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동진 /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기고] 신동진 /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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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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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시장화 정책 즉시 중단해야

 
‘수요자원 전력시장 거래’와 ‘정부승인차액계약(VC, 베스팅 계약)’ 제도를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4월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으로 메워왔던 전력 수요관리를 민간이 시장거래를 통해 운영하고,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 간의 수익률을 조정해왔던 정산조정계수 대신 정부승인 차액계약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개정안 통과로 민간기업은 자체적으로 절전이 가능한 고객사를 모으고 이를 전력거래소에 입찰할 수 있게 되어, 민간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수요자원 전력시장 거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을 통해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그 일환으로 민간기업 참여를 허용했지만, 2004년 배전분할이 중단되면서 전력시장에서 민간 참여는 발전사업 부문에만 열려 있었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발전사업 특성 때문에 일부 대기업 그룹사만 참여해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 당초 구조개편이 목표했던 전력 판매부문의 민간 참여와 양방향 거래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전력시장 자유화를 선도적으로 추진했던 영국에서는 최근 전기요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전력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가 하락함에 따라, 자유화 이후 15년의 시장운영 결과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전력시장은 1979년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당이 집권함에 따라, 전력산업 자유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89년 전기법 제정을 시작으로 1991년 발전 민영화, 1995년 송전 민영화, 1999년 판매경쟁 전면시행을 통해 경쟁체제를 완성했다.

시장 자유화 이후 신규업체 시장진입, 인수합병, 퇴출이 진행됐고 시장 재편과정 이후 주요 6개사(Big Six)가 판매시장의 약98%를 점유하는 과점체제가 공고해졌다. 또한 요금 상승과 전력회사의 이익증가 추이가 지속되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가스·전기의 혼합 요금제(dual fuel)의 연간 평균요금 증가가 13%에 달하고, 주요 6개사의 순이익이 21.7%나 증가했다.

논란이 커지자 OFGEM(가스전력시장국)은 지난 3월 전력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전력당국이 시장의 경쟁촉진을 문제 해결책으로 인식하고 있어 에너지기업의 재국유화를 지지하는 일반 국민들과의 해결방안에 대한 인식차가 큰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68%의 국민들은 재국유화를 지지했으며, 국유화 선호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고른 지지를 얻었다.

전력산업이 자유화된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높은 전기요금과 이에 따른 에너지 빈곤층 확대 등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영국의 사례는 민영화, 경쟁도입으로 대표되는 교과서적 구조개편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9월 전국전력노동조합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의장 및 여야 간사의원들이 공동 주체한 ‘전력산업 국제 심포지엄’에서 영국 허트포드셔 대학 휼리아 다그데버런 교수는 “자유화 시스템이 도입된 영국은 요금인상으로 인한 에너지 빈곤층이 급속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의 제프 버트람 교수 또한 “전력시장 자유화가 된 뉴질랜드에서는 발전·소매 사업자의 이익은 늘었지만, 가정은 높은 전기요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 이같은 추세를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대표적인 시장론자가 원장으로 있는 에너지경제연구원에 한전의 ‘판매분할 및 경쟁’ 도입을 목적으로 한 전력산업 연구용역을 맡긴데 이어, 이번엔 국회에서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민간 사업자들이 판매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다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견제가 사라진 자본은 괴물이 될 뿐이며, 이것은 전력산업에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참사도 규제가 풀린 자본은 국민의 안전이나 편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윤 추구에만 열을 올릴 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안전을 더욱 강화해야 할 지금, 경쟁과 효율에 대한 맹신으로 전력산업에서의 섣부른 자유화를 추진하다가는 요금폭등과 수급불안이라는 부작용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소수의 재벌사업자들에게는 과다이익을 안겨주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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