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난치병 - 빈곤과 무지
최대의 난치병 - 빈곤과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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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0.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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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밝혀진 질병들 중에는 화타나 편작 같은 명의라 할지라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질병이 있다.

한 예로 당뇨병은 현재 한국이나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병임에도 환자가 빈곤하고 무지하고 돌봐줄 가족이 없을 경우 비참하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응급실에 이런 단골 환자가 있다. 당뇨병은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하는 당분을 분해하지 못하는 병으로 식이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 등으로 잘 관리만 하면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관리를 잘못하면 온갖 성인병과 신장, 심장, 뇌에 손상을 주고 심하면 고혈당, 저혈당으로 죽기도 하는 병이다.

필자의 병원 응급실에 오는 단골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에 빠져 오는 응급실의 단골 환자다. 저혈당은 당뇨병 환자가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 술을 계속 마시거나 당뇨약이나 주사를 맞으면서 식사를 거를 때 혈당이 낮아져 의식 혼란, 혼수, 심하면 사망하게 되는 문제다.

이 환자의 문제는 당뇨병을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 수준이며, 자기 관리가 어려운 만성 알코올 중독 환자인데다, 빈곤하며 돌보아 줄 가족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육이 최고의 치료라고 하는 당뇨병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를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백가지 약이 무효인 셈이다.

이러한 환자라 하더라도 만약 의사나 간호사가 하루 24시간 따라 다니면서 식사와 음주, 치료를 전적으로 돌봐준다면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화타나 편작이라 하더라도 하루에 환자 한 명만 치료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빈곤과 무지가 함께 있는 환자는 난치 중에서도 난치가 되는 셈이다. 이런 환자에게는 최고의 치료법을 알고 있어도 치료법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의사의 한사람으로 이러한 환자를 진료할 때면 잠깐이지만 온갖 착잡한 감정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다.

치료법을 알고 있거나, 치료법이 있음에도 빈곤과 무지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환자의 증상이 악화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치료를 할 수 없을 때는 의사로서 서글픔과 비애, 사회제도, 의료비용에 대한 고려와 함께 슬픔 등이 복합돼 온갖 사회 문제를 동시에 떠올리게되며 가족 제도의 문제나 나아가서 사회적 인간으로서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비용에 대한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짚어본다면 이와 관련한 명의의 역설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의료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질병은 과잉 치료를 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확실하게 증상을 좋게 하기도 한다. 즉 과학이나 의학에서 정해진 약의 용량 이상으로 많이 쓰면 증상은 정해진 용량을 쓸 때 보다 확실히 빨리, 그리고 많이 좋아지는 질병이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의사는 정해진 용량대로 사용하고, 다른 의사는 과잉 치료를 할 때 환자들은 어떤 의사에게 가게 될까? 아마 대부분 과잉 치료를 하는 의사에게 가게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들은 환자를 통해 배운다. 예를 들어 심장 수술을 100번 한 의사와 10번 한 의사는 확실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환자가 많을수록 진료 실력이 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원칙에 입각한 치료를 고집하는 의사는 도태될 수도 있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러한 경우는 일부에 국한된다. 의사들은 전문가 집단이기에 전문가 내부의 상호비평, 이른바 동료비평(peer review)을 통해 사이비나 돌팔이 의술을 통제하기 때문에 극히 일부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부라도 일어나는 것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앞의 예는 한 개인의 무지로 인한 비극이지만, 후자의 예는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 즉 빨리 낫기만을 바라는 조급증과 의사에 대한 신뢰부족, 그리고 삶의 질과 근본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증상만을 좋게 해주기를 바라는 사회의 무지로 인한 난치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승열 / 강릉 동인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영동응급의료정보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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