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光陵)의 숲
광릉(光陵)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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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2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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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정점 그 뒤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질문의 해답을 광릉 주위의 숲에서 찾는다

숲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견디어 낸 세월의 총합이다. 숲이라는 덩어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살아남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숲은 한 그루, 한 그루의 생명이 모여 있는 ‘생명의 바다’인 셈이다.

수도권에서 널리 알려진 숲인 광릉(光陵) 주변의 숲을 찾아나선다.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는 조선 세조(世祖) 및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의 능이다.

여기서 잠시 조선의 능들은 살펴보자. 조선의 능들은 다들 산기슭에 있고 여느 사대부의 무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거대한 산을 연상시키는 제왕의 무덤을 만들고 그것을 능(陵)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이 정도의 규모로도 능이 되는가 하고 되묻게 될 정도이다. 거기에다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를 띠다 보니 산기슭의 일부가 돼 버려서 신라 경주의 평지 능이 주는 독립성도 없다. 이런 형태는 말할 것도 없이 풍수지리에 의해 능의 터를 잡은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다.

유교가 국가 경영의 지도 이념인 조선의 왕이 풍수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유교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리라. 유교에 비추어 볼 때 세조의 생애 역시 충실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조카인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아버지인 세종과 형인 문종의 뜻을 거스른 것이다. 효를 강조하는 유교 윤리에 배치됨은 물론이다. 이런 그의 약점을 사대부들이 가만 두었을 리 없다. 사육신, 생육신이야말로 그의 약점을 그냥 넘기지 않은, 유교적 윤리에 매달린 사대부들이다. 이렇게 유교적 윤리에 억압당하게 되자 그는 불교를 장려해서 유교 세력에 대항했다. 정치적으로는 승정원의 기능을 강화해 왕권에 힘을 더함으로써 정도전 이후 사대부들이 추구해 온 왕도정치 아닌 패도정치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 세조의 이런 행위들은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경영 이념인 유교적 측면에서 본다면 거의 사문난적(斯文亂賊)에 가깝다.

절대군주로 군림하다가 그는 재위 14년 만에 죽었다. 그는 능의 조성과 관련해 봉분(封墳)에 병풍석(屛風石)을 두르지 말고 석실(石室)과 석곽(石槨)도 사용하지 말 것이며 회격(灰隔: 관(棺)과 광중(廣中)사이를 석회(石灰)로 다짐)으로 매장하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병풍석을 두르지 못하게 한 것은 그가 백성의 노고를 덜어 주기 위함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회격으로 한 이유에 관해서는 ‘내 시신은 곧바로 썩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시신이 빨리 썩어 없어지길 바란 왕. 그것은 불교의 윤회를 믿은 때문일까, 아니면 나중에 능이 파헤쳐지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세조는 생전에 단종의 어머니요 자신의 형수인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치기도 했다.) 자신의 시신이 이미 썩어 없어져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그는 생전에 지금의 광릉 자리를 자신의 무덤 터로 잡고 인근 수십 리의 산에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베어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능 주위를 금산(禁山)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광릉 주위에서 숲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그 숲 한켠에는 국립수목원이 들어선 것도) 세조의 ‘숲 만들기’에 의한 것이다.
왜 그는 조선의 여느 제왕보다 더 넓고 울창한 숲을 원했을까? 광릉으로 오르는 길에서 그런 질문을 던져본다.

자신의 시신이 빨리 썩어야 한다는 세조의 말, 그것은 육신이 만들어 낸 삶의 부질없음을 강조하는 말인 듯하다. 세조가 말년에 계유정난 때 많은 이들을 죽인 것을 후회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권력의 정점 뒤에 남은 것은 권력을 쫓은 삶의 부질없음이었을까?

세조의 무덤은 야트막한 산기슭에 있다. 마을 뒷산에서 흔히 만나는 무덤처럼 정감이 있다. 무덤은 숲 가운데 있다. 가까이도 멀리도 다 숲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숲 가운데 누워 있다.

그가 삶의 마지막에 발견한 것은 숲이 아닌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이루어낸 세월이 온전히 축적된 숲. 앞으로도 그렇게 세월이 축적되어질 숲. 그 위대한 생명의 이어짐을 그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아닌지.

생명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권력은, 정치적 명분은 왜소한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세조는 자신 스스로 만든 숲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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