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인사 이대로 좋은가
한전 인사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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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21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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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고가 평정 방식을 고수한 결과 회사 전체의 탄력성 상실


승진적체가 거듭돼 조직의 동맥경화증을 노정할 정도로 심각

틀을 깨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데도 시도조차도 미비



한전의 2003년 정기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전은 4월 초부터 전보 인사를 시작해 21일 현재 1직급과 2직급 전보인사, 1직급에서 3직급까지의 승격 인사를 마친 상태이며 향후 4직급 승격과 전보, 승진 시험(4월 27일)을 남겨둔 상태다. 승격 인사의 경우에는 현재 대략 2천여명이 그 대상이다.

여기에서 2백 명 가량이 승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승격 이외에도 전보 인사가 지난 4월 초부터 시작해 오는 5월 초까지 직급별로 이어진다. 한 마디로 말해 한전은 지금 인사 태풍에 휩싸여 있다.

한전 인사에 문제점은 없는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사에 새 바람을 몰고 올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인사제도의 허실



국가부패방지 위원회가 실시한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한전은 ‘하위권’으로 평가 받았다. 강동석 사장의 임기는 남아 있으나 정치권에서 H씨를 차기 한전 사장으로 거론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렴도 하위권은 강동석 사장이 임기를 유지하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지난 15일 한전 본사 ‘윤리경영 실천 결의대회’에서 강동석 사장은 한전에 투명한 인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투명한 인가가 현재의 제도에 가장 시급한 일인가? 인사고가 평정, 인사위원회의 평정, 그리고 다면평가제도와 같은 제도를 놓고 볼 때 한전의 인사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투명성에 앞서 해결돼야 할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한전 인사에 있어서 문제의 본질은 승진대상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승진하지 못하면 제 위치를 확보할 수 없으므로 승진은 한전 임직원에 있어서는 절대 명제이다. 다시 말해서 한전 직원으로 근무하기 위해서는 우선 승진(승격)을 해야 한다.

한전의 2003년 승격 대상자는 앞서 말했다시피 2천여명이었다. 정기 인사철이 되면 한전이 술렁이게 되는 것이다.

승격 대상자는 최하위직급에서 시작해 1직급에 이르는 네 단계의 승급에 포함된 직원을 말한다. 승급 대상자가 되려면 우선 근무 연한이 차야 한다. 한전 입사 후 4직급으로 승진하려면 6년이, 3직급으로 승진은 7년이, 2직급으로 옮기려면 6년이, 최종단계인 1직급으로 상승하려면 2년이 필요하다. 입사 후 부장까지는 대략 15년, 처장이나 지방의 2직급 지점장이 되려면 20년이 지나야 한다.

이런 승급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게 아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할 때 2천여명의 승진 대상자 중에서 2백명 미만이 승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승진 대상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그곳에 이르렀다고 해도 승진할 확률은 1할이 채 되지 않는다.

여느 직원이 입사한 후 6년이 지나면 응시할 수 있는 4직급으로의 승진은 시험에 의한다. 입사 후 한전 업무를 파악하고 난 뒤 직원들이 바로 신경 쓰는 것은 시험공부이다. 퇴근 후에 승진을 위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 해 승진시험을 보는 직원이 부서에 있으면 그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부서에서는 그 직원의 업무를 대신 수행해 주기까지 한다.

3급 이상의 승진은 인사고과평가에 의한다. 인사고가평가의 평정자는 바로 상사이다. 이런 인사고과평가 제도에서는 상사의 입장이 절대적이다. 이는 결국 한전 문화를 상명하복(上命下服)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한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전 조직에 순발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비대한 한전 조직이 동맥경화까지 걸려 있다.

이런 동맥경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한전이 도입하고 있는 게 바로 인사위원회이다. 한전에서는 매년 20인 미만의 인사위원회를 결성해서 (상임 위원이 존재하면 거기에 로비가 따른다는 점을 고려하여) 승격 대상자들을 심사한다. 승격 대상자의 7배수를 심사하며 여기서 2배수가 사장에게 최종적으로 천거된다.

합리적인 모양새를 갖춘 듯하지만 이 제도 역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인사위원회의 평가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이는 곧 정실의 개입 여지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승진 대상자는, 승진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미리부터 잠재적인 인사위원들에게 ‘인사’를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한전에서는 인사고가 평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보완책으로 다면평가제를 도입했다. 이는 인사 부서나 상급자만이 대상자의 인사고과를 평정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부하직원도 평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평정자는 본사의 경우 부처가, 사업소는 평정 그룹내 해당자 전원이 평정자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이는 승진에서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다.

평정 대상자가 일정 점수 미만을 받으면 승격대상자에서 제외시키는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승진적체



승진 제도의 문제점보다 더욱 심각한 사항은 바로 승진 적체이다. 일반 회사는 승진에서 탈락한 이들의 퇴사를 유도하지만 한전은 그런 강제 퇴거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 않으므로 인사적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전만이 아니라 전기 관련 공공기관의 인사적체는 문제이다. 매각 입찰 대상인 남동발전을 입찰 참가자들이 다들 외면한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인적 구조의 비대성이 전혀 조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한전을 비롯한 전기 관련 공사의 인적 구조가 너무나도 방만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민영화가 아니면 풀릴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한전의 민영화는 필요하지만 바로 그런 점이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승진 적체는 총량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이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로서 지사별로 승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는 없다. 한전의 사업소들 중에서 인사가 바교적 원만한 곳은 제주도와 강원도가 꼽힌다. 제주도는 조직이 단조롭다.

강원도는 두 개의 지사를 가지고 있다. 하부 조직에 비해 상부조직이 발달돼 있어서 그만큼 인사에 숨통이 트인다. 전남지사의 경우는 24개 지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사는 한 곳이다.

광주광역시와 전남도가 분리돼 있어서 지사 역시 두 곳이 돼야 하는데도 그렇지가 못하다. 이렇게 하부구조가 비대하다 보니 승진대상자는 많이 생겨나지만 그들을 소화해낼 상부구조가 없다.

한전에서는 전국을 대상으로 인사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강원도 출신은 강원도로, 전남지사 관내 직원은 광주 전남에만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야 그렇지만 현실을 그렇지가 않다. 승격 대상자가 한두 명인 지역은 인사위원회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그 한두 명이 독점할 수 있지만 대상자가 10여 명에 이르는 지역은 그럴 수가 없게 된다. 10여 명에게 고득점이 분산되다 보니 총계에서는 뒤로 밀린다.

이와 함께 인사위원회에서는 승격대상자를 심사할 때 나름대로 ‘지역 안배’를 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즉, 강원지사, 제주지사, 전남지사 각각에 승격자가 있게 되길 원하다. 이런 차원에서 각 지사별로 승격자를 배정해 주다 보면 (각 지사별로 1, 2명이 승진하게 되는데) 그 대상자가 많은 지역을 결과적으로 차별을 받게 된다.

이런 문제점 해소를 위해서는 총량제 방식이 아닌 지역할당제 방식이 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서울대가 학생 모집에서 지역할당제를 도입한 것처럼 한전 역시 지사별로 승격 대상자 숫자를 할당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지점이 많아서 승진 요인이 많은 지역의 인사가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

- 인사 적체의 해소 방안은 없는가



인사가 곧 만사(萬事)라고 한다.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렇지만 조직원 개개인의 입장으로 보면 사실 ‘승진이 곧 만사’이다. 이와 같은 승진 절대주의의 의식에 변화가 생겨나지 않는 한, 어떤 인사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인사적체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의식변화를 위한 방안이 만들어야 할 것인가? 이런 방안은 사실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다. 승진해야만이 권한과 명예가 주어지는 현실에서 승진하지 말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의식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한전은 승진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 고려할 수 있는 것으로는 현재의 직제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승급을 일단 시키고 그들을 인사 풀(Pool)의 형태로 두고 거기에서 팀장을 보직 발령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승진에 관한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되고 능력을 갖춘 직원이 팀을 이끄는 일석이조가 이뤄진다. 이런 방식은 이미 일반 회사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것이므로 한전에서 시행한다고 해서 별다른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인사고가평정 이외의 승진 루트가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연공서열에 의한 승진 방식으로는 한전 조직의 탄력성을 담보해 낼 수 없다. 여기에 필요한 승진 방식은 일반 회사의 방안들을 참고해 보면 좋을 것이다.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남동발전소의 매각이 중단된 직후 한전의 한 직원을 그런 말을 했다. 남동발전소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전의 매각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전은 공기업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이 말에서 두 가지 사항을 시사받을 수 있다. 첫 번째 사항은, 한전은 이제껏 공기업이었다는 것. 그에 맞는 조직을 형성시켜 왔기에 민간 기업이 쉽게 운영에 나서지 못하리라고 한전 직원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

다음 사항은, 한전 직원은 회사가 민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 민영화가 되면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휘말려 제 위치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전 직원들은 한전의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직이 비대할 뿐만 아니라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한전 직원도 한전의 앞날을 어둡게 예견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에 경제 환경에 큰 변화가 와서 회사가 어렵게 되더라도 대마불사(大馬不死)일 거라는 고전적인 생각에 젖어 있다.

한전의 역대 사장들 역시 한전 조직이 비대하고 탄력적이지 못하다는, 어느 정도 군살을 제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누구도 군살제거를 위해 칼을 뽑지는 않았다. 내 임기 동안은 내 칼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임기가 무사히 끝나서 영전하면 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전은 일류기업임을 내세우고 있다. 일류는 치열한 경쟁에 의해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한전은 국내 전력산업에서 독주하고 있다. 혼자 달려서 혼자 일등해 놓고 일류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장기적인 한전 발전을 위해서 인사제도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이런 수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전은 중병을 피할 수가 없다. 이미 병에 걸려 있다는 진단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한전의 청렴도가 공공기관 중에서 하위권이라고 발표한 게 바로 그런 진단의 한 실례이다.

최소한, 한전은 현재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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