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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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0.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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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전공의로서 응급실에 근무할 때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 의사가 있다. 정신과 전공의선생이다.

응급실에는 온갖 환자가 오느니 만큼 정신과 환자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과 환자의 일부는 계속 불안해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환자도 있다.

이런 환자가 왔을 때, 응급실의 의사나 간호사 누구도 달래거나 진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가 와서 환자와 몇 마디만 나누자마자 환자는 순식간에 진정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같은 의사지만 의사로서도 정신과와 정신과 의사에 대해 새롭게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진료가 끝난 후에 이 정신과 의사에 대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진정이 안 되는 환자를 순식간에 진정 시킬 수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그 정신과 의사의 대답은 이랬다.
"정신과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보기 때문에 환자도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임을 알기에 진정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맞는 말일 것이다. 보통의 의사들은 어떤 질병에 대해 원인 찾기와 치료 방법에 대해서 먼저 생각한다. 이러한 진료 방식이 정신과 환자에게도 적용되다 보니 환자를 진정시키기 어렵지만, 정신과 의사는 우선 마음가짐부터 다른 의사와 달리 무엇보다 환자를 이해하고 환자의 마음에 대해 돕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하기에 환자도 다른 의료인들이 몇 시간 걸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순식간에 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야말로 마인드(mind)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가짐, 다시 말해 장인과 전문가 정신을 가진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한달여 전이었다. 세탁소에 옷 몇 벌의 다림질을 맡겼다. 그리고 옷을 찾으러 갔는데, 옷 하나하나에 옷걸이와 비닐을 씌워 주기에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돼 조금 구겨지더라도 옷걸이 하나와 비닐 하나에 옷 모두를 걸어 주어도 된다고 했음에도 세탁소 주인은 한사코 일일이 옷 하나 하나마다 따로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손님은 문제가 없다고 해도, 손질한 옷이 구겨지면 내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이 세탁소 주인 또한 참으로 장인 정신이 있는 진정한 장인, 마스터(master)가 아니겠는가.

서양에서는 도제(제자, 문하생)를 둘 자격이 있는 기술자를 마스터(master)라고 하여 의사, 교수, 법률가, 성직자와 같은 전문가와 같이 대우했고, 지금도 대우한다고 한다.

전문가와 장인의 차이는 학문적 배경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만 단순한 기술자와 장인, 전문가의 차이는 이러한 장인 정신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장인정신이나 전문가 정신이 없는 장인과 전문가라면 단순한 기술자 이하의 돌팔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의사로서 흔히 경험하는 것이지만 돌팔이라고 해도 어떤 특정 기술, 다시 말해 반복하면 숙달될 수 있는 기술은 보통의 경험 없는 의사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돌팔이들의 치료는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차이에는 장인정신, 전문가 정신, 즉 자기가 행한 행동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 가의 여부도 해당 될 것이다. 옷 하나를 다리더라도 그 옷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장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책임감은 법에서의 책임감이 아니다. 윤리와 도덕이며, 나아가 자기의 직업에 대한 긍지에서 나오는 자기의 직업에 대한 사랑과 자기의 일에 숙달해야 할 의무감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인 정신, 전문가 정신에서 같은 의사지만 다른 의사들은 아무리 해도 진정시킬 수 없는 환자를 마술과 같이 진정시킬 수 있는 정신과 의사의 마법과 같은 치료가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인과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단순히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도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일 것이다.

설익은 음식을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듯이 기술이 좋아 보이는 돌팔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도 이러한 장인정신, 전문가 정신이 없는 것에 있을 것이다.


< 김승열 / 강릉동인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영동응급의료정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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