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거물 관리센터’로 핵 분열된 전남 영광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로 핵 분열된 전남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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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7.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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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종교, 환경 등으로 분열

찬성측 : 어차피 들어와 있는 원전, 지역발전에 적극 활용해야



장마철인데도 모처럼 맑은 날씨인 7월 2일. 날씨처럼 영광도 모처럼 잠잠했다. 그러나, 날씨가 장마 사이의 반짝 맑음이듯 영광 읍내의 잠잠함도 오래 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 근래 들어 매일 이루어진 시위가 잠깐 멈춘, 그러니까 불안정한 소강상태인 것이다.

시위는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를 둘러싼 찬반 때문이다. 영광 원전이 있는 홍농읍 사람들은 찬성 쪽에 많이 서 있다. 영광 읍내와 영광에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원불교 쪽 사람들은 반대하는 편이다. 이런 찬반은 점점 격해져서 이제는 피차가 마주치면 몸싸움을 벌일 정도가 돼 버렸다. 영광 주민들의 마음이 핵분열을 일으킨 것이다.

영광원전으로 가는 길. 법성포 항구를 지난다. 법성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동진의 중 마라난타가 이 항구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도인이었던 마라난타의 한자 이름은 법성(法聖)이었다. 법성포는 굴비의 고장으로 영광이 알려지게 만든 항구이다. 영광 앞 칠산 앞바다에서 넘쳐나는 굴비를 잡은 배들의 기항지였다.

지금은 예전처럼 칠산 앞바다에서 조기가 잡히지는 않지만 법성포는 그래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기철이 지나서인지 갯가에는 수십 척의 어선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다. 현재 법성포는 조기를 염장하고 말려서 굴비 두릅으로 엮어내는, 세상에다 소딱, 중딱, 대딱으로 구분해서 팔기 전까지 조기를 손질하는 곳이다.

조기에 의지해서 살던 사람들이 원자력발전소라는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정부가 홍농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한 것이다. 당시 원자력발전소가 만들어지면 영광은 부유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당국에서는 말했다고 한다.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를 유치하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지금도 당국은 홍보하고 있다.)

 



반대측 : 영광원전 20년에 잃은 것은 인정이요 얻은 것은 불안


원전 건설을 두고 반발도 있었지만 지역발전의 기대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1981년 2월 1·2호기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후 3·4호기를 거쳐 현재는 6호기에 이르렀다. 영광 홍농에는 지난 20년 동안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온 것이다.

영광 원전 앞에는 시위가 없었다. 전남지역에서 시위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 중의 하나인 이곳이 오늘은 조용하다.

홍보관에서 바라본 영광 원전. 1호기부터 6호기까지 거대한 돔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전력도 생산하지만 그 부산물인 폐기물도 만들어진다. 그걸 처리한 관리센터를 산자부는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 후보지로 꼽힌 네 곳 중의 한 곳이 영광이다.

지난 28일에는 산자부장관의 영광원전 방문이 있었다. 원전 순시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관심을 끈 예정 사항은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유치위원들과의 대담과 영광 군수와의 만남. 영광원전에서 유치위원들과 대담은 이루어졌지만 영광군수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대측의 시위가 영광원전 앞에서 벌어졌던 것. 산자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원전수거물 관리센터를 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환원하면 ‘주민이 원하면 세운다’는 뜻이다.

주민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는 주민 투표가 거론되고 있다. 산자부는 지난달 26일 ‘원전 수거물 관리센터 부지 확보 사업과 양성자 기반 공학기술 개발사업 연계 추진 변경 공고안’을 발표했다. 변경 공고안의 골자는 기존의 4개 후보지 이외에도 지질 적합 판정을 받은 지역이 자율 유치 신청을 하면 그곳에도 동등한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7월 15일까지 신청지역이 없을 경우 찬반 투표를 통해 부지를 선정한다는 새로운 선정 방법이었다.

김상일(영광 홍농읍 성산리)는 핵폐기장 부지 결정은 주민 투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정당당하게 투표하고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다시 화합하고 격양된 지역민심을 순화시키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자체장은 정부에서 권고하는 주민투표제를 반드시 수용해 첨예하게 대립된 감정을 순화시키고 상호간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태영 전라남도 도지사는 6월 30일에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영광군에게 주민의 찬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 줄 것을 공문으로 요청하겠다.”며 주민투표가 바람직하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반대측이 투표 참여 자체를 반대해서 거기에 불참한다면 그 결과가 과연 주민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냐는 의문은 남는다. 전라남도 박태영 도지사는 ‘주민 확인절차(주민투표)를 거쳐야만 추후의 갈등과 논란의 소지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반대측의 투표 거부가 분명한 상황에서 투표는 또 하나의 갈등과 논란의 소지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영광 원전을 떠나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영광 읍내로 간다. 군청, 교육청, 군의회, 군농협 등의 건물이 밀집해 있는 중심가는 여느 읍내의 모습이다. 읍내 중심가에서도 영광4거리에서 북쪽으로 50여 미터 떨어져 있는 ‘군청 앞’은 영광군 주민들의 시위 무대이다.

“어제도 시위가 있었고 그제도 있었다.”

영광군청 앞에서 만난 주민의 말 한 마디가 요즘 영광 군청 앞의 상황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주민이 말했던 대로 6월 30일에는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반대 집회가, 그 이튿날인 7월 1일에는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유치 촉구 대회가 있었다.

6월 30일의 ‘핵정책 전환, 핵폐기장 후보지 백지화를 위한 원불교 성직자 100일 단식기도 회향 및 촉구대회’는 핵폐기장 반대 영광지역 원불교 비상대책위가 주관한 것으로 신도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 1천 5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영광실내체육관에서 대회를 마친 후 영광읍내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을 했다.

같은 날 광주에서는 핵폐기장 백지화·핵발전 추방 서남해안 대책위가 상무관에서 ‘NO 핵폐기장 SOS 새만금 갯벌’을 주제로 한 바람개비 환경 순례단 발대식을 가졌다.

7월 1일에는 영광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와 양성자 가속기 사업 유치를 촉구하는 주민들이 참석한 ‘영광발전을 위한 국책사업 유치 군민결의대회’가 있었다. 주민 1천여명은 영광 군청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해 ‘지역의 발전을 위해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와 양성자 가속기 사업은 유치돼야 한다.’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지역 국회의원과 군수를 성토했다. 이들은 또한 원불교 교단 측이 반대에 앞장서는 것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이미 원전이 들어선 마당에 핵 폐기장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냐?’는 논리와 함께 ‘이제까지 우리는 원전에 의해 별다른 지역발전을 이뤄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만한 대가를 받아들여서 지역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원전수거물 관리센터를 둘러싼 대립은 단순히 지역 경제에 한정된 문제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환경, 종교, 문화 등등이 뒤섞여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는 주장하는 이가 어디에다 무게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어디에다 관심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다 보니 영광의 원전 문제에서 모두들 ‘내가 옳다’고 돼 버린 것이다.

영광에서 질문하게 되는 바는 “왜 영광이 찬반이 가장 극심한가?”하는 것이다. 호남에는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후보지로 거론된 곳이 영광 이외에도 군산, 부안, 장흥 등이 있다. 그들 지역이라고 해서 찬반으로 대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광처럼 격렬하지는 않다. 그런데 왜 영광만이 이렇게 주민끼리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는 것인가?

영광읍내에서 몇 사람에게 그걸 물었다. 시장통의 굴비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도, 읍내 복개도로의 바지락칼국수집 아주머니에게도. 영광 군청 앞,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도.

할아버지는 ‘원전을 겪어 봤으니까 원전을 알아서’ 그렇게 데모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원전이 뭔지 알았다면 이제는 반대든 찬성이든 군민이 생각을 한 군데로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도 왜 찬반으로 나누어져 있는가?

그런 의문을 말하자마자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영광사람의 마음은 하나야?”

“찬성이다, 반대다 하고 연일 시위를 벌이는데 하나로 뭉쳐 있다니요?”

“그렇게 보여도 그 속은 하나야. 영광 사람들은 다들 불안해서 그래. 그 불안을 없애려고 원전이 주겠다는 지원금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고 원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영광 읍내를 벗어나 중성자 가속기 후보지로 거론된 영광 대마면을 찾아간다. 대마면의 면소재지는 여느 시골의 면소재지와 같다. 면사무소와 파출소와 몇 개의 가게들. 이런 시골 어디에 중성자 가속기가 들어선단 말인가? 둘러보아도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벼가 들어찬 논과 영광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태청산이 눈에 들어올 뿐.

길가에는 ‘원전 반대’라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꽂아 둔 지 몇 달 됐는지 이미 퇴색해 가는 그 깃발에도 이곳 주민들의 불안이 묻어 있는 것일까?

대마면에서 장성 가는 길로 차를 몬다. 영광을 벗어나면서 후사경으로 영광의 들판을 바라본다. 영광 원전에서 신광주전력소로 이어지는 송전탑이 눈에 든다.

송전탑 너머로는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영광읍에서 노인에게 들은 말이 떠오른다.

‘원전이 들어선 후 지난 20년 동안, 영광 사람들이 잃은 것은 인정이고 얻은 것은 불안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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