에 들어서자 일단의 시민들이 강릉수력의 현황과 수질개선 노력, 그리고 발전재개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현재까지 이곳을 찾아온 주민들만 7500여명에 달한다는 게 강릉수력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까지 오기도 이만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김창호 강릉수력발전소 소장은 “초기에는 시민들이 반대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방문을 꺼려했지만 이제는 먼저 방문 관련 문의를 해올 정도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외부에서 식사를 할 때 곱지않은 시선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한수원 직원들을 보면 스스로들 발전재개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지난해 다르고, 지난달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도 반대여론이 가셔진 것은 아니다. 김창호 소장은 “발전재개를 반대하시는 분들 대다수는 아직 한수원을 ‘못믿겠다’며 경원하고 있어 가슴 아프다”며 “하지만 지금 당장 여론조사를 해도 과반수는 발전재개에 찬성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호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반대하시는 분들의 오해를 풀어드리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관련 토론의 자리가 있다면 언제 어디라도 참석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강릉수력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도암댐 상류 고냉지 채소밭에서 비료성분(인)이 포함된 흙탕물, 대관령의 축산폐수, 용평리조트 및 횡계 지역의 생활 하수 등 오염물이 댐으로 유입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강릉수력이 도암댐의 오염된 물을 이용해 발전을 함으로써 남대천이 많이 오염된다는 시민들의 민원이 제기되면서 2001년 3월부터 발전이 중지된 것이다.
당시에는 강릉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일부 주민들은 댐 바로 밑에 텐트를 치고 생활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당시 강릉수력 등 관계자들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보이는 것보다는 과학적 잣대 중심의 대응으로 일관해 시민들의 감성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설명을 듣자 몇년 전 또다른 사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과학과 감성이 대치가 아닌 조화가 이뤄지는 때는 과연 언제쯤일까.
▲ 도암댐으로 향하다
강릉수력 본부에서 도암댐까지 가는데는 차로만 30~40분이 소요됐다. 가는 길목에서의 아직 완전히 녹지않고 있는 잔설(殘雪)과 도암댐 곳곳에 덮여있는 살얼음은 주민들에게 남아있는 불신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현재 도암댐은 발전정지에 따라 흘러들어오는 물을 수문을 통해 정선으로 방류만 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고 발전중지 이후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도암댐 상류의 오염원 저감과 수질개선에 주력해왔다.
특히 포스코에서 사용중인 수질개선장치 ‘유연성 섬유사를 이용한 고속 심층 여과기(3FM Flexible Fiber Filter Module)’ 축소판을 이용해 지난 2007년 5월부터 도암댐 상류에서 수질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장치를 이용할 경우 하루 40만톤을 처리해 초당 4톤의 물을 방류할 수 있다고 강릉수력은 설명하고 있다.
실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2005년 7월 조사한 결과 도암댐에 천연기념물인 어름치 외 24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날만큼 더이상 죽은 호수가 아니고, 발전 가능치인 2등급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발전을 재개할 경우 수온차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미 건설된 선택취수탑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상실한 신뢰는 되살리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래서 한수원은 강릉시와 의회 등에 몇가지 제안을 더하고 있다.
24시간 깨끗한 물(수질기준 2등급 이상 및 탁도 10NTU 이하)을 일정한 양(초당 약 4톤)으로 방류하고, 시청 등 강릉시민이 원하는 장소에 수질확인용 대형모니터를 설치해 항시 확인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수처리한 물의 수질이 미흡할 경우에는 즉각 발전을 중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수원은 이밖에 남대천 생태환경 조성사업, 강릉수력발전소 아래쪽(정선 방향)에의 수질개선장치 추가설치, 지역민과의 협의를 통한 20M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추가 등도 더불어 함께 살기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 남대천사랑강릉시민모임(남사모)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관련 지역의 시·군과 의회다. 특히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은 강릉시·의회가 꼽힌다.
이중 강릉시의회는 최근 의장을 중심으로 ‘찬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들어보자’는 의견이 일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강릉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남대천사랑강릉시민모임(남사모)’이라는 단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17일 150여명으로 발족한 이래 현재는 4500여명으로 회원이 부쩍 증가한 남사모. 남사모는 이름 그래도 남대천을 사랑하는 지역민들의 모임이다.
남대천은 위에서도 언급됐듯 강릉수력이 발전하면 발전후 방류되는 물이 흘러드는 강이다.
어렸을 때 맑은 물이 출렁거리는 남대천에서 뛰어 놀며 자랐다는 함영회 남사모 회장은 “서울시민에게 한강과 같은 존재가 강릉시민의 남대천”이라고 말했다.
함 회장은 “남대천이 건천(乾川)이 아니고 유량이 풍부하다면 남사모가 발족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남사모의 태생은 주민들이 현재의 남대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남대천이 살기 위해서는 강릉수력의 발전재개가 필수요건이다보니 한수원과 입장이 비슷할 뿐이며 결코 한수원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함 회장은 “현재 증고작업중인 오봉댐의 경우, 오봉댐은 기본적으로 재난방지와 농업용수를 목적으로 건설돼 남대천의 건천화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며 “우리나라의 수질개선 기술을 믿을 경우 한수원측이 제시하는 초당 4톤의 발전방류수가 남대천을 살리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릉수력이 발전을 중지한 후 현재 남대천에는 오봉댐에서 흘러나오는 초당 0.2톤의 하천유지용수와 보광천의 자연유입수만 흘러들어오고 있어 현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남대천의 건천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이는 도암댐의 저수량 5100만톤, 오봉댐 저수량 1400만톤을 비교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함 회장의 이같은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적지않은 모양이다.
늘어나는 회원수도 그렇지만 지난 1월 남사모가 주최한 ‘남대천 문제 시민 대토론회’에는 빼곡히 들어찬 시민들과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된 모습에서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전언이다.
남사모는 앞으로도 시민, 시, 의회 등을 대상으로 한 관련 토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나갈 방침이다.
함 회장은 한수원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공기업 특유의 소극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것.
함 회장은 “과거 한수원의 잘못된 행태,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불신을 키워온게 사실”이라며 “최근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여전히 신념보다는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함 회장은 이어 “과거에는 반대하는 것이 옳았지만 현재도 반대하는게 바람직한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며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고 가슴을 열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 미래는, 그리고 우리는
한수원은 여러 경로를 통해 강릉수력의 발전재개 및 도암댐 발전방류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또한 2월16일에는 강릉시의회를 방문, 설명회를 갖고 ‘남대천 수질검증위원회(가칭)’ 구성과 운영을 제안하는 등 강릉시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수원은 강릉수력이 발전을 재개해 도암댐의 물을 방류할 경우 여러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미 언급된 남대천의 건천화 방지 외에도 ▶연간 1억8000만kW의 전력공급 ▶강릉지역 단독 전력공급 가능 ▶유류 4만3000㎘(20만5000드럼) 대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비 약 9억원 ▶주민세, 법인세 등 약 6억원 ▶연각 약 60억원의 경제효과 유발 ▶각종 고용창출 등이다.
이와 관련 김종신 한수원 사장은 도암댐 문제 해결의 기한을 4월말로 정하고 강릉시와 의회의 긍정적인 답변을 희망하고 있다.
이제 어느정도 주사위는 던져진 듯 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과연 현지 관련 주민들만의 문제일까.
이같은 문제는 다시 가능성의 높고 낮음만 다를 뿌 언제 어디서건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는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도암댐 문제에서 우리를 되짚어보고 정부와 관련 기업, 그리고 지역 주민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었으면 한다. 그래야 도암댐의 지난 8년을 허송세월로 만들지 않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