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전 판매분할 및 경쟁도입 재시도 안된다
[기고] 한전 판매분할 및 경쟁도입 재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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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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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식 / 전국전력노동조합 교육문화국장

 
정부가 최근 대표적인 시장론자가 원장으로 있는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겨, 또다시 전력산업 경쟁도입 및 민영화 추진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용역 발주과정에서 전력시장 경쟁촉진방안 모색 등을 내용으로 프랑스 전력청(EDF) 모델을 참고하라고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과장이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EDF는 발전과 판매부문을 겸업한 상태에서 송전과 배전부문이 자회사로 분리되어 있고, 전체 매출에서 해외부문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주요 전력회사다. 지난 2000년대 초반 EU의 지침에 의해 개별국가 국영회사의 힘을 약화시키고 판매부문을 경쟁시키기 위해 프랑스 정부나 EDF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추진된 모델이다.

문제는 이번 연구용역을 수의계약 형식으로 수주한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이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로서, 연구용역이 객관성을 상실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용역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산업부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과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이같은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지난 2010년에도 산업부(당시 지경부)는 KDI에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겨 한전의 ‘판매분할 및 경쟁도입’이라는 왜곡된 결과를 유도해내 많은 논란을 야기했었다.

일반 시장에서 경쟁이 효율을 높인다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식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을 인위적으로 쪼개서 다수의 사업자를 만들어 시장원리가 작동되지도 않는 경쟁을 시킨다면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중복투자 문제가 발생하고 거래비용이 늘어나는 등 전체적인 낭비요인만 발생할 뿐이다.

최근 경쟁도입 및 민영화 추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철도산업과 마찬가지로 전력산업도 완전경쟁이 불가능한 네트워크 산업이다. 재화, 서비스의 흐름이 그물망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고, 대체제가 결여되어 있어 수요가 비탄력적인 게 특징이다. 애당초 완전경쟁이 불가능하며, 경쟁체제를 유지하려고 해도 결국 일부 소수 재벌들만의 독과점 체제로 귀결될 수밖에는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영국 등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먼저 경험한 사례에서 보듯이 경쟁체제 도입 초기에는 효율성이 어느 정도 증대되고 전기요금 인하효과도 나타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율성 증대 자체가 모호해지고, 그 이득마저도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소수의 민간 사업자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여름과 겨울철마다 전력부족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어 왔으며 이번 겨울도 예외가 되지 않을 거 같다. 지난 2008년 이후 국제 발전연료 가격이 급등해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기요금 억제정책으로 수요가 급증했고, 상대적으로 비싼 타 에너지원에서 전기로의 급격한 대체수요가 발생해 전력부족 상황이 초래됐다.

또한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발전시장에 진입한 민간 발전사들이 전력수급기본계획상의 발전소 건설을 계획대로 이행하지 않고 절반이상을 취소하면서 전력 부족상황을 가중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산업 경쟁도입 및 시장화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며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오히려 현재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키고 잘못된 요금 결정구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 또한 분할된 발전자회사들을 한전으로 다시 재통합시켜 전력산업의 공익성을 강화시킴은 물론 한전을 발전, 송·배전, 판매부문을 모두 갖춘 ‘글로벌 챔피언’ 모델로 다시 육성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오로지 이윤에만 관심있는 무책임한 민간 발전사의 비중은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

전기요금 결정방식도 정치적인 상황과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임의대로 결정되는 방식이 아닌,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한 공급자, 소비자 그리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에너지 빈곤국인 우리나라에서 전력정책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추진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어느 부문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며, 잘못된 부분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루빨리 시정해 나가야 한다.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와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전력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전체 국민이 아닌 일부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계획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저항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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