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巨木) 정주영 회장을 기리며....
거목(巨木) 정주영 회장을 기리며....
  • 윤호철 기자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01.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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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4년 전인 지난 77년 당시 현대그룹회장은 전국 경제인 연합회회장으로 피선됐다.

당시 전경련 원로들은 정회장이 나이도 젊지만 젊은 만큼 추진력이 강해 그를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유교적 전통이 강해 가입의 규모와 관계없이 제조업체 중심으로 장자 서열의 원칙을 눈에 보이지 않게 철칙으로 삼아왔던 터였다.

그러니 당시 52세의 정회장이 전경련수장으로 추대된 것은 그때의 통념으로는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정회장은 비록 나이는 젊었으나 이때부터 전경련 회장을 믿을 만큼 이미 한국의 대표적 기업자로 성장한 터였다.

6·25직후 제1한강교 공사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낸 뒤, 65년에는 태국 고속도로 공사로 해외 건설공사의 세상을 열었으며, 68년때부터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 이를 최단시일 내에 건설하는 첨병이 됐다.

또 현대자동차와 현대조선을 잇달아 설립, 우리나라 기계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터전을 닦았다.
정회장은 서당과 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이 때문인지 그는 외모부터가 ‘노동자’ 스타일이다. 솥뚜껑 같이 큰 손은 악수를 할 때 상대방의 손을 보자기로 감싸는 듯했다. 또 엄청나게 큰 발 때문에 그가 신고 다니는 해군화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기골이 장대했다. 그러나 그는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로 위트와 달변, 논리로 무장돼 있다.

게다가 베짱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일을 밀어붙이는데 누구보다도 솜씨를 발휘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는 하도 많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할 정도다.

정회장은 89년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하면서 인생에 큰 굴곡을 맞이했다. 당시만 해도 남북간 냉전의 기류가 삼엄하던 때라 그의 방북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 언론은 이를 대내적으로 보도했고 급기야 그는 취재진을 피해 일본에서 비행기를 속여 타며 서울로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금강산 공동 개발 등 그 때 거론했던 남북경협사업이 지금까지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정주영 명예회장이 어떤 강연회에서 젊은이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정회장이 젊었을 때는 농촌지방을 다니는 일이 많았다.
한 집에서 잠들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어디서나 그러했듯이 빈대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한 끝에 세숫대야를 6개 준비해 물을 부은 다음 낮은 책상 두 개를 물 위에 세워 놓았다. 여덟 개의 책상다리를 대야 안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책상 위에 누워 자게 되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빈대들이 아무리 지혜를 짜내도 사람만이야 하겠느냐는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한참 단잠이 들었는데 빈대놈들이 물어뜯는 것이 아닌가! 불을 켜고 살펴보았더니 이놈들이 물을 건너 책상다리로 올라올 수 없으니까 벽을 타고 천장에 올라갔다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빈대에게 기습을 당한 정회장은 ‘이 놈의 빈대들이 나보다 낫구나. 그러니까 살아남는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회장은 후배들에게 ‘당신네들도 빈대만큼만 머리를 쓰면 못할 것이 없다.
빈대만도 못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해 모두가 웃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나도 빈대가 극성을 부리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정회장 같은 묘법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빈대가 없는 곳을 찾아다녔을 뿐이니.

물론 지금은 빈대 성화에 잠을 못자는 세상은 아니지만... 나는 분야가 다르므로 정회장과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그룹 사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내가 아는 정회장은 의욕이 넘치는 편이었다.
일이 없으면 살지 못할 정도로 일을 찾아다니는 성격이었다.
일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생각을 게을리 하지 않은 습성이 있었다.
일단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성취시키기 위한 방법을 계속 모색해 내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일에 대한 욕심과 성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사의 인물이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만큼의 의욕과 사고력을 갖고 일에 임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은 투지와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빈대 놈들이 나보다 낫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모습을 그려보면서 강연을 들은 청중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지금 우리 경제에는 어려움이 많다. 실업자가 100만명을 헤아릴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빈대들만큼이라도 생명력있게 도전한다면 길이 열릴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고인이신 거목 정주영 회장의 명복을 빈다.





윤호철 기자yaho@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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