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잔인한 4월, 원자력을 깨운다
[E·D칼럼] 잔인한 4월, 원자력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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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4.1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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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한국은 세계 굴지의 원전 산업국임에도 아궁이는 만들되 땔감엔 손댈 수 없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우리에겐 60년에 접어드는 원죄나 마찬가지다.

때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가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에 서명한 1956년 2월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 1973년 3월19일 발효된다.

이 협정에는 한국이 미국의 사전 동의나 허락 없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우리에겐 명백히 불평등 조항에 대한 개정의견이 끓고 있다. 이 협정이 내년 3월19일 만료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정부는 협정개정과 관련된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현재까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은 핵비확산을 위해 농축과 재처리 허용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황금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2016년이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수조공간이 가득차기 시작하니 최소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반드시 관철해야 할 막다른 골목에 서있다. 여기에 얽히고설킨 동북아 역학구조와 사그라지지 않을 북핵 위기 속에서, 더군다나 이럴 때면 살며시 고개 드는 핵무장론 소용돌이 속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4월은 죽은 땅에서 꽃을 피우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이제 한국의 원전은 40년 긴 겨울잠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펼 때다. 원죄를 털어버릴 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월12일 한국이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데 대해 민감한 시점에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한국이 요구한 권한들을 인정할 경우, 북한과 이란 문제에 미치게 될 영향에 미국이 예민하다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에 핵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만 농축과 재처리를 인정해주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세계 5위 원전 보유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확인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다시 쓰느냐, 아니면 처분해 버리느냐에 대한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해묵은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영구처분장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빼곤 심지어 미국마저도 주민 반대와 기술 난제 등에 부딪쳐 출구전략이 표류 중이다. 게다가 굴지의 원전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아궁이 못지않게 땔감도 홀로서기, 즉 국가 원자력 백년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1년에 1조원 가까이 물어야하는 연료비도 그렇지만 땔감 없이 아궁이만 내다 팔기도 점점 힘들어지는 세계 원전시장을 생각하면 우리에겐 사치가 아닌 필수인 것이다.

만약 재처리를 하게 된다면 40년 후엔 연료의 방사능이 99.9%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천연 우라늄을 천년 넘게 원전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서 목도한 것처럼 사고 시 플루토늄은 우라늄보다 더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플루토늄 239를 포함하는 초 우라늄 원소는 방사능이 떨어지는데 10만년이 넘어가며, 초 우라늄 원소를 연료로 사용하지 못할 땐 핵확산과 방사능으로 인하여 엄격하게 처분되어야 한다.

최근 미국이 중동 등 소규모 원전 도입국에는 황금기준을 철저히 적용하되, 한국 등 대규모 원전 모범국에는 개별적 접근 원칙에 따라 별도로 대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한국이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가 하면, 북한과 이란에 미칠 수 있는 후탈 때문에 결코 녹록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축과 재처리를 주도면밀하게 관철하는 외교적 설득 못지않게, 한편으로는 세계원전 연료은행이나 해외공장 합작투자 등 실리적 접근이 동시에 필요하다.

미국 바위에 한국 달걀 던지기나 마찬가지일 핵무장론으로 무임승차하는 세몰이는 백해무익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원전 산업을 접어야할지도 모를 벼랑 끝으로 우릴 내몰 수도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 북쪽의 핵을 이젠 머리에 이고, 언제라도 발등의 불로 떨어질 수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핵무장이냐 핵폐기냐, 찬핵이냐 반핵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란 보다는 남북을 아우르는 핵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유익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예까지 왔으니 사용은 한반도 모두 안전하게, 처리는 지구촌 두루 안심하게, 즉 안핵(安核)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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