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나면 바뀌는 산자부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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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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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폐기장 후보지 선정 방식 넉 달 동안 다섯 번 변경

스스로 일관성을 훼손해 온 산자부의 모습에 불신감 팽배

“며칠 후면 바뀝니다. 이것이 방사능 폐기장과 관련한 산자부의 시책이지요. 도대체 일관성마저 없는 시책을 누가 신뢰하겠어요? 다 불신합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철학은커녕 일관성마저 없는 시책을 신뢰할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불신하지요.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불신은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이 지켜질지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니까요”
전남 영광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이다. 그런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산자부가 (그 시책에 따라 움직인 한수원이) 지난 넉 달 동안 걸어온 과정을 보면 명확해진다.

지난 2월 4일 산자부는 영광,고창,영덕,울진 등 4개 지역을 방사능 폐기장 후보 부지로 선정 발표했다. 당시의 발표 분위기로는 4개 후보 중에서 2개 지역을 1년 후에 최종 후보지로 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즉각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야기됐으나 2월 초순까지의 일반적인 분위기는‘정부가 방사능 폐기장을 두 곳에다 만들려는 의지가 분명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 4월 16일, 제238회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상임위원회에서 산자부 장관은 방폐장 후보지는 두 곳 아닌 한 곳이라는 발언을 했다. 국회 산자위 상임위 회의에서 배기운의원(민주당))은 “방사능 폐기장 1곳을 건설하는 비용이 1조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2곳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무리이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도 낮다”는 지적을 하자 윤진식 산자부장관은 “애초의 입장은 방사능 폐기장을 동해안과 서해안에 각각 1곳씩 모두 2곳을 선정한다는 방침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한 곳이 선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4월 21일에는 핵폐기장 후보지를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연계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남 영광군이 양성자가속기 사업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자 핵폐기장을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묶어서 처리하려는 의도였다. 연계 방침은 10개부처 장관 명의로 발표됐다.

정부에서 핵폐기장 후보지를 신청하는 지역에 양성자가속기 사업은 물론이고 기타 지원도 해 준다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많은 장관이 동원된 것으로 해석됐다.

5월 1일에는 민간사업자 참여 방식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8월부터 10월 말까지는 원전건설 유경험 업체를 참여시켜 지역사업과 연계해 유치신청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민간사업자가 후보지 적격부지를 확보해 지자체의 건설 승낙을 받아 올 경우 그 건설을 민간사업자에게 수의계약해 주겠다는 뜻이다. 방폐장을 만들기 위해 건설사업에서 이익을 남기려는 민간업자를 유인하겠다는 시책이었다.

이어서 산자부는 방사능 폐기장이니 핵폐기장이니 하는 용어 대신에‘원전수거물 관리센터’로 명칭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관리센터는 한수원의 자회사로 운영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별도 회사로 독립시킨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현재까지 분명한 사실은 산자부의 방사능 폐기장 시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선 후보지 두 곳을 1년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해 놓고는 한 곳으로 축소했다. 애초부터 후보지를 한 곳만 선정할 셈이었는데도 2월 4일에 두 곳으로 발표했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애초에는 두 곳이었으나 나중에 한 곳으로 바뀌었다면 그 바뀐 이유에 적절한 해명이 필요하다. 또한 두 곳에 후보지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양성자 가속기와의 연계도 산자부의 일관성 없는 시책의 한 모습이다. 양성자가속기는 별도의 사업이다. 그걸 끌어다가 방사능 폐기장 후보지와 연계하려는 그 모습만으로도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양성자가속기 사업은 다른 사업을 위한 들러리 사업으로 전락해도 괜찮은 사업인가 묻게 된다.

핵이란 말에 국민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산자부와 한수원은 핵 폐기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방사능 폐기물이란 말을 써 왔다. 이제는 그 말 대신‘원전 수거물’이란 말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용어를 바꿔서 국민의 저항감을 완화할 수 있다고 산자부는 믿고 있는 것일까?

“산자부는 핵 폐기물은 잘 관리될 것이므로 안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안전한 것이라면 핵 폐기장을 서울 여의도에다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반대하는 것이다”

산자부가 방사능 폐기장 후보지들을 발표했던 지난 2월 초, 서울 마로니에 광장에서 열린 방폐장 철회 및 원전 추방 대회에서 한 참석자는 그렇게 말했다.

용어를 어떻게 바꾸든, 후보지에 어떤 당근이 주어지든 방사능 폐기장은 혐오시설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원전은 안전하다는 산자부의 주장과는 달리 원전의 위험성과 생태파괴의 요소는 세계 각지의 원전 반대론자들에 의해 주장돼 오고 있다. 한마디로 원전이나 방사능 폐기장은 혐오시설이고 위험시설이다.

산자부는 지역개발비라는 당의정을 입혀서 방사능 폐기장 건설을 추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당의정 안에 든 걸 많은 이들이 지적하면서 반대를 계속해 왔고. 이런 대치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경우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실제 다른 나라에서는 원전 반대가 거세서 더 이상 원전을 건설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들은 원전이 필요하지 않아서 건설을 포기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 또한 우리 못지않게 싸게 생산되는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건설을 포기했다. 그들은 최소한 이 점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라는 것을.

산자부의 방사능 폐기장 관련 언행에 일관성이 없다면, 산자부가 어떻게든 방폐장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임기응변을 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는 곧‘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라는 민주국가의 절대 명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민을 참여시킨다는 참여정부에서 국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반핵국민행동’의 한 회원은 방사능 폐기장과 관련된 산자부 장관의 언행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월 27일 윤진식 장관이 부임했어요. 노무현 정권의 초대 산자부 장관이지요. 그가 부임하기 전에 후보지 선정이 발표돼 있었어요. 하나의 시책이 이미 공식적으로 시행된 거지요. 그런 상황에서 윤진식 장관은 부임 후에 무슨 일을 했느냐? 그가 해 온 일은 그 시책을 네 번이나 바꾸어 온 것입니다. 장관 부임 이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동안 이렇게도 자주 시책을 바꾸었다는 것은 역대 그 어느 정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록입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꾸어갈지 걱정입니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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