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원자력계, 피로감과 자괴감 가득하다
[E·D칼럼] 원자력계, 피로감과 자괴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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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0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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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무술년(戊戌年) 어귀에서 유독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이 있다고 한다. 사주카페, 어떤 곳은 1~2시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니 이 곳을 찾는 이들이 점을 보면 꽉 막힌,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이 어슴푸레 나마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우리들 앞날이 어둡다는 얘기다.

반세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원자력이라는 이름의 고리 발 열차도 이쯤 되면 울진쯤 들러 다음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도 정부도 원전도 세월도 모른다 한다.

국민은 강추위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직도 식상한 원전지역 주민소통을 외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상생보다는 배타로 에너지 전환의 외래기치(外來旗幟) 아래 탈원전이란 무대책(無對策)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원자력계 또한 환경과 시민 앞에 망연자실, 격세지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데, 무심한 한강은 흘러가기만 한다.

돌아보면 우린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많은 것을 놓치고, 서로를 버렸다. 잡았던 손들을 놓아버렸다. 원안위 권위는 진작 사라지고, 정부의 신뢰는 흔들리고, 세계최고이던 국내원전 가동률은 70%대로 떨어졌다. 국민과 함께 겨울과 함께 원자력은 얼어붙고 있다. 이곳 저곳 피로감이 역력하고 여기 저기 자괴감이 가득하다.

한때 세계 원전시장을 누비던 미국과 프랑스. 기술자가 빠져나가고 산업계가 무너져 내리며 한국,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에 밀려 나간 지 오래다. 한국의 원전 안전건설단가는 러시아나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고장 적고 기술 좋고, 가히 둘째 가라면 서러운 실력을 쌓았는데도 고향에서 홀대 받다니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탈원전도 신재생도 좋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완급이 있는 법,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은 백해무익이다. 지금이라도 고급인력 이탈을 막고 산업, 국방, 과학을 아우르는 국가 에너지 미적분을 풀어 미래 한반도 지속가능을 약속하는 종합지원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대통령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충언에 귀를 막고 막무가내로 원자력을 줄여가면, 우리에게 맞지 않을지도 모를 재생 에너지에 목매달고, 액화석탄, 연료전지, 토륨, 핵융합 등 새로운 에너지 찾는데 게으르다면 역사는 그들을, 우리를 어떻게 그릴까.

꺼질 듯 말 듯, 원자력에 관한 한 한국이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나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누가 한국의 원자력에 돌을 던졌는가? 한국은 누굴 위해 종을 울릴 것인가?

총 사업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전의 1차 관문이 4월로 다가섰다. 사우디는 원전입찰 참가국들로부터 제출 받은 원전기술과 사업실적 등을 이달 중으로 평가하고, 오는 4월까지 2~3개 후보 군으로 압축하기로 했다 한다. 이후 12월 최종입찰자를 선정하고 원전 2기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라 한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빨리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국민과 환경과 기술의 연립방정식으로 풀고 아랍에미리트 여세를 몰아 미국을 떨쳐내고 중국을 밀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좀 솔직해지자. 아직도 원자력이란 300년 동안 등푸른 물고기 먹지 말아야 하고, 사고 나면 어디로 이민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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