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한반도에 맞는 비핵화 '평화로(爐)'
[E·D칼럼] 한반도에 맞는 비핵화 '평화로(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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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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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에너지데일리]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체제보장에 합의했다. 하지만 정작 완전무결, 무한검증, 영구불능 비핵화, 즉 CVID는 온데간데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돈이 드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물밑 교섭은 물론 판문점을 넘어 싱가포르에서도 북미 간 의제협상이 진행됐지만, 비핵화는 뒷전으로 밀리고 체제보장 쪽으로 추가 기울어졌다.

미국이란 동맹국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 여정표도, 시간표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여태 가지 못했던 물길을 막배 타고 떠나는데 들를 데가 몇 군데인지, 마지막이 어디일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동북아라는 이름의 소용돌이를 뱃머리에 이고 나아가게 되었다.

한반도, 나아가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전제는 북한의 CVID 달성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CVID 의지에 대해 "그가 이행할 것이라 믿는다"고 자신했다. 결국 김정은의 어음을 트럼프가 보증할 테니 현금은 한국민이 내라는 얘기다. 북한의 CVID 없이 평화의 여정은 오를 수가 없다. 번영의 미래는 꿈꿀 수도 없다. 또다시 숨바꼭질이 된다면 지난 몇 달은 결국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미국에 대한민국의 명운을 맡겨둘 수는 없다. 북한은 군사적으로 컸을지 모르지만 남한은 경제적으로 컸다. 북한은 핵무기로 컸을지 모르지만 남한은 원자력으로 컸다. 북미 회담 결과에 대해 '합리적 의구심'을 갖고 자구책을 고심할 때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핵동결에는 잠시나마 성공한 듯 보였으나, 후일 북한이 핵탄두와 운반체를 보유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합의가 미봉책으로 역사책에 남게 된 걸 새겨 보라.

물론 북한이 바뀌어가고 있는 건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함께 한국민 모두가 그렇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지식인들이라도 그늘에서나마 나라와 겨레의 앞날들을 걱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레이건이 고르바체프를 만났을 때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틀렸다. 이번 회담을 보면서 "신뢰하지 말라, 그리고 검증하라."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지한다고 약속한 뒤 '위성 발사' 주장을 내세워 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을 했던 사례를 보며, '미끼 상술'에 혹여 또다시 넘어간다면? 북한은 이번에도 여유 있게 시간을 벌어가며, 그리고 느슨해져 갈 국제제재에 내심 반기면서 은밀하게, 위대하게 핵탄두와 미사일 개발을 마무리할 것이라 믿는다면 잘못된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원자력잠수함 건조 등 자주국방마저 쉬쉬하며, 탈원전으로 에너지 안보를 깎아 내리는 등 스스로 무장해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북핵 폐기에 그리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본토에 날아올지도 모를 대륙간탄도탄의 위협만 제거할 수 있다면 만족하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사실상 아홉 번째 핵보유국으로 간주해버릴지도 모른다.

남한은 핵을 가진 북한과 기약 없이 불안한 동거를 해야 하는 최악의 각본을 염두에 두고 생존방식을 구상해야 할 때다. 스스로 돕는 수밖에 길이 안 보인다. 세계가 인정하는 국내 원자력을 폐기할 게 아니라, 명백하고 실존하는 위협인 북한 핵무기와 핵시설을 남한의 원자력 기술로 해체하고, 북한 핵물질은 모두 수거해 국내 원자로에서 소각한 후 북한에 송전해주면 된다. 이것이 한반도를 위한, 한반도에 의한, 한반도에 맞는 비핵화이다. 평화로(路)에 이르는 길은 평화로(爐)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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