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의 연쇄살인보다 더 잔인한 것
유영철의 연쇄살인보다 더 잔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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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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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인터넷 저널리스트, 인터넷 문화평론가)

20~30여년전의 기억으로 떠나는 시내버스를 타보면 버스 내부 벽면과 앞 유리창에 '금연'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경고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없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던 골초인 양아치에게 요즘은 버스 안에서 담배를 왜 안피우느냐고 물으면 "옆 사람을 생각해서 담배를 안피운다"는 이성적인 대답이 아닌 "쪽팔리잖아" 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한 집단, 한 사회 안에서 '쪽팔린다' 즉, '부자연스럽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어떤 특정한 행위나 생각를 막고 다른 특정한 행위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

사형제도 존폐의 문제는 이같은 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떠나서 이해할 수 없다. 유영철씨 사건이 터져 나온 요즘 사형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한 개인의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과 행동방식은 쉽사리 바뀌어지지 않는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논리적인 사유가 입장과 행동방식을 결정하기 이전에 직관적 감성이 입장과 행동방식을 먼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래 전에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의 국민들은 사형제도 존치국의 사형제도를 보면서 굳이 사형제도를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또 사형제도를 잔인하며 야만스럽다고 느낀다. 사형에 대해 '잔인하고 야만스럽다'는 직관적 감성이 발휘되는 것은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대해 '쪽팔린다'는 직관적인 감성을 표출하는 것과 같은 '문화의 매커니즘'이다.

문제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의 이같은 직관적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사형제도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기에 사형제도 폐지의 필요성을 잘 못느낀다. 모두가 자기 주장만 하게 되는 것이다.

유영철의 연쇄 살인행각보다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폐지론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국제 앰네스티에서는 사형제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것이다. "The death penalty is the ultimate cruel, inhuman and degrading punishment."

앰네스티의 사형에 대한 정의는 다분히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잔인하고 야만스럽다고 느끼는 감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형(斬刑)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세상에서는 참수형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실은 발전적인 사회라면 흉악범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 혹은 필요이상의 형벌의 불합리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흉악범죄를 예방해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한다는 목적으로 범죄인의 팔다리를 찢어 떼어내고 참수를 해서 잘라낸 범죄인의 머리를 번화가 한 복판에 높이 걸어둔다고 할 때, 사형제도 존치론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도 굳이 참형제도를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참형제도를 잔인하며 야만스럽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흉악범죄를 예방해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 응분의 댓가를 주는 것에 참수, 교수형, 종신형 등이 적당하다고 보는 문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존치시키는 문화와 사형제도를 폐지한 문화들 사이에서 각 문화는 서로 우열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최소한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참수형제도의 문화와 교수형제도의 문화 가운데에서의 선택결과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참수형은 잔인하고 야만스러우며 필요이상의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이말이다.

집단 내의 한 개인이 이성적인 사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쪽팔린다'는 감성을 거쳐서 행동방식을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개인의 입장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그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서 '쪽팔린다'는 직관적 감성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궁극에 있는 세계관이 도그마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를 인정하는 다원적인 것이라면 그 사회의 문화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축적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다원적인 사회라면 참수형을 하지 않는 사형제도도 참수형을 수단으로 하는 사형제도 만큼이나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느끼는 문화로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럼 이제 여기서 사형제도 폐지와 (참혹하지 않은 방법으로 처형하는) 사형제도 존치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논리적인 사유, 한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축적된 논리적 사유를 통한 사형제도 존폐론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사형제도 존치론의 논리와 사형제도 폐지론의 논리. 둘 중에 어느 것이 타당할까.

우리나라에서 순수한 사형제도 존치론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렇다. 사형제도 존폐논란에서 순수한 사형제도 존치론은 이미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타당하지 않으며 사형제도 폐지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사형제도 존치론은 사형제도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자인한다. 다만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논리를 갖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지난 1996년 11월 28일 95헌바1 판결에서 "한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위하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상조론은 논리적으로 오류를 갖고 있다. 사형제도 폐지 시기상조론을 법논리적으로 살펴보면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하여 사형제폐지라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인데. 그 조건을 곰곰히 따져본다면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평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언제 그것이 실현되어 사형제도가 폐지될 것인가?

인류 역사이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문화란 계속해서 발전하기 마련이고 문화란 상대적이어서 어느 한 시점에서 고도로 발전했다고 평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인 사회는 늘 불안정하고 시끄럽기 마련이다. 이번에 유영철씨의 연쇄살인범죄는 사형제도 존치론에 힘을 싣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형제도 폐지론에 힘을 싣는다. 사형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흉악범죄가 나왔기에 사형제도의 무용함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형제도 폐지 시기상조론이 상정하고 있는 조건은 절대로 달성불가능한 조건이다. 논리적으로 정지조건이 달성불가능 한 경우 그 문장은 무효인 문장이다. 즉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조건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것'이 달성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사형제도 폐지 시기상조론은 헛소리이고 속임수다.

유영철씨 사건으로 사형제도 존치론의 여론이 많이 늘어났지만 사형제도 폐지라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의 문제는 당장에 해결되어야할 것이며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침해 상태를 그냥둘 수 없는 것이기에 사형제도 존치론이 힘을 얻고 있는 지금의 수구반동적인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사형제도 존폐론을 둘러싼 감성논리와 이성논리는 모두 유영철의 연쇄살인행각보다 사형제도가 더 잔인함을 말해준다. 부디 사형뿐만 아니라 인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수준의 향상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가 한단계 더 높아지기를 바란다.

<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 인터넷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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