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원전해체, 전문업체 설립이 시급하다
[E·D칼럼] 원전해체, 전문업체 설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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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0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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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54년 6월 26일 모스크바에서 40km 떨어진 오브닌스크에서 첫 원자로가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세계 원자력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기고, 국내만 하더라도 고리1호기가 40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달 다소 때 이른 폐로 결정에 따라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18일 운전을 영구히 멈춘다. 이후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즉시해체에 들어가도 2040년쯤에야 마치게 될 대역사(大役事)임이 분명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해체 합작회사를 따로 설립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한수원은 재무적 투자자로 외국회사는 기술적 투자자로 폐로전문 자회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실로 국내 원전해체 기술력은 일천하다. 현재 원전해체와 관련된 원론적 수준의 법만 규정돼 있는데, 이젠 해체과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한 시행령과 규칙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원전 진흥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감독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하고 있지만 해체의 경우 아직 이렇다 할 주체가 없다. 영국처럼 독립된 기관을 만든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동향을 보면 미래 블루오션 시장에 대한 기대로 정부나 한수원 모두 연구개발에 치중하고 있지만 연구개발만으론 현장적용에 한계가 있다. 원전해체기술을 전수해 준다는 업체는 많지만, 실제 핵심기술 보유업체는 기술보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원전해체사업은 특성상 바늘도 중요하지만 오랜 시간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헤쳐 홀치고 동여매 물샐 틈 없는 바느질을 하느냐 하는 데 있다. 자칫하면 아무리 좋은 바늘, 즉 기술력을 갖고 있어도 현장에선 무용지물이 되거나 마지막엔 누더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직렬과 병렬로 빼곡하게 짜인 하루하루 일정표를 수많은 작업자가 일사분란하게 일심동체로 움직여야만 원전해체라는 초대형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외사례를 돌아보면 거의 모든 원전해체 사업은 최소 2배 이상 예산을 초과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 주 원전 하나만이 예외일 정도.

여러 발전사가 통상적으로 기술개발-물자조달-토목공사 방식으로 접근했다 뜨거운 꼴을 면치 못하곤 했다. 발전사가 해체사업에 직접 뛰어드는 건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이다. 미국 발전사인 엑셀론은 원전해체를 아예 전문업체에 전담계약방식으로 맡겨 안전은 물론,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발전사 자체 예산의 20%를 아끼고 기간을 12년이나 줄인 것이다. 발전사들이 이 같은 전담계약방식의 진가를 인식하며 다른 미국 원전도 같은 방식으로 계약했다.

원전해체의 경제성은 원전의 경제성 자체로 귀결된다. 해체비용의 과대발생은 정부의 원전정책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 한수원은 발전소 운영이나 건설에 집중해야지, 경험 없이 폐로에 뛰어들었다간 해외의 실패사례를 되풀이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팽배한 반원전 분위기에 기름을 부어놓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해체는 사업의 특성상 참여경험이 필수 불가결이다. 한수원과 여러 민간업체, 외국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원전해체전문업체 합작설립의 필요성이 높아가는 이유다. 경험을 통한 기술의 체계적인 확보로 향후 국내사업 전담은 물론, 나아가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시장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공동진출을 포함한 합작투자도 가능할 것이다.

초기 국내외 현장경험으로 기술을 축적하면 국내 방사성폐기물관리와 원전해체 사업은 물론 해외로도 같이 나갈 수 있고, 정부의 원전 추진정책 당위성에 천군만마가 따로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려 깊은 결정이야말로 사면초가 원자력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묘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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