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을 제외한 순수 출국자만 보더라도 신기록 수립 전망에는 변함이 없다. 승무원을 제외한 2014년 출국자 수는 1,472만6,000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10월에 일찌감치 이 수준에 올랐다. 올해 1~10월 순수 출국자 수는 전년동기대비 20% 증가한 1,472만4,000명으로 2014년 전체 기록과 비슷했다. 10월까지의 성장률을 2014년 전체 기록에 적용해 2015년 전체 기록을 추정하면 1,772만명 수준에 이른다.
이 예측대로 간다면 올해 우리나라 아웃바운드 시장규모는 사상 최초로 일본을 앞선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5년 앞선 1964년에 해외여행자유화 조치가 이뤄져 규모 측면에서 줄곧 우리나라를 앞서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역전됐다. 승무원을 포함하지 않는 일본의 관광통계와 같은 기준으로 산출해 비교해도 올해 들어 매월 누적실적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그 격차도 매월 커졌다. 10월까지 승무원을 제외한 일본인 출국자 수는 전년동기대비 4.5% 감소한 1,352만명에 머물렀지만 우리나라는 1,472만명으로 120만명이나 많았다. 이 추세가 11월과 12월에도 지속되면 올해 일본인 출국자 수는 1,614만명에 머물러 우리보다 150만명 이상 적을 전망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22일 발표한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11월까지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37만6,155명으로 전년동기대비 16.2% 증가했으며, 외국인 입국자 수는 1,589만8,425명으로 31.2% 늘었다.
2015년 전체 실적에 올해 11월까지의 성장률을 반영해 2016년 전체 실적을 추정하면 내국인 출국자 수는 2,243만8,720명으로 최초로 2,000만명 시대를 열며, 외국인 입국자 수는 1,735만9,926명으로 새롭게 1,700만명 시대에 진입한다. 승무원을 제외한 순수 출입국자로도 역대 최고 수준이다. 승무원을 제외한 2016년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89만5,688명, 외국인 입국자 수는 1,585만9,913명에 달할 전망이다.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 모두 사상 최고 기록이다.
인-아웃바운드 규모 사상 최고 기록 달성에 힘입어 연간 항공여객 수도 최초로 1억명을 돌파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연간 항공여객 수는 1억379만명(국내선 3,083만명, 국제선 7,296만명)에 이르며 항공 역사상 최초로 1억명을 돌파한다. 이는 1948년 우리나라 민간항공기 취항 이후 68년 만의 일이다.
【뉴시스와이어】지난 17일 국토교통부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우리나라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가 2098만 9885대로 집계되었고,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생활권이 서울에서 경기권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으며, 소유 연령층 또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며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하지만 자동차 등록대수가 증가는 결국 차량 사고의 증가도 견인하고 있어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1년 먼저 태어난 아이보다 6개월 더 살 것으로 예상됐다. 남녀 간의 기대수명 차이는 전년과 변함이 없었다.
통계청이 3일 내놓은 ‘2014년 생명표’에 따르면 작년에 태어난 아기의 기대수명은 82.4년으로 1년 전(81.9년)에 비해 0.5년이나 늘었다. 지난해 출생한 아기가 2013년에 태어난 아이보다 반년을 더 오래 살 것으로 기대된다는 의미다. 10년 전인 2004년과 비교하면 4.4년 늘었다.
작년에 태어난 남자 아기의 기대수명은 79.0년, 여자 아기는 85.5년이었다. 2013년에 비해 남녀 모두 약 0.5년 늘었다. 지난해 출생 남녀 아기 사이의 기대수명 차이는 6.5년가량으로 전년 조사 때와 같았다.
한국 남성의 기대수명(79.0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1.2년, 여자(85.5년)은 2.4년 높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나라는 남성의 경우 스위스(80.7년), 여성은 일본(86.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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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 한국의 기대수명은 81.1년으로 OECD 평균 80.1년보다 길었다 .......
올해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상여금을 포함해 평균 월 290만90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278만4000원보다 4.5% 증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414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임금협상 결과 등을 토대로 최근 실시한 ‘2015년 임금조정 실태조사’에서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졸 초임은 종업원 100∼299인의 경우 256만1000원, 300∼499인, 279만5000원, 500∼999인, 294만1000원, 1000인 이상, 318만6000원으로 대기업으로 갈수록 임금이 높았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270만6000원, 도매 및 소매업 275만5000원, 제조업 280만2000원, 운수창고 및 통신업 294만원, 금융 및 보험업 328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런 임금 정책은 일본 기업과 정반대다. 일본의 대졸 초임은 한국보다 적다. 대신 직위가 높아질수록 임금이 확 뛴다. 성과와 생산성이 검증되기 전인 신입사원 때는 임금을 적게 주고, 역할과 책임이 무거워지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에선 능력과 상관없이 기업의 규모에 따라 임금 격차가 크다. 한국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대졸 초임이 26%나 차이 난다. 일본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5%가 채 안 된다. 이러다 보니 한국 청년들은 일본과 달리 대기업 입사만 노린다. 이런 임금 불균형이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불균형)와 청년실업의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지난해 4만6664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4번째라고 한다. 특히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떼고 근로자가 손에 쥐는 세후 순소득은 4만421달러로 순위가 6위로 껑충 뛴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스위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호주 네덜란드뿐이다. 미국 일본 독일 스웨덴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이 한국보다 낮다. 한국은 물가가 싼 편이고, 세금·사회보험료(사업주 부담분 포함) 합계도 21.5%로 OECD 평균(36.0%)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 통계는 5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기준이어서 근로자 간 임금격차 등 실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62.2%에 불과하다. 노사정위원회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저임금 근로자(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 비중은 25.1%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근로자 세후 순소득은 어느덧 웬만한 선진국보다 많은 수준이 됐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으로 더 오를 것이다. 지난 5년간 인건비가 50% 이상 올라 노동비용이 일본 수준이 됐다는 GM 측의 불평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니다.
그동안 근로자는 ‘유리알 지갑’이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정치권이 각종 세금감면을 지속적으로 늘려온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근로자 임금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비중이 4.6%로 칠레(0%)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15.6%)에 비해선 3분의 1에 불과하다. 근로자의 48.0%는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도 된다. 세금은 덜 떼고 임금 격차와 하후상박만 강조하다 조세체계가 엉망이 된 결과다.
흔히 복지국가의 모델로 북유럽 선진국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 근로자들이 임금에서 떼는 소득세가 한국 근로자의 4~7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한국 사회다.
구매력평가(PPP)를 기준으로 한 한국 근로자의 평균연봉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섰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의 1인당 평균 연봉은 3만5406달러(약 4017만원)로 일본의 3만5143달러(약 3987만원)에 비해 263달러(약 29만8000원) 많다. PPP 기준 연봉은 각국의 물가를 반영해 실제 구매력에 따라 산출한 것으로 OECD는 이를 실질 연봉으로 간주한다.
높은 연봉 수준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증가율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실질 연봉 증가율은 4.51%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 29개 회원국 중 순위가 20위에서 17위로 1년 만에 3단계가 뛴 것도 주목된다.
근로자의 연봉 수준이 높아진 것은 이제 우리도 실질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관행에 고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현실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반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OECD 통계가 정규직만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 구매력평가 기준 ... OECD 국가 중 10위 ... 미국 일본은 오히려 한국보다 낮은 수준 .......
..... 우리나라보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대부분 상여금, 숙박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 ........ ]
한국 최저임금, 선진국에 비해 어느 수준일까
2015-03-09
노사정위·경총 "절대·상대적 수준 OECD 중위권"…노동계는 "하위권" 주장
정치권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게 불거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어느 정도일까.
9일 노사정위원회의 임금보고서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환산 최저임금액은 1만2천38달러로 세계경제협력기구(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14위로 중위권이다.
호주(3만839달러)를 선두로 프랑스(2만2천788달러, 7위), 영국(2만226달러, 9위), 일본(1만6천43달러, 10위), 미국(1만5천80달러, 11위) 등이 한국 앞에 있고 스페인(1만1천995달러, 15위), 터키(6만304달러, 18위), 멕시코(1천285달러, 25위) 등은 한국보다 낮다.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환산한 우리나라의 연간 최저임금액도 1만4천576달러로 OECD 국가 중 10위에 있어 낮지 않은 수준이다.
미국(1만5천80달러, 11위), 일본(1만5천34달러, 12위)은 오히려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때 영국, 프랑스 등 우리나라보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대부분 상여금, 숙박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더 높아질 개연성이 크다.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따지면 전년보다 7.1%(370원) 오른 5천580원이다.
8시간을 기준으로 한 일급으로는 4만4천640원, 월급으로는 116만6천220원, 연간으로는 1천399만4천640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 대비한 최저임금(시장환율 기준)은 OECD 회원국과 주요 신흥경제국 26개국 중 12위 수준이다.
한국 100.0을 기준으로 베트남(180.2), 독일(155.3), 프랑스(143.9), 인도네시아(135.1), 영국(129.2), 중국(113.9)은 한국보다 높고 터키(99.9), 호주(91.6), 일본(71.6), 미국(63.7)은 우리보다 낮다.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도 낮지 않은 편이다.
OECD는 2013년 우리나라의 시간당 중위수 임금총액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43.3%로 비교대상 25개국 중 18위라고 발표했다.
터키(69.4%), 프랑스(61.3%), 영국(46.9%)보다는 낮지만 일본(39.0%), 미국(37.4%)보다는 높다.
노동연구원의 임금실태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3년 6∼8월을 기준으로 시간당 중위수 임금총액 대비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은 49.7%로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50%에 근접한 수준이다.
청년 고용률이 낮은 것은 20대 초반 인구 가운데 취업자가 비정상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25~29세의 고용률(69.2%)은 OECD 평균(71.9%)보다 낮기는 해도 격차가 크지 않다. 하지만 20~24세 고용률(44.5%)은 OECD 평균(55.2%)에 크게 못미친다.
정부는 취업 연령이 높은 이유로 군(軍) 복무, 높은 대학진학률 등을 꼽는다. 특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지배적인 데다 졸업까지 늦추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경향도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층의 대학교육 이수율은 66%로 6년째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 회원국의 청년층 대학교육 이수율은 평균 39% 수준이다. 높은 대학 진학률 영향으로 한국의 최초 취업 연령은 2004년 22.5세에서 2013년 23.5세까지 올라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학 진학자들의 눈높이는 대기업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이런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며 기업과 학생들의 눈높이가 다른 '미스매치'가 결국 청년 고용 문제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1인당 주거면적도 한국이 현재 26㎡로 일본(36㎡),미국(68㎡),영국(38㎡) 등 선진국에 비해 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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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추격속도지수 순위는 ..... 2009년엔 99위(14점)까지 떨어졌으나 2012년 62위, 2013년 41위에 이어 지난해 19위로 ......... ]
한국 경제추격속도 1년새 41위에서 19위로 상승…불황 속 '선방'
2015-09-23
중국은 추격속도 3계단 하락, 미국 일본은 '현상유지'
한국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선진국을 쫓아가는지를 의미하는 추격속도지수가 지난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한국이 상대적으로 선전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사단법인 경제추격연구소(소장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3일 발표한 ‘2015 국가추격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추격속도지수는 2013년 71점에서 지난해 84점으로 높아졌다. 국가별 순위도 같은 기간 41위에서 19위로 22계단 상승했다.
경제추격속도지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세계경제 대비 한국의 GDP 비중 증가율을 가중평균한 값이다. 한 국가가 다른 경쟁국에 비해 선진국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의 추격속도지수 순위는 2002년 세계 11위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보여 2009년엔 99위(14점)까지 떨어졌으나 2012년 62위, 2013년 41위에 이어 지난해 19위로 3년 연속 상승했다. 한국의 지난해 1인당 GDP 증가율이 세계 42위에서 28위로 오르고, 세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율도 58위에서 19위로 상승한 영향이다. 추격속도지수 1~3위는 투르크메니스탄,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순이었다. 2013년 3위였던 중국은 6위로 세 계단 하락했다.
한국이 미국 경제ㆍ금융 언론 블룸버그가 매기는 혁신지수 순위에서 4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 블룸버그가 발표한 2017년 혁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종합점수 89.0점을 얻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4년 이후 4년 연속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스웨덴 독일 스위스 핀란드가 2~5위를 기록했고, 일본 7위, 중국은 21위를 기록했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연구ㆍ개발(R&D) 지출 집중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성 ▦첨단기술 집중도 ▦교육 효율성 ▦연구 집중도 ▦특허활동 등 7개 부문으로 구분해, 국가의 혁신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평가다. 한국은 이 중 제조업, R&D, 특허에서 1위, 교육 효율성에서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생산성에서는 32위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저조한 순위를 기록했다.
세계 20위권대 평가를 받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와 달리 유독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순위가 매년 잘 나오는 것은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용의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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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PO는 2013. 7. 1. 프랑스 경영대학원 INSEAD, 코넬 대학교와 공동으로 2013년도 글로벌 혁신 지수 보고서를 발표함. 지난해와 비교해 글로벌 혁신 지수 순위 상위권 그룹에 속한 국가 명단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중위권에서 소득이 중간 정도 되는 국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혁신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이 확인됨. 올해의 주제는 ‘지역 혁신’으로 이 보고서에는 글로벌 혁신 지수 외에 지역 혁신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 분석 내용이 담겨 있음.
□ 글로벌 혁신 지수의 개요
○ 글로벌 혁신 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이하 “GII”라고 함)의 조사는 연구 보고서의 수나 R&D 지출 수준을 기준으로 했던 전통적인 혁신 측정 방법에서 벗어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사회 전반의 혁신 관련 지표들을 분석해 좀 더 정확한 혁신 측정 방법을 마련하고자 프랑스의 명문 경영대학원인 INSEAD가 2007년부터 글로벌 혁신 지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작됨.
몇 해 전 교환교수로 오신 러시아 교수님이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샛노래져서 나를 찾아왔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 안에 지갑을 두고 내린 것 같단다. 버스에 떨어뜨렸으면 별문제 없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일단 안심시켰다. 무엇이 얼마나 들었느냐고 물으니 난감한 얼굴로 대답한다. 얼마간의 돈과 평생 모은 금붙이가 들었단다. 부모님이 유산으로 남긴 반지며 목걸이, 결혼 패물 등등. 2년은 한국에 있어야 하니 그걸 조그마한 주머니에 꽁꽁 싸매서 넣어 왔단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서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갔더니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주웠다며 지갑을 내민다. 그런데 수백달러의 돈도 신분증도 그대로 들어 있는데 금붙이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직원에 운전기사까지 가세해서 버스 좌석 틈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실망한 교수님을 위로하면서 경찰에 신고하고 CCTV도 돌려보자며 귀가했는데, 몇 시간 후 그분이 내게 오더니 미안하단다. 핸드백의 찢어진 안감 틈새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던 금붙이 주머니를 발견했다고 말이다.
좀 덜렁대던 성격의 그 교수님은 이후에도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었다. 커피숍 의자에 핸드백을 두고 나오기도 하고, 식당 신발장 위에 지갑을 얹어두고 잊어버린 적도 있다. 서울 학회를 갔다가 지하철 선반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그냥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나절 후 다시 가도 핸드백은 그 자리에 있었고, 지갑은 식당 주인이 보관하다 돌려줬으며, 노트북은 유실물 센터에서 되찾았다. 세계 각국에서 생활해 봤지만 이런 나라는 처음이라고, 그녀는 놀랍다고 했다. 그러더니 어디다 뭘 두고 오거나 잃어버려도 천하태평이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이것이 한국이다”고 말이다.
작년 여름 고국으로 돌아간 그 교수님을 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만났다. 카페에서 가방을 옆자리나 의자 등받이에 걸어둘라치면 제대로 안고 있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두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한다. 실제로 당시 인솔했던 한 여학생이 휴대전화를 도난당했을 때 경찰서에 함께 가주기도 했다. 결국 학생의 휴대전화는 찾지 못했고 경찰서에선 도난신고서 한 장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잃어버린 휴대전화와 러시아 경찰의 관료주의적 일 처리에 그분이 난감하고 미안해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이것이 러시아다”고 그 교수님은 우리보다 더 분개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공직자에게 직무와 관련해 돈을 준 경험이 있는 비율이 2%에 그쳐 청렴국가군에 속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국제 반부패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86개국 국민 9만1천781명을 대상으로 부패인식과 경험을 조사한 '2010 세계부패바로미터(GCB)' 결과를 9일 발표했다.
이 결과를 보면 한국인 응답자 1천500명 중 '지난 1년간 본인이나 가족이 각종 기관·조직에 뇌물을 제공한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2%만 '있다'고 답해 세계 평균치(27%), 아·태지역(18%), EU·북미(5%)보다 오히려 낮았다.
뇌물 제공 대상은 사법기관(7.7%)이 가장 많았고 교육기관(5.5%), 관세기관(4.4%), 경찰(3.2%), 토지 관련 기관(2.4%), 조세기관(1.7%) 순이었다.
뇌물 제공 경험 비율을 근거로 국가를 5단계로 분류하면 한국은 호주,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영국, 미국 등과 함께 뇌물 제공 경험 비율이 6% 미만인 '가장 청렴한 국가'로 분류됐다.
매일 남한 방송을 듣고 벽에는 남한 말씨를 적어 놓고 연습했다. 옷차림도 중류부인으로 행세하라면서 모시 치마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고 서울 시민증을 휴대토록 했다.
어느 날 평양을 출발, 원산에 도착했다가 밤 12시에 강원도 해안 보리밭에 상륙했다. 보리밭에서 옷을 갈아입고 큰길로 나오자 15세쯤 처녀가 소를 몰고 그냥 지나갔다. 낡은 군모에 와이셔츠 입고 손목시계 찬 청년도 무심코 지나갔다. 2시간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이르러 서울행 버스를 타고 보니 모시 치마저고리 차림은 한명도 없었다. 기관원이 쓰고 다닌다는 ‘검은 안경’은 엿장수도 쓰고 다녔다.
버스 안에서 라디오방송이 흘러나오니 놀랄 지경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장으로 가니 천당에 온 느낌이었다. 고기와 먹거리가 넘쳤다. 새로 옷을 사고 파라솔과 핸드백도 사고 미장원 가서 머리도 다시 손질했다.
처음 시내에서 퍽 놀란 것은 많은 시민이 나일론을 입고 신고 있다는 사실이었읍니다. 저렇게 비싼 물건을 대부분의 시민이 사용하고 있다니 모를 일이고나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싼 물건이었읍니다. 이북에도 나일론은 있지만 값이 비싸 도저히 입을 수 없읍니다.
재일교포들이 나일론으로 휘감고 쭉쭉 뽑고 이북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그쪽에 살고 있는 북한 인민들을 복고 이상히 여겼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 인민들은 여기다 내 놓으면 거지나 다름 없는 옷차림 뿐입니다. 어떤 교포는 평양 역전에 있는 커다란 백화점을 사자고 그랬는데 이 소리를 듯고 점원들은 모두 폭소했읍니다. 어떤 자는 잘 팔리는 국수집에 가서 그집과 아울러 운영권을 팔라고 하다 조소를 당하기도 했읍니다. 이 사람들은 도무지 실정을 하나도 모르고 온 사람들이었읍니다. 이북에서 개인사업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읍니다. 정말 한심하지요. 전부가 속아서 넘어간거나 다름없어요.
그 곳은 돈을 가져도 물건이 없어서 못사지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풍부한 상품을 가진 곳이 곧 이곳입니다.
오후 다섯시가 넘으면 그때부터는 내 시간입니다. 조용한 숙소에 누어서 어린 시절부터 내가 자라온 여러 고비를 되살려 보며 이게 정말 생시인가 꿈인가 한번 꼬집어 보고 만족하며 그리고는 꿈결에서 현실의 나를 발견합니다. 이때마다 이북에 있을 때 다섯시만 지나면 그놈의 '회'(모임)에 끌려 다니던 지긋지긋한 기억이 솟아 오릅니다.
8통의 편지내용을 간추려 보면 산모가 쌀밥은 구경도 못해 젖이 안나온다. 본국서 보내준 조미료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43세에 이미 백발이 되어 버렸다. 두부 생선 등은 볼 수도 없으며 돈은 소용도 없으니 헌옷 가지를 보내 달라. 보내줬다는 사카란 5kg이 없으니 웬일이냐 . 4살짜리 꼬마는 아침부터 밤까지 책만 보는데 그것도 그림책 같은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 서적들 뿐이다. 지금 청년돌격대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 빨리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빈다는 애절한 호소로 넘쳐 있다.
사실상 제 자신 뿐만 아니라, 저의 친구들은 벌써 70년대부터 소련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기침체였고, 또 하나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는데 이는 소련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었습니다.
경제문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60년대까지 대규모 노동 및 자원의 동원을 통해 잘 성장했던 소련 경제가 70년대 들어와 극복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침체에 접어들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 당시 소련 사람들의 생활은 많이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 소련은 북한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생활은 좋아지지 않았고, 소비생활은 사실상 점차 열악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은 소련이 망하게 된 아주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에서 농민들은 원래부터 공산주의를 싫어했지만, 도시 시민들 대부분은 6~70년대까지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대체로 지지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사회의 모순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부정부패와 정치테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러한 문제점은 과도기에 있어 불가피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소련 지식인이나 노동자들의 희망은 과도기를 마친 소련이 서양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이와 같은 희망은 점차 식어갔습니다. 처음에 10년이나 20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과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1960~70년대 소련은 비교적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을 능가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까지 소련 사람들이 필요악으로 받아들였던 여러 가지 사회문제는 심각한 짜증을 야기하였습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소련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서양 나라들의 주민생활과 많이 비교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소련 사람들은 미국에서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소련의 공산당 간부보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해외로 갈 수도 있고,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아무 때나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소련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모두 불가능했습니다. 물질적인 생활도 있었고, 개인의 자유도 김일성 시대의 북한보다는 많았지만, 미국이나 영국과 비교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이와 같은 불만이 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1970년대 들어와 누구든지 생각하게 되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간부들까지 사회주의 체제에서 경제발전과 사회의 진보를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소련 정부가 했던 약속을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약속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전혀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 소련의 소비생활은 다시 어려워졌다. 그 근본이유는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성이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수요-공급 사이의 불균형은 심해졌다.
1947년 배급제를 폐지했을 때의 고정된 물가는 시장경제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물가와 대체로 일치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중에 나도는 현금이 많아졌다.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한 정부는 월급을 계속 올렸지만 국가가 고정시켜 놓은 물가는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국영상점의 진열대는 텅텅 비어갔다.
1970년대 우리 가족은 큰 상점 근처에 살았는데, 필자가 해마다 소비자의 선택이 좁아지는 것을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1972-73년 이 상점 진열대에는 치즈 5종류가 있었는데, 1977-78년에는 1-2종류, 1980년 이후에는 한 종류라도 있으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역에 따라 큰 차이도 있었다. 지방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육류는 1960년대 말부터 어려워졌고, 가게 앞에 선 긴 줄은 그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약림노파일가가 있던 곳은 흑룡강성 방정현의 보흥공사라는 30가구를 수용한 소규모의 집단농장, 수소폭탄을 실험하고 동방홍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등 군사면에서의 발전과는 멀리 전기도 경운기도 없는 반원시적 농업집단이라고 했다.
이곳 남녀농군들에게 있어 시간관념은 태양. 날이 새면 농장에 나가 일하다가 해가 져 곡물과 잡초의 분간을 할 수 없을만큼 캄캄해진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나면 고단한 몸을 쉬지도 못하고 야회에 나가 내일의 생산계획을 토의하고 모택동사상강좌를 받아야 한다.
일요일은 없고 휴일이라곤 1년에 3일뿐 정초와 단오절 추석에 하루씩 쉬는 것뿐인데 쉬는 날은 모택동사상 고취와 생산책임량 증대를 위한 행사 등으로 가만히 버려두지 않으므로 실제로 쉬는 날이란 하루도 없는 것이다.
벼농사도 지었으나 쌀밥은 한톨도 먹어보지 못했으며 주식은 옥수수, 수수, 좁쌀과 감자. 1년의 농사가 끝나면 각기의 생산량에서 공출책임량과 배급용식량을 빼고 남은 것을 현금으로 환산하여 받게 되는데 봄철과 가을철에 남루한 의류 한벌씩 사고 나면 빈털터리.
북한 청소년들은 요즈음 너무나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음이 지난달 30일 귀순한 여만철씨 일가의 3자녀에 의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이들은 11일 서울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한창 자라야 할 나이에 제대로 먹지못해 키가 크지 않았고 굶주림과 다그치는 사상교육으로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 녹아떨어지기 일쑤라고 말했다.금주(20),금룡(18),은룡(18) 3남매로부터 북한 청소년들의 생활상과 북한의 실상을 들어보았다.<편집자주>
서울을 둘러본 느낌은.
▲금주=모든 것이 너무 놀랍다.내가 살던 함흥에선 보지 못했던 고층건물이 너무 많아 놀랐다.특히 자동차가 어찌나 많은지 차가 빠지지 않아 차속에 앉아 있는 게 답답할 정도였다.여성들의 옷차림 색깔과 형태가 너무나 다양한 것도 북한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금룡=북한에서 남한에 대해 「교양」받은 것과는 1백80도 달랐다.서울엔 아파트도 없고 거지가 많으며 어지럽다고 들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남한의 어린 학생들이 껌팔이나 구두닦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배웠지만 역시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은룡=밤거리가 너무 화려해 놀랐다.북한에선 가정집에서도 전기를 아끼느라 밤에도 불을 켜지 않기 일쑤인데 남쪽에선 길가 상점의 간판이 번쩍번쩍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셋다 키가 작아보이는데.
▲금룡=내 키는 1백51㎝로 북한에서 학교동무들과 비교하면 중간쯤은 된다.그러나 여기와서 보니 내키가 말못할 정도로 작다는 것을 알았다.중학생이라고 하는 학생의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장 1백51㎝ 중키
▲금주=내 키는 1백58㎝로 북한에선 큰 축에 들었는데 서울의 학생들에 비해선 작은 것 같다.학교에 가면 선생님들도 우리보고 『너희들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작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에선 갈수록 학생들의 키가 작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먹을 것을 제대로 못먹다 보니 키가 안자라 지금 인민학교 학생들은 옛날의 유치원 학생들 키보다 더 작아진 것 같다.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금주=남한이 북한보다 더 잘 산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잘 사는지는 모른다.나 자신도 다른데에 가보지 않고 북한의 작은 테두리 안에서만 살았고 외국영화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바깥 세상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는 정확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한번 가본 적이 있는 평양이 지구상에서 제일 훌륭한 도시라 생각했으나 서울에 와서 보니 이곳이 지상의 천국으로 느껴졌다.
내가 북한에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실망은 “김정일이 있는 한 대책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우리가 굶어야 하는지, 우리 나라(조선)가 왜 지지리도 가난해야 하는지를 알아도 말할 곳이 없었다. 아무리 살자고 발버둥쳐도 희망이 없었다.
그리고 체제의 폐쇄성은 인간의 창의력과 자유의 욕구를 말살시키고 있다. 우리만 굶고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체제를 반대하려고 애썼겠지만, 외부 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없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던 것이다.
북한에 있을 때 회령과 혜산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살아 내 딴에는 중국을 안다고 자부했다. 국경지역 도시로 볼 때 제일 큰 도시가 중국 단동이 대표적이지만, 함경남도에 살고 있던 나는 신의주에 별로 다니지 않았다. 그냥 육안으로 중국물건을 보고 중국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시와 농촌이 그렇게 발전했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두만강을 넘어서 깜짝 놀랐고,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는 뒤로 자빠질 만큼 놀랐다. 그야말로 내가 그리던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었다. 바깥세상의 판사를 모르니 내가 밥술이나 먹고, 생활이 순탄했다면 탈북도 하지 않고 거기서 모여 살았을 것이다. 나의 생애에 가장 큰 시련이었던 ‘고난의 행군’이 없었다면 나는 중국을 몰랐을 것이고 또 한국이 천당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나그네(남편)가 사망된 다음에 살기가 곤란해가지고 자식들이 중국으로 탈북을 했거든요. 하루는 누가 아이들 편지를 가지고 왔어요. “자기들은 중국에 와서 잘 있는데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어머니 연변까지 언제까지 와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따라간 게 온성이야요.
온성에 오니까 그때서야 (안내자들이) 솔직히 말해요.“어머니 아들이 남조선에 있는데 거기서 편지를 쓴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나는 아직까지 무산에 살면서 중국에 한번도 못 가보고 그랬으니까 여기 남한 사회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어요. 그저 수 십 년 동안 교육받은 게 “남조선은 사람 못살 곳이고, 거지떼가 욱실(득실)거리고, 미국놈들의 박해 밑에서 신음하고 있고.” 그런 것만 교육받았기 때문에 여기에(남한) 대해서 영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난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남한) 우리 아이들이 왜 갔는가”하니까, (안내자가) “어머니 거길 몰라서 그렇지 거기가면 천국이다”고 그래요. (안내자가) 아들하고 전화통화를 연결시켜주겠다”고 그래요. 전화통화를 해보니 아들이 “어머니 여기 오시라”고 그러는 거예요. “여기 오면 진짜 낫다”고.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거기 가면 위험하지 않니” 그렇게 물었어요. 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강연들은 게 있거든요. 탈북자들 거기 가면 다 죽인다는 거. 들은 게 있기 때문에 망설였단 말이야요.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그냥 오면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5월 말에 두만강을 넘었어요.
대체로 다 믿지요. 어떻게 안 믿어요. 직접 (남한에) 자기가 다녀 보지 않았는데. 사람이 계속 그런 선전하는데. 거기 사람들은 믿는단 말이야요. 다 믿어요. 중국에나 갔다와서 남한 소식이나 듣고 텔레비전으로 (남 몰래) 남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조금 이해가 갈지 모르겠는데 이내 하나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안 믿어요. 강연을 하면 하는대로 “그런가 보다, 그렇구나” 그렇게 믿는데.
* 무산 같은 국경지역은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외부소식을 듣기에 유리하다. 그래서 내륙지역에 있는 사람보다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난 무산에서 비행기 한번 보지도 못했어요. 항공기는 이루 말 할 수 없고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난 놀랐어요.
“야 (북한에서는) 사람 못 살 곳이라고 했는데”. 눈이 막 빙글빙글 돌아가고. 야 정말 난 꿈이라고 생각돼요. 지금까지. ‘야 나 진짜 꿈을 꾸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되고. 내 여기 온 게 정말 잘한 일이고 정말 북한에서 선전한 게 다 틀리고, 180도 틀리고.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인지 몰랐어요.
여기에 대해 정말 나쁘게 생각했는데. ‘남조선은 무서운 곳이고, 자본주의 나라고, 미국놈들의 박해 밑에서 신음하고 있고. 여기와 보니까 사람들도 북한사람들과 똑같고 좋은 사람들도 많고.
북한 주민들은 천명도 되지 않는 외국인 체류자가 많은 인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너무 작은 숫자입니다. 2014년 4월을 기준으로 남한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164만 명에 달합니다.
노동 신문과 같은 북한 선전수단을 주로 접하는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이와 같은 통계를 알게 되면 미국인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을 너무 몰라서 하는 생각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남한에 생각보다 미국인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통계자료를 보면 남한에 체류하는 미국사람들은 전체 외국인 인구의 9% 정도에 불과합니다.
제일 많은 체류자들은 중국사람들입니다. 외국인 체류자 164만 명 중 중국사람들은 83만 명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사업이나 유학 때문에 온 사람들도 있고 친척방문 때문에 온 조선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사람 대부분은 남한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왔습니다. 한국에 와 있는 중국사람 4분의 3은 노동자들입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남한에 많이 오는 이유는 높은 소득 수준 때문입니다. 중국 노동자들은 남한 사람들이 어려워하거나 위험하여 기피하는 일들을 맡아 합니다. 중국 노동자들은 보통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매월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게됩니다. 미국 돈으로 보면 1,500달러나 2,000달러에 해당됩니다. 잘 사는 남한 사람들이 보기에 이것은 별로 큰 돈이 아닙니다. 남한 사람들은 이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은 중국사람들뿐만이 아닙니다. 2014년 4월 현재 한국에는 12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또한 어려운 노동일을 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구소련 지역에 속했던 우즈베키스탄 사람 4만 명, 필리핀 사람은 5만 명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 또한 비슷하게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미숙련 노동자들입니다.
물론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 체류자들이 노동자들뿐만은 아닙니다. 외교관이나 유학생들 그리고 한국회사에 다니는 외국인 회사원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외국인들이 거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체류자의 구성을 보면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
한국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93만8000여명(지난해 5월 기준)에 달한다. 이주노동자에서 ‘이주고용주’로 꿈을 이룬 사람도 늘고 있다. 한국이 기회의 땅이 된 이면에는 파독 간호사들의 눈물이 있었다. 1977년까지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는 1만14명에 달했다. 3년전 파독된 광부보다 2078명이 많다. 당시 20대 초·중반이던 간호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실업률이 23%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독일에서 받은 월급의 50~80%를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00달러가 채 안 되던 가난한 조국에 송금했다. 파독 근로자들이 송금한 누적액은 1억153만달러였다. 이는 미국의 무상원조가 끊겨 외화에 목말라 하던 한국에 큰 힘이 됐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급여가 재빠르게 인상돼 전체 국내 근로소득자 급여의 72%에 달했다. 또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근로자수도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섰다.
3일 국세청 ‘2014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연말정산을 한 외국인 근로자 평균 급여는 2290만원으로 전년(2130만원)보다 7.2%인 160만원이 증가했다. 이같은 증가율은 같은 기간 국내 전체 근로자 임금 증가율(4.3%)과 증가폭(130만원)을 앞선다.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급여는 2010년 1730만원에서 2011년 1820만원, 2012년 1960만원 등으로 가파르게 오르다 지난해 처음 2000만원을 넘어섰다.
외국인 근로자수도 2010년 40만4000명에서 지난해에는 50만800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에따라 외국인 근로자가 받아가는 급여총액도 늘어 2011년 6조9897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1조808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 근로시장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갈 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외국인을 포함한 국내 전체 근로소득 연말정산자의 평균 급여액은 3170만원으로 전년(3040만원)에 비해 4.3%인 130만원 증가했다. 전년대비 급여 증가속도나 증가폭이 외국인근로자에 미치지 못했다. 전체 근로자의 평균급여액은 2010년 2610만원에서 2011년 2790만원, 2012년 2960만원 등으로 늘어났다.
외국인 근로자 임금상승은 특히 2013년 이후 가파르다. 이에따라 전체 근로자 임금 대비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2010년 66.3%에서 2013년 처음으로 70%를 넘어섰다. 2014년에는 72.2%까지 올라왔다. 외국인 근로자의 급여 상승은 고소득 외국인 유입이 많았거나 저임금 외국인 근로자의 소득 증가가 가팔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연합뉴스) 현영복 기자 =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귀화자 등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150만 명을 처음 돌파했다. 국민 100명 가운데 3명꼴로 외국인인 셈이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미군, 관광객,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은 38만여 명 수준에 불과해 우리 사회의 이방인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이 국내 총인구의 3%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증, 한국 사회는 외국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진입했다.
10일 법무부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체류 외국인은 9일 현재 150만 1천761명을 기록, 150만 명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 2003년 체류 외국인이 67만 8천687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배 넘게 급증했다.
국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체류 외국인 수가 꾸준히 늘었고, 재외동포를 위한 방문취업제가 도입된 2007년에 체류 외국인 수가 106만 6천여 명을 기록하며 외국인 1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체류 외국인을 국적별(4월말 148만 6천367명일 당시 기준)로 보면 한국계를 포함한 중국(49.9%) 출신이 절반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9.3%), 베트남(8.1%), 일본·필리핀·타이(각각 약 3%), 우즈베키스탄(2.5%), 인도네시아(2.3%), 몽골(1.8%) 등이다.
이들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17만 9천516명이다. 불법체류자는 2004∼2008년 20만 명을 웃돌았으나 2009년 이후에 17만 명 안팎 수준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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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한국서 돈 벌어 고향에 가겠다는 것이 과거 추세라면 한국 정착이 최근 추세다."
중국 동포(조선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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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중국 동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뜨내기 아닌 한국 사회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품은 것이다.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를 포함, 헤이룽장(黑龍江)성과 랴오닝(遼寧)성 조선족 집거 지역이 급속히 쇠퇴하는 가운데 한국에 정착하는 중국 동포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서울 구로구 대림동은 물론 신림동, 신대방동, 자양동 건국대 주변, 그리고 경기도 수원역 부근, 성남 수진동, 안산 원곡동 등은 중국 동포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중국 동포 타운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 집 팔고 한국 집 샀다"…중국 동포 정착 트렌드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외동포가 국민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고 근로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을 계기로 중국 동포의 국내 유입이 활발해졌다. 특히 2007년 방문취업제로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해지자 중국 동포의 입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중 간 소득 격차와 임금 차이가 중국 동포의 돈벌이 한국행을 부추겼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외국인 신분의 중국 동포 수는 60만 6천694명이다. 여기에 행정자치부의 작년 통계상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중국 동포는 7만 6천921명이다. 이를 합치면 70만 명에 육박한다. 이는 경기도 안산시 인구와 비슷하다.
눈에 띄는 건 돈벌이 후 귀국이 목적인 방문취업(H-2)은 갈수록 주는 추세라면 정착 목적의 재외동포(F-4), 영주자격(F-5) 등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방문취업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22만 8천686명에서 2009년 30만 6천283명, 2011년 29만 5천464명, 2013년 23만 739명으로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반면 재외동포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3만 4천695명에서 2013년 28만 130명으로, 영주자격 사증 취득자 수는 2007년 1만 6천460명에서 2013년 8만 7천497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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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포인 김용선 한중무역협회장은 "한국 이주 1세대라고 할 노년층은 돈 벌고 고향으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면 젊은 층은 정착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나도 중국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한국에서 아파트를 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조선족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중 교류 확대와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투자 때문에 중국 동포들이 한국 기업이 있는 베이징(北京)·칭다오(靑島)·상하이(上海) 등지나 한국으로의 이주와 정착이 급증하면서 지린·헤이룽장·랴오닝성의 조선족 집거 지역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김 회장은 "헤이룽장 자무스시의 조선족 거주지인 탕왕향 13개 마을에 11개의 조선족 소학교(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1개만 남았을 정도이며, 그마저도 학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라고 전했다.
“2008년 통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7개국인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캐나다·러시아와 비교하면 4대 범죄(살인·성폭행·강도·절도) 발생률이 우리나라가 5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굉장히 치안이 안정돼 있어요. 외국여행 해보면 피부로 느끼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의 경찰처럼 유능하고 헌신적인 경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