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한국 원자력 산업, 정말 안녕한가
[E·D칼럼] 한국 원자력 산업, 정말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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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1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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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중국 상하이 남쪽에 건설 중인 산멘(山門) 혁신 원자로에서 기술 결함이 발견돼 공기가 3년 넘게 밀려나고 있다. 밸브와 펌프 외에도 설비를 대폭 줄여 운전원을 감축하고,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기술이라고 웨스팅하우스는 한 때 자랑했었다.

웨스팅하우스의 손실은 산멘 원자로에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안전 기준이 강화되며 곳곳에서 공사가 늦춰지고 지출이 늘어났다. 미국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1979년 미국 쓰리마일 섬 2호기 사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국 최대 원전 건설업체였던 제너럴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 두 회사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 그러나 이후 두 회사의 명운(命運)은 퍽이나 달랐다.

제너럴일렉트릭은 에너지 첨단기술 기업들을 인수 합병, 사업구조를 과감하게 바꾸며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다시 일어섰다. 반면 웨스팅하우스는 사고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최고경영자가 4차례나 바뀌는 혼돈 속에 지리멸렬했다.

도시바의 패착(敗着)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다.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기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화를 자초하고, 비대해진 몸집이 날로 쇠잔해 가는데도 반도체라는 생명줄로 근근이 버티다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다. 도시바의 이유 있는 몰락은 한국 원전 산업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역사는 짧게 보면 때론 앞으로 때론 뒤로 간다. 하지만 먼 훗날 길게 보면 넘어지고 다치더라도 조금씩 바르게 나아가고 있다. 결국 21세기가 20세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놓친다면, 그 기업은 아침 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다. 판이 바뀌면 생각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한국 원자력 산업은 안녕한가.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몇 년 살얼음 판 위에서 외줄타기를 계속해왔다. 경영진의 해이와 오판은 아무리 유구한 역사를 가진 기업이라도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원전은 지난해 말 완공된 신고리 3호기 포함 25기다. 국내 전체 발전량 중 원자력은 30%, 원전이 없으면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자력은 값싼 에너지원이지만 고장이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안전이란 보고서의 숫자나 기술자의 신념이나 경영자의 약속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것. 안전은 이런 저런 확률론의 조합이고, 싫든 좋든 복불복의 영역이다. 원전 기수가 많아질 수록, 운전 연한이 길어질수록 사고 확률은 높아진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각종 원자력 사고는 모두 기술자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는 설계 기술이, 운영 기술이 뛰어나니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언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는 정녕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만 년에 한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없을 것이 분명하고, 뒤처리는 고스란히 주민과 국민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온건식공정과 같은 불확실한 기술로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고, 이를 위해 위험천만하고 돈만 먹는 액체금속로를 선발국들보다 먼저 짖겠다고 우긴다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러시아의 쓴 맛을 우리가 다시 보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열역학을 다시 써 온배수를 따라 버려지는 열을 되찾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서 나오는 붕괴열을 빼내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가정의 전등을 켜는 것이 자연과 화합하는 첩경이다. 그러다 설계연한이 다하면 국민의 이름으로 미련 없이 닫고, 새로운 값싼 에너지원을 지금이라도 찾아나서야 한다. 인류가 돌이 떨어져 석기 시대를 접고 철기 시대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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