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무주구천동 골짜기에서…
한낮의 무주구천동 골짜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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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8.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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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지나 저녁 무렵에서야 도착한 구천동 계곡의 골짜기는 부서저 떨어지는 물줄기와 함께 어우러진 피서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모두를 조용히 흡수해 버린다.

짙은 녹음이 세상의 소리를 모두 끌어들인 듯 세상이 모두 적막하다. 차안에서 모처럼 나들이에 신나있던 삐삐와 예삐는 벌써 곤한 낮잠에 빠졌다 다리를 천장으로 향하고 누워 자는 예삐와 삐삐의 코고는 소리가 간간이 적막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간밤에 서일석 교수 내외와 동생 내외가 같이 만나기로 약속해 준비하느라 잠을 설친 때문인지 아내의 눈꺼플도 자꾸만 내려온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개울 옆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다리만 쭉뻗으면 금세 잠들 것처럼 나른하다 개울 너머에는 붉은 베고니아 꽃잎이 흔들린다. 꽃이핀 자귀나무 아래에서 풀벌레들이 뛰어 오르고 있다. 자지러지듯 질러대는 매미 소리가 허공으로 휘영청 메아리 치고 있다.

어느새 졸음이 멀리 달아났다. 서 교수 내외와 동생 내외를 기다리면서 숨을 깊이 몰아쉬고 가슴을 활짝 열고 깨끗한 산소를 들이마시면서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산속 깊은 계곡과 등성이를 올려다본다.

그 위로 해질녘 여름 하늘이 아름답다. 푸른빛과 붉은 빛이 함께 어우러진 흰 구름 모두가 익숙한 빛깔이다. 아는 빛깔이어서 더 아름답기만 하다 초연한 산과 하늘을 보고 있으려니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적막, 빛깔, 꽃, 푸른 나무들과 견줄 것이 우리에게도 있을까 더듬어 본다. 절망한 일은 아니었다. 책에 이렇게 적혀 있지 않던가? 우리는 친구 사귀는 법을 안다. 무엇보다 사회에 헌신하는 삶을 추구한다. 어느새 기분이 빵 반죽처럼 부풀어오른다. 마음에 밝은 불이 켜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던 잠시 동안이었지만 나는 먼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처럼 휴우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마음의 가지들이 뻗은 자신을 알게 된 것이다. 무주 구천동의 아름답고 적막한 골짜기가 자애로운 어머니 품안처럼 느껴진다.

멀리서 형님하고 부르는 서일석 교수 내외와 동생 내외가 반가이 손을 흔들고 있다.




윤호철 기자 yaho@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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