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한미원자력협정, 그 초라한 성적표
- 이제라도 젯밥에 향불을 피워야
[E·D칼럼] 한미원자력협정, 그 초라한 성적표
- 이제라도 젯밥에 향불을 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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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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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한미 양국이 4년이 넘는 협상 끝에 원자력협정 개정안에 가서명했다. 국내에선 선진 호혜적이다,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 길이 열렸다, 심지어 핵 주권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당일 필자는 태평양 원자력 출장 길에 오르며, 부화뇌동 추진파와 언론사를 뒤로 하며 불현듯 향불 없는 젯밥을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가 중국에서 만난 미국 전문가의 평가는 사뭇 달랐다. 이번 협정이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계속 불허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문과 국문 협정이 혹 달랐던 것일까. 가뜩이나 짙게 드리운 한반도의 원자력 안개를 거두기 위해 협상의 성과를 부풀린 건 아닐까.

한국은 농축과 재처리가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쓰고 난 연료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허가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신협약에는 이러한 요구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필자가 아직 원문을 접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정부의 성적표는 초라해 보인다.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은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이 필요할 경우 향후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도 있으며, 미국이 기존의 습식 재처리를 불허하는 대신 2011년부터 한미가 공동으로 추진해오던 고온의 건식 재처리, 소위 파이로프로세싱 여부도 향후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 한국의 건식 재처리를 허가한 것처럼 들리지만, 쓰고 난 연료에서 산소를 떼어내고 금속만 긁어 모으는 환원 공정만을 허용한 것이지, 제련이나 정련 등 후속 고난도 공정 포함, 재처리에 합의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농축이건 재처리건 향후 미국의 합의가 없으면 안 된다.

결국 미국 정부가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외교적인 수사(修辭)를 썼을 뿐, 실질적으로는 원래 협정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미국산 핵연료가 농축이나 재처리에 사용될 경우, 미국 의회의 까다로운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가능성은 ‘0’에 가까울 거라고 본다.

또 정부는 동 협정이 농축과 재처리를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소위 '황금률'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의 황금률에 동의한 나라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와 2014년 대만뿐이다. 대만은 이미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었다. 지난 3월 체결된 베트남과의 협정에도 이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일본이나 인도에 비해 많은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1988년 일본에게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했다. 핵비확산기구에도 들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내법과 국제규약까지 바꿔가면서 2008년 인도와 협정했다. 또한, 지난 4월초 미국은 이란의 농축과 재처리 활동을 인정했다.

한국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핵비확산에도 앞장을 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한 농축과 재처리에 대한 제재를 받는 반면, 인도와 이란은 핵확산 위협을 제고시켰음에도 농축과 재처리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 혹여 우리 정부에 핵 전문가가 없고 역량이 부족해 협상에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양보를 했으면 상대방의 양보도 얻어내야지, 마치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홍보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기존 협정에 비해 개선된 부분도 있다. 특히, 한미 양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국의 동의 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장비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국내 원전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향후 20년 경제는 물론 에너지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한민국의 에너지 청사진을 국민과 함께 그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어쩌면 이제 막 시작할 원자력협정이 차려놓은 젯밥에 이제라도 향불을 피워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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