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수거물센터’신청이후 ‘편치않은’부안군
‘원전수거물센터’신청이후 ‘편치않은’부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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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7.27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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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반대시위에 또하나의 새만금으로 비화될 조짐
변산국립공원에 관광객 끊길 것이라며 주민들 격렬한 반발





서울에서 전라북도 부안을 가려면 이제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지만 예전에는 호남고속도를 타고 가다가 정읍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유일했다. 예전대로 호남고속도로 정읍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서쪽으로 차를 몰면 부안에 닿는다. 관문은 백산면(白山面)이 맡고 있다. 갑오농민전쟁 당시 ‘앉으면 죽산(竹山), 서면 백산(白山)’이란 말이 만들어진 곳. 백산면을 지나면서 부안군(扶安郡)이 농사꾼의 고장이요 저항의 고장이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7월 21일 한낮. 중부 지방은 장마비가 내리는데 부안은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대기는 후텁지근하고 하늘은 낮게 드리워진 먹구름으로 막혀 있다. 그래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인다는 호남평야의 남쪽자락답게 부안의 평야는 넓다. 칠월의 논은 녹색으로 윤기가 흐른다.

부안은 백제 때는 개화현이었다. 지금도 새만금지역에 개화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신라 때는 부령현 혹은 계발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 보안현과 부령현을 합하여 부안현이라 명명했다. 고종 때 군이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부안군 부안읍의 중심가는 석정로이다. 시인 신석정(辛夕汀)을 기리는 거리 이름이다. 시인을 이렇게도 극진히 대접하는 고장이 또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석정로에서 만나는 것은 자연을 노래한 신석정의 채취가 아니다.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철회를 요구하는 노란 깃발, 반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22일 오후 두시에 수협 앞에서 집회가 있다는 걸 스피커로 알리는 차량 등등이다.

석정로에 있는 부안시외버스 터미널. 농약을 사러 나왔다는 촌로는 원전수거물 관리센터를 두고 ‘핵’이라고 부른다. 촌로는 말끝에 이렇게 묻는다. “핵이란 게 수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위험하다는데 그렇다면 일개 군수가 수백년 후의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

그의 질문은 군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핵연료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군청이 있는 부풍로로 향한다. 부안의 풍성함을 기원해 부풍로라고 이름지었으리라. 부풍로 끝에 자리한 군청 앞에는 3백여 명의 군민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군청 입구는 전경들이 지키고 있다. 농성자는 구호를 외치지도 않고 전경들은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조용하다. 그러나 이것은 폭풍 전야의 고요이다.

(다음날 군청 앞에서는 ‘핵반대· 군수퇴진 부안군민 1만인 대회’가 열린다. 시위대는 7천여명. 이를 막은 전경은 40개 중대 4천 5백명. 오후 두시에 시작된 시위는 점점 격렬해져 군청 앞에 이르러서는 주민 한 명이 트럭을 몰고 군청 진입을 시도해 전경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시위대는 교육청 네거리에 폐타이어를 싸놓고 불을 지른다. 시위는 밤으로 이어지고 시위대는 외부에서 부안으로 들어오는 도로를 차단하기까지 한다.

23일과 24일에도 시위는 이어진다. 반대측에는 지역주민 만이 아니라 정치, 종교,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이들은 김종규 군수의 퇴진과 신청 철회를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시위는 계속될 것임을 밝힌다.

이런 와중에 산자부 후보선정위원회에서는 24일 부안을 최종 후보지로 발표한다. 주민의 찬반 여부를 결정의 최대 고려 사항으로 삼겠다는 말은 간 데 없고 위도가 원전수거물 관리센터가 들어서기에 하자 없는 지역이라는 발표만 한다.

 


▲부안군청앞에서 농성중인 반대측 주민들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는 산자부의 모습이 원전 반대론자들에 의해 여러 번 지적됐다는 점이 되새겨진다.)
군청 앞에서 만난 농성자는 ‘핵 폐기장이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새만금 때문에 이리 됐다.’고 말한다. 부안의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신청은 ‘새만금사업의 계속 시행을 위한 지원사격으로서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농성자들의 말대로 부안군수는 새만금사업이 계속되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신청을 한 것인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새만금사업 중단 결정이 법원에서 내려진 직후 부안군의 유치 지지자들이 ‘새만금사업이 중단되면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신청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또한 부안군은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신청을 하면서 ‘새만금에 친환경에너지 단지 조성’을 요구했는데 이 점 역시 이번의 원전수거물센터 신청과 새만금 사업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원전수거물 센터는 지역 발전이냐 아니냐 하는 소박한 지역개발론을 벗어나 개발론자와 환경론자의 대리전 양상인 새만금문제까지 얽혀서 여기에 정치색에 이미 물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부안 원전수거물센터의 전도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부안읍에서 벗어나 원전수거물 센터에 반감이 가장 높다는 변산반도로 향한다. 변산반도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등교거부까지 시키면서 반대를 표명했다. 여름방학이 돼 등교거부 사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불씨는 2학기에도 남아 있다.

 


▲고사포 해수욕장 앞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 변산 해수해변지역 주민들은 원전수거물 센터에 관해 부안에서 가장 반대가 심하다.





변산반도에는 국립공원이 있다. 변산반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지역을 외변산이라 하고 내륙을 내변산이라고 부르는데 내변산이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변산반도에는 격포 해안의 채석강(彩石江), 신라 때 창건한 내소사(來蘇寺), 그 높이가 20여 미터에 이르고 수량이 풍부한 직소폭포(直沼瀑布), 고사포해수욕장, 월명암 낙조대 등이 있다.

변산반도 들머리에는 신석정 시인의 시비가 있다. 거기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새만금 방조제가 보인다.

석정의 시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차츰차츰 멀어갑니다./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그 시에 나오는 ‘기인 둑’이며 ‘까마귀’가 주는 이미지가 새만금 둑,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트럭으로 연결된다. 시인은 오늘을 예전에 예감한 것일까?

신석정 시비에서 멀지 않은 것에 풍력발전용 풍차가 서 있다. 풍력발전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새만금 지역에 세운 두 기 중의 하나이다.

새만금의 방조제를 이용해 풍력발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나왔다는 걸 기억하면서 다시금 풍차를 올려다본다. 풍차는 돌지 않고 바닷바람만 맞고 서 있다.

해안 도로는 변산해수욕장과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난다. 길에는 원전수거물 관리센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널려 있다. 그 현수막 아래로 위도가 보인다. 원전수거물 관리센터가 들어설 곳.

위도(蝟島)는 변산반도 격포항에서는 서쪽 14㎞거리에 위치한 섬이다. 낚시꾼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 섬은 총면적 11.14평방㎞이며 36㎞에 걸쳐 뻗어있는 복잡한 해안선에 의해 그 모습이 웅크린 고슴도치를 닮아 있다. 그래서 섬 이름에 고슴도치 위(蝟)자가 들어간 것이다.

고사포 해수욕장 입구에서 상가 주민을 만난다. 그는 국립공원 인근 지역에 혐오시설을 건설하면 국립공원의 관광객이 다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려서 서울과 인천에서 많은 관광객이 옵니다. 그들이 놀러오는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채석강에서 보면 위도가 보입니다. 거기에 핵폐기장이 들어서 봐요. 누가 놀러 오나요? 오지 않아요. 영광 원전 옆의 가마미 해수욕장이 좋은 예 아닙니까? 거기 누가 와요? 아무도 오지 않잖아요?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변산은 죽어요. 변산이 죽으면 부안도 죽는 거예요. 이런데도 지역발전을 위해 핵폐기장을 들여오겠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상가 주민의 그 한 마디가 부안에서 왜 그렇게도 원전수거물 관리센터 반대 시위가 격렬한지를 명확하게 알려 준다.

이걸 한수원은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어떤 대책이 있는가?

한수원에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일본은 관광지 인근에 원전이 있어도 그 관광지에 관광객이 몰린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국적불명의 발언이다. 일본 상황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일본은 일본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또한 원전수거물 센터가 안전하다는 말만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것도 역시나 무책임하다. 체르노빌은 두고라도 미국의 시리마일 섬 사고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미국의 한 보고서에서 핵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1억분의 1’이라고 말한 지 5년 후에 일어난 그 사고를 말이다.

해거름, 채석강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안면도의 꽃지해수욕장과 더불어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곳.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곳에서 연인과 이별을 해도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곳. 그 낙조를 오늘은 기대할 수 없다. 바다는 장마철 비안개가 끼어 뿌옇게 보이고 위도는 흐릿한 윤곽만 잡힐 뿐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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