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전력대란, 악의 고리를 끊어야
[E·D칼럼] 전력대란, 악의 고리를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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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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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몇 십 년만의 기록적인 폭염도 시민정신 앞에선 사그라져가는 듯하다.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되었던 마(魔)의 사흘을 국민의 감내와 기업의 협조로 가까스로 넘겼다. 하지만 기상청은 당분간 열대야와 함께 폭염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전력대란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벼랑 끝이지만 한켠으론 구름 너머 은빛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한울원전 4호기가 전력난 구세군으로 돌아온 것이다. 100만kW급 원전의 가동은 살얼음판을 걸어오던 우리에게 더 없이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번 여름 전력난은 납품비리로 인해 원전 3기를 멈춰 세운 데서 비롯됐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만큼 국가 안위와 국민 안녕에 교두보 역할을 하던 차에 탈선해버린 몇 개 원전은 35년간의 무사고 경제발전 견인을 무색하게 한다.

또한 지난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수요증가를 너무 낮게 보았던 것. 그러다 보니 발전설비를 충분히 짖지 못했고, 그마저도 민원 등으로 미루어진 것이다. 비현실적 전력수급 계획에 원전비리까지 겹치면서 전력난이 가중된 셈이다. 올해 초 전력수급계획을 다시 세워 공급능력을 늘려가고 있으니 이번 겨울을 무사히 넘기면 내년 여름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생활수준 향상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전력 수요가 전력난의 근본원인 중 하나다. 국내 총 생산량 대비 총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2배에 이른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제조업 촉진 정책의 일환으로 산업용 전력을 값싸게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싸기 때문에 더 많이 소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전력 생산의 92%를 화력과 원자력에 기대고 있다. 신재생 발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다. 따라서 주력 전원이 피로해지면 전력난은 불 보듯 뻔한 연중행사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있다.

그간 100m 직선 단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40km 넘는 곡선 장거리를 뛰기 위해 숨고르기 할 시점에 와 있다. 되풀이되는 수급불안이라는 악의 고리를 끊으려면 발전소 증설 못지않게 수요관리를, 경제성 못지않게 국민 수용성과 환경 친화성을 존중하는 발상의 전환이 동시에 필요하다.

대규모 발전소를 짓고 초고압 송전선을 설치하는 것이 이젠 쉽지 않은 데다 오히려 전력수급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분산형 발전원을 도입하고, 지능형 전력망을 건설하며, 기형적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

원전안전을 확보하고 전력수급을 안정시켜야 한다.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고, 실질적인 감독을 강화해 원전안전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과거의 실수 때문에 정작 현재의 안전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아직도 진행형인 후쿠시마의 교훈 중 하나는 녹아내린 원자로보다 더 무서운 건 무너져내린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신용이다. 마치 반 쯤 찬 물 잔처럼 절반이 나갔으니 이제는 안전하다는 그들의 억지 주장보다는 절반이 남았으니 아직도 불안하다는 우리의 소박한 민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석탄, 가스, 신재생 등을 원자력의 대안으로 숙고할 수 있지만, 경제성, 환경성, 안정성 등을 두루 만족하지는 못한다. 석탄은 싸지만 온실기체가, 가스는 비싼 게 흠이다. 풍력과 태양은 경제성은 물론 환경성, 수용성 문제를 넘어야 한다. 독일과 우리는 부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북해엔 사시사철 강풍이 불고, 남쪽엔 햇볕이 내리쬐는 넓은 평원이 있다. 부족한 바람과 햇볕과 평지는 사올 수도 없다.

일본을 봐도 그렇고 미국도 원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원전은 최근 고장, 비리 등으로 우려가 높아가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비교적 싸기 때문에 쉽사리 버릴 수 없는 자산임이 틀림없다. 다만 원전 비중을 얼마큼 할 것인가는 국내외 여건, 경제성, 수용성, 안전성, 환경성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국민과 함께 결정해야할 일이다. 신재생이 자리 잡을 때까지 원자력은 어차피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단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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