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수봉(仁壽峰)
북한산 인수봉(仁壽峰)
  • 에너지데일리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03.05.05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만구족한 인수봉의 모습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이 땅의 오랜 신앙인 자연석 숭배 전통이 살아난다

바위는 이 나라 신앙의 시작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 형태로 남아 있는 고인돌에서 우리는 그런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이 땅의 고대인들은 바위를 숭상했을까? 불변의 모습이 영원불멸하는 신성과 닮았다고 여겼으리라. 불변하는 바위야말로 영원한 빛의 표상으로서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청동기 시대의 바위 숭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많은 고인돌로 지금껏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자 바위 숭배는 불심과 결합한다. 이런 결합의 결정체가 바로 석굴암의 본존불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석불(石佛)에 이르면 바위 숭배의 대상은 자연석이 아닌 형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연석, 그러니까 광개토대왕비(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에서 보듯이 자연석이 훨씬 더 장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돌을 다듬었다.

왕의 업적을 기리는 같은 비석이지만 집안의 광개토대왕 비는 자연석이고 북한산에 있었던(지금은 국립박물관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는 돌을 단정하게 다듬은 것이다.

북한산은 바위 면이 매끄러워서 그 어디에다 진흥왕의 업적을 새겨 두어도 좋을 듯한데도 지금의 세검정 위쪽의 비봉(碑峰) 바위 위에다 별로 볼품도 없는 비석을 기어이 세웠다.

여기에서 우리는 광개토대왕 때는 자연석을 존경했으나 불교가 뿌리내린 신라의 진흥왕에 이르면 사람의 손길로 바위에다 의미를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말 이후 이 땅의 돌 문화는 비석으로 대표된다. 자신의 사후 비석에 어떤 글이 쓰여질 것인지를 놓고 고려와 조선의 글쟁이와 벼슬아치들은 살아생전에 고민했다. 그것은 때로 바람직한 삶의 규율로 작용했지만 명분에 집착하게 되는 요인이기도 했다. 인도인처럼 화장해 산골(散骨)해 버리고 비석을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도 명분과 체면에 매달렸을까?

지금 이 땅은 비석 천지이다. 다들 선조들의 비석을 세우는 데 급급하다. 선조의 좋은 점을 비석에 새기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손들의 재력 과시이다.

이제 자연석 그대로를 존경하는, 그것을 친밀하게 여기는 우리의 마음은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런 마음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어떤 바위를 우러르게 되는 것일까?

금강산, 설악산과 더불어 이 땅의 대표적인 바위산인 북한산에 오른다. 북한산은 한강의 북쪽 산 혹은 북한산성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산 이름은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화산(華山) 또는 삼각산으로 불렸다.

최고봉들을 이루는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만경대가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북한산에서 인수봉을 만난다. 인수봉은 하루재 쪽으로 올라가 그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아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 모습이라는 부아악(負兒岳)의 옛 이름에 딱 들어맞는 형상이다. 사실, 여기서는 큰 감흥이 없다.

더 올라가 백운대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면 종(鐘) 모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듬직하고 이렇게 원만한 바위를 두고 우러르지 않을 수 있으랴 하고 자문하게 된다. 바위를 숭배하는 마음이 어느 틈에 솟아오르는 것이다. 비석에 의해서 오랫동안 짓눌렸으되 결코 사라지지 않은 그 마음이.

인수봉을 보고 있노라니 동국여지승람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동명왕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인수봉)에 올라 살만한 땅을 찾았다.”

인수봉에서 나라를 세울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지만 나는 그렇게만 여기지는 않는다. 비류와 온조가 인수봉에 오른 것은 그 봉우리가 한 나라의 건국과 경영의 본질을 가르쳐 줄 것이라 믿어서였으리라. 그리하여 비류와 온조는 그걸 배워 갔으리라.

인수봉의 듬직함과 원만함이, 비류와 온조가 세운 백제 왕국에 깃들여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또한 나는 믿고 있다. 인수봉을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하나의 왕국을 세울 만한 듬직함과 원만함을 삶에서 갖게 되는 것이라고.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주)에너지데일리
  • (우)07220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38길 13-7 주영빌딩 302호
  • 대표전화 : 02-2068-4573
  • 팩스 : 02-2068-45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병훈
  • 제호 : 에너지데일리
  •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719
  • 등록일 : 1999-07-29
  • 인터넷등록번호 : 서울 아 01975
  • 등록일 : 2012-02-16
  • 발행일 : 1999-09-20
  • 발행인 : 양미애
  • 편집인 : 조남준
  • 에너지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너지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nergydaily.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