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먼나라 이야기 - ‘논의(論議)’
[기자수첩] 먼나라 이야기 - ‘논의(論議)’
  • 송병훈 기자
  • hornet@energydaily.co.kr
  • 승인 2009.05.08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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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보면 현 정부는 참으로 재주가 많은 듯 싶다.

하다못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는 바른 언론과 기자조차 분석하기 힘들게 한다. 더 나아가 포기까지 하게 만드니 말이다.

‘공기업 선진화’를 예로 보자.

사기업들은 기자가 과문한 관계로 여기서는 뒤로 하고, 기자가 출입하고 있는 공기업과 자회사들의 경우 기존의 임금반납에 이어 기존 직원들에 대한 임금삭감, 그리고 미국식 연봉제로의 임금체계 조정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올해 상반기까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이같은 사안들의 시비(是非) 여부도 둘째로 치고, 이에 대한 논의의 자세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임금과 관련한 사안은 해당 기업들의 노사협의 대상임에도 실제는 ‘전혀 아니올씨다’인 모양이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이미 관련 정책에 대해 유명 로펌에 법률검토를 마쳤다고 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성실하게 협의에 임한다는 모습을 보이면 되고, 만일 마지막까지 가더라도 벌금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정책 추진에는 걸림돌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노조는 왜 있고, 협의는 왜 하나’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과거에는 말을 듣고 고민할 부분은 논의해보려는 자세가 보였는데, 이제는 귀를 막고 아예 듣지도 않으려 한다”는 노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그저 푸념으로만 지나칠 수 있을까.

노조원이 아닌 간부급 직원도 “노조도 충분히 대화를 할 자세가 돼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우쳐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자가 출입하는 또다른 민간기관의 수장격인 인사를 교체하는 방식도 ‘전혀 아니올씨다’였다는 평가다. 임기가 몇달 남지 않은, 과오보다는 공적이 더 많았다는, 더구나 민간기관임에도 그 인사를 교체하는데 그같은 모습을 보여야만 했는지 뒷말이 많다.

물론 정부의 이같은 불도저 행태에는 ‘여론’과 ‘거대 언론’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많은 직원들의 경우 “요즘 정부와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이 회사에 다니는 게 죄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자조(自嘲)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론’을 무기로 삼을 경우 과거 ‘촛불정국’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돌이켜보면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떡하나.

여기에서도 절차나 모양새를 갖추는 시간도 절약하는 것이 현 정부가 외치는 실용이라면 할 말이 없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시간낭비가 아닐까라는 생각, 더욱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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