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은 중복(中伏)이었다. 음력 유월 유두 이틀 뒤에는 초복이며 이때부터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된다. 이시기만 되면 생각나게 하는 옛시조가 있다.
‘내게는 원수가 없어. 개와 닭이 원수로다 -벽사창(碧紗窓)/
깊은 밤에 품에 들어 자는 임을 짧은 목늘어 홰홰쳐 물어 일어나 가게하고 /
적막한 중문(重門)에 온 임을 물으락 나오락 캉캉 짖어 도로 가게하니 /
아마도 유월 유두(劉頭) 백중전에 스러져 없게 하리라’
벽사창은 여인의 방에 난창을 뜻하는 것이다. 이 시조를 읊고 있는 사람은 여인네가 분명하다. 깊은밤 남몰래 찾아와 날이 새면 떠나는 임이다. 그런데 꼭두새벽부터 장닭은 짧은 목을 길게 늘이고 날개를 홰홰치며 큰소리로 울어대어 그 연인의 품안에 곤히 잠든 임을 깨우고 만다. 새벽을 알리는 자기 소임에 충실한 닭이 어찌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염려하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수 있으랴.
개는 어떤가, 적막한밤 남몰래 시선을 멀리하고 어렵사리 들어온 임에게 물듯이 내달으며 무섭게 짖어대어 혼비백산한 임을 돌려보내고 만다.
창밖에 귀를 열어두고 초조히 임을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을 이 충성스러운 개가 알바 없다. 이렇듯 귀엽고 총명하고 충성스런 개이건만 사랑에 빠진 주인에게는 그것이 얄밉고 원수 덩어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사랑을 방해받는 주인은 몹시 화나고 상심한 끝에 결심한다.
유월 유두나 칠월 백중전에는 이것(개와닭)을 없애 버릴 것이라고. 예로부터 유두날에는 술과 고기를 장만해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가 유두 잔치를 즐겨왔다고 전해져 온다.
이것은 개나 닭을 잡아 영양을 보충함으로써 더위에 대비하던 우리네 조상들의 오랜 풍습이다. 무더운 여름날 헛간 횃대에 앉아 끄떡끄떡 졸고 있는 닭들과 마루아래 길게 누워 낮잠 즐기고 있을 우리 견공(犬公)들의 정겨운 모습이 눈에 선한데 20일 후에는 말복이라고 떠들어댈것이다. 또 이들에게 어떤 수난이 닥치려나.
윤호철 기자 yaho@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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