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세월호 참사와 조용한 혁명
[E·D칼럼] 세월호 참사와 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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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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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국민과 교포 모두 충격과 체념에 빠뜨린 재난, 그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정부는 보이지 않았다. 파수꾼도 사령탑도 세월호 참사 현장에는 없었다. 청와대도 재난보고는 접수하지만 사령탑은 아니었다니 총리나 장관이 알아서 할 일이었을까.

행복과 안전을 중시하고, 과학과 창조를 추구한다는 나라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불상사, 세월호 진상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명약관화하다. 진정 어린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무한책임과 같이 해야 한다. 책임을 따지기 전에 자신부터 책임지고, 바꿔라 하기 전에 자신부터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사고 직후 팽목항을 방문한 장관의 의전을 위해 잠수사 투입을 지연시킨 해경, 세월호가 침몰할 수 있다는 민원을 무시한 당국, 침몰 위험이 있는 배를 안전하다고 심사한 선급, 선박안전 심사독점을 묵인하고, 재난재해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로 대책본부를 꾸린 정부… 마치 후쿠시마의 해적판을 보는 듯하다.

조문 행렬과 함께 이제 국민 하나 둘 가슴엔 촛불이 켜지고, 소리 없는 외침이 커지고 있다. 석고대죄만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길이다. 국민이 심판이다.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군데 성한 게 없다. 유착, 비리, 관행…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해적 마피아 소리가 들린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별도의 재난관리 부처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부처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 등 국가 재난대응체제의 총체적 부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과 동떨어진 옥상옥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안전행정부의 일부 기능을 현장 중심으로 독립시키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차제에 국민안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기간산업 시설에 대한 예방책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자칫 안전관리가 소홀하면 세월호보다 더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거나,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다간 낯 뜨거운 보도가 세계 화면과 지구 지면을 달구는 건 시간문제.

현재 국내 가동 중 원전 23기 가운데 절반인 12기가 오는 2030년까지 운영허가가 끝난다. 일반적으로 설비는 초기와 말기에 고장이 생긴다. 생명과 환경을 해칠 수 있는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이 높아질 수 있는 대목이다. 다행히도 후쿠시마와 부품비리는 국내원전에는 전화위복과 거안사위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20년이 넘은 원전 9기에 1조원이 넘는 투자를 했다. 동서해안 원자력 함대는 유비무환, 순항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등 국내 1세대 원전도 국민과 당국의 엄정하고 투명한 저울질로 상생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운영과 규제에 필요한 인력이 미국이나 캐나다의 절반 수준이라는 데 있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과학기술법안에는 원전부품비리를 줄이고, 연구자의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현실화법도 포함됐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구성 이후 원자력안전법을 비롯한 주요 과학기술계 법안이 단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으나, 이번 가결로 인해 안전체계구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원전뿐만 아니라, 화력의 안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정부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화력발전소 26곳 중 15곳의 안전등급이 보통이나 불량이었다. 노후 산업단지에 대한 정부차원의 정밀 안전점검도 필요하다. 조성된 지 30년 넘은 산업단지 17곳의 최근 3년 안전사고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안전관리 체계는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방재청, 중앙정부가 단계적으로 책임지는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세월호가 보여주듯 복잡한 안전관리 체계에 따른 책임소재는 애매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노후시설과 설비에 대한 총체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

원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청와대 모두가 감독하겠다면 원전은 세월과 함께 좌초할 수도 있다. 현장에 상전(上典)이 셋이라면 그나마 딸리는 인력으로 원전은 누가 챙길 건가. 안전은 요란하게 소리 내는 게 아니라 기술자가 지역민과 함께 묵묵하게 꾸려 가는 것이다. 그래야 안심이 안전과 같이 한다.

진흥과 규제는 떼어 놓고, 한 군데 힘과 믿음과 사람을 실어주는 조용한 혁명이 하루 빨리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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