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경영혁신기법을 과신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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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3.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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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욱 / 서울대 경영대 교수

 
무분별한 기법 도입

필자는 몇년전 정부투자기관의 경영평가를 위해 모 공기업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보통 기관을 방문하기 전 그 기관이 제공해주는 경영평가 보고서를 사전에 검토한다. 필자는 보고서에서 ‘효과적인 위험 관리를 위해 6시그마 기반 위험관리 시스템을 구축, 활용하고 있다.’는 문구를 접했다. 6시그마 기법을 어떻게 위험관리 시스템에 구축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던 필자는 해당 공기업의 부사장께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렸다.

필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사장은 관련 부서 팀장에게 설명을 넘겼고 그 팀장 역시 내용을 잘 모르는 듯 급히 과장 및 실무 책임자를 호출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필자에게 돌아온 답은 ‘추후 서면으로 알려드리겠다’가 전부였다.

이런 해프닝이 비단 이 공기업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 공기업은 가히 열풍이라 불릴만큼 다양한 경영 혁신 기법들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이 정부의 정책기조로 강조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6시그마, 균형 성과표(BSC), 전사적 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등의 기법을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법들은 분명 조직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훌륭한 혁신도구다. 특히 6시그마와 BSC는 포천 지가 선정한 세계 1000대 기업의 약 40%가 도입했을 정도로 전 세계 기업이 널리 사용하고 있는 성과관리법이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이에 대해 ‘과거 75년 경영학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경영관리 툴’이라는 다소 과장된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 기법들을 도입해 성공을 이뤄낸 기업은 30%에 불과하다. 혁신기법의 도입 및 활용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투자 또한 상당하다. 경영진이 실질 인사권과 예산 집행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간기업에서조차도 상당한 사전준비와 지속적 변화관리를 진행해야만 성공할 정도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니 공기업이 첨단기법을 도입해 실질적인 성과를 이뤄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민간기업의 실패사례들

이에 대한 참고 사례가 바로 보잉과 유니바 등이다. 세계 최대 항공우주업체인 보잉은 상용기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 시스템을 대형 및 중형 컴퓨터 시스템 군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ERP를 도입한 보잉은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ERP 도입에도 불구하고 주요 관리자가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과거의 방식으로 부품을 요청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새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작업 순서를 바꾸는 관리자들도 많았다. 이 모든 일들이 겹치면서 보잉은 극심한 부품 공급 부족과 업무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석유화학 유통업체 유니바(Univar)의 사례도 비슷하다. 1990년대 초반 유니바는 심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객 획득, 리더십 효율성 등 34개의 측정 지표를 담은 BSC 기반 리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BSC가 당면한 재정위기를 극복해줄 것이란 경영진의 기대와 달리 유니바는 BSC 구축 후 BSC 이전보다 3배나 많은 16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유니바는 리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실시한 지 불과 2년 만에 이를 전면 철회하고, 기존 기업 운영 방식으로 회귀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로열 패커드(Royal Pakhoed)가 유니바를 인수했다.

일본의 내구 소비재 생산업체 빅뱅도 마찬가지다. 1000명 규모의 직원을 보유한 빅뱅은 업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혁신적인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하고 인사, 급여, 재무, 수주 관리 등 여러 기능들을 연계시킨 ERP 시스템을 구축을 시도했다. 하지만 ERP 도입 과정에서 ERP가 제공하는 업무 개혁 모델이 회사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취소했다.

선진국 민간기업의 이러한 실패 사례는 현재 국내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 공기업들이 도입을 추진하는 경영혁신기법의 상당수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낳는다. 그렇다면 첨단 혁신기법을 도입한 후 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앞의 실패 사례에 나와있다.

혁신 성공 위해서는…

첫째, 혁신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구심점, 즉 진정한 혁신의 전도사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혁신기법은 경영층이 제안하고 경영층의 지시에 따라 실무진들이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혁신기법들을 제안하는 경영층이 일반 조직원보다 그 기법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혁신 기법의 추진 방법,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자원 할당, 일정 수립, 모니터링, 위기 관리, 성과 평가를 포함한 전략적 마스터플랜 또한 제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실무진들이 어느 정도의 방향 감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상당 기간의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법을 도입할 때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경영진은 이 부정적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중장기적 성장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못하면 부정적 결과에 대한 조직 구성원의 반감과 혁신 피로감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둘째,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사전 준비는 크게 ▲회사가 처한 현실과 혁신 기법의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조직 내 공감대 형성 ▲의사결정 상의 문제점 제거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유니바의 경우 재무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 상당한 투자금을 필요로 하는 경영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과 같은 글로벌 경영 위기에서는 기업 안팎의 자금 사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또 혁신기법을 도입하기에 앞서 이 기법이 우리 조직에 왜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전사적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한다. 어느 조직에서건 구성원들은 대체로 변화를 싫어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기법을 도입한다 하더라도 조직의 구성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효과를 보장하기 어렵다. 새로운 혁신기법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의 전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특히 혁신 기법에 대한 전담인력을 두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도 혁신기법 도입 전에 제거해야 한다. 몇몇 핵심인력이나 조직 위주로 조직의 의사결정이 이뤄질 경우 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부서 간의 알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이 와중에 성급하게 혁신 기법을 도입할 경우 기존의 문제만 확대 재생산하고 조직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커진다. 의사결정 과정을 대폭 축소해 유연하고 빠르게 혁신 기법을 확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자사 환경에 맞는 솔루션을 선정해야 한다. 혁신 기법을 도입할 때 실수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과정이 바로 소프트웨어 구매다. 이 때 많은 솔루션 공급자 중에서 신뢰할 만한 공급자를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적의 솔루션 공급자를 선택하려면 그 공급자의 비전, 소유한 첨단기술 수준, 회사의 재정 및 기능 별 내부 역량, 서비스 지원 수준, 과거의 사업 실적 등을 기준으로 철저한 시장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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