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원자력, 후쿠시마 늪에서 빠져나오다
[E·D칼럼] 원자력, 후쿠시마 늪에서 빠져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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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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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후쿠시마 늪에 빠져 잃어버린 3년, 애석하게도 방사성물질 누출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 정세를 살펴보면 다행히도 사고여파는 아직까진 당초 예상보다 덜해 보인다. 최근 8조원에 이르는 2기 신규원전 건설허가는 사그라져가던 산업에 모처럼 반전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2012년 말 이후 여러 원전이 시험성적 위조나 불량부품 사용 등 불미스런 이유로 가동 중지되고, 대정전이 촛불처럼 온 국민을 불안케 한 적도 있다. 자동차, 철강, 전자 등 전력 다소비 산업국으로서 우리에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다.

140만kW 신규원전 2기는 현재 건설 중인 5기와 계획 중인 4기에 이어 2020년 완공 예정인데, 탈핵 진영에선 현 정부의 원전에 대한 국민불안을 백안시하는 처사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비리와 고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동서해안 원자력 함대는 이젠 환골탈태, 거안사위하며 국민과 함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동력으로 돌아오고 있다. 세계 원전 시장은 변화와 도전을 포고하며 우리의 발 빠른 대처와 응전을 기다리고 있다. 원자력과 온난화에 대해 기술과 비용, 부지와 시점에 대해 진지하게 공론화할 때이다.

‘판도라의 약속’은 원자력이 괴담처럼 죽음과 질병, 폭탄과 사악 산업이 결코 아니었음을 반핵에서 찬핵으로 돌아선 굴지의 운동가들이 생생하게 증언하는 기록영화. 첫 장면의 탈핵 외침은 나머지 89분의 반전으로 이어진다.

탈핵의 목소리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사실 원전은 석탄에 비해 인체에 무해하다. 원전연료에서 나오는 방사선으로 암에 걸릴 확률은 화석연료가 내뿜는 공기오염으로 인한 사망률보다 훨씬 낮다. 핵무기 제조는 원전 건설과 사뭇 다르다. 후쿠시마, 체르노빌, 쓰리마일을 굽이굽이 돌아와 이젠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엄격하게 저울질해야 할 때이다.

절체절명의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도 있을 4세대 원자로에 대해서도 숙고해야겠다. 더 싸게 지을 수도 있을 중소형 원자로도 포용해야 한다. 부지 임시저장조에 가득 찬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해서도 공론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20세기 난제를 21세기 전술로 풀어헤쳐가야 한다. 차세대 원자력이 세계 기후변화에 맞서가는 버팀목이 될 건지, 아니면 국가 백년대계를 흩트리는 걸림돌이 될 건지 열린 마당에서 열띤 얘기를 나누어야 한다.

이젠 지구촌 원자력에 드리운 구름 너머 은빛 테두리를 되찾아야 한다. 특히 원자력 소통과 국민 수용성을 살피고, 안전문화와 품질관리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돌아보건대 2011년 후쿠시마 사고와 2013년 국내원전 비리가 주는 뼈저린 교훈은 기술의 실패가 아니었다. 인원과 절차, 조직과 구조가 문제였다. 두 사건 모두 지배구조와 국민신뢰가 무너져 내린 게 원인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늦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원자력 안전띠를 졸라매고, 일반국민과 지역주민을 찾아나서야 한다. 방사능 낙진과 정신적 낙담을 생각할 때 원전사고는 규모나 결말과 무관하게 국경을 넘어간다. 국민신뢰와 주민지지를 되찾지 않고서 원자력은 이 땅에 발붙이기 힘들 것이다.

안전은 비싸더라도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최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안전과 품질은 원전 태동부터 폐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녹아들어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발전에서 녹지까지 대장정에 늘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의 지속가능한 원전은 내일의 안전품질을 보증하며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안전이라 함은 만져볼 수도, 글로 옮길 수도 없는 무형의 자산. 안전은 단순한 기계조작이나 반복동작이 아니라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작업하느냐이다. 차가운 쇳덩이가 아닌 뜨거운 유기체로 끌어안아야 한다.

오늘도 고리, 월성, 한빛, 한울에선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가 새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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