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외면의 실상과 대안
이공계 외면의 실상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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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9.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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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6회 과학기술의 날 행사에서 이공계 우대정책을 역설하는 노무현 대통령
취업 불안과 안정된 돈벌이 욕구가 이공계 외면을 부추겨


공학의 가치 창조에 관한 자부심이 형성될 때 활성화 가능





전기산업계(이공계)로 인재가 모여들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은 IMF 체제 이후 급속도로 확산돼 이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돼 버렸다.

고등학교 이과 출신들의 대학 선호는 의대, 한의대, 약대, 치대와 같은 의치계와 교육대로 한정돼 있다. 이공계는 아예 관심의 대상 밖이다.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취업 불안이 깔려 있다. 이공계 기피는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제적으로 발달한 나라에서는 어느 나라든지 엔지니어보다는 의사와 변호사를 선호한다.

돈벌이가 확실하고 지위가 보장된 직업을 원하는 욕구가 탈이공계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박재민 박사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KRIVET) 김형만 박사가 2001년도 졸업생 4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공 선택과 직업으로의 이행구조’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졸업자의 전공 만족도는 인문학과 농림수산학 전공자 중 최하위였다.

공학 전공자의 32.4%가 전공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데 반해 인문학과 의약학은 각각 52.3%와 59.1%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이공계 기피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그 대처 방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대학에는 문제가 없는가



인재들의 이공계 외면은 안정되고 수익성이 높은 직업을 선호하는 사회 전반적인 추세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자체의 문제점은 없는가?

“전국에는 165개 대학교가 있습니다. 이곳 모두에 공과대학이 있지요. 70년 이후 대학 설립 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해서 대학마다 공과대학 설립을 요청했고 정부에서 무조건 이것을 허가해 준 때문입니다.”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의 문 희 학장은 한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이공계가 무분별한 양적 확대에 치중해 온 면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80년대 들어서 당국은 재수생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졸업정원제를 실시했다. 당시 가장 많이 정원이 늘어난 곳은 공과대학이었다.

공과대학의 증과는 교수 확보를 어렵게 했다. 교수 한 명에 학과 한 곳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학생 증원은 인재 확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해진 숫자를 다 받아들이다 보니 수준 낮은 학생이 많아진 것이다.

현재 지방 대학의 공과대학에서는 고교 내신 4등급 정도를 만나기도 어렵다고 한다.

몇 명 되지 않은 이공계 인재는 공학 전반에 고루 포진해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 이공계 기술 인력은 IT 전자통신에 편중돼 있다. 소위 잘 나가는 분야로 학생들이 몰린 탓이다. 이공계 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의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공학대학의 경우 내부의 이기주의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학대학 교수들이 서로 연대해서 거대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서 이것을 성공시킬 때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공과대학에 인재가 오는 상황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공대 교수들은 자기 분야만 지키고 있다. 제 분야를 지켜서 연구비를 타내는 정도의 근시안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기공사 현장을 점령한다?



대학이 외면당하고 그곳에 문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공업고등학교의 실상은 더 말할 것이 없다. 1년에 2만명이 미달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그 실상을 웅변해 준다.

그렇다면 공업고등학교 출신들의 일터인 전기산업계의 공사 현장은 어떤가?

2003년 8월 23일. 충청도 괴산 진평읍에 위치한 D전기 부설 기술연구소의 강의실. 전기공사 현장에 적용될 새로운 전기 기술에 관한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참석자는 2백여명. 그런데 이곳의 주류는 40대였다. 20대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곳에 참석한, 천안에서 왔다는 한 전기인은 이렇게 말했다. “머지 않아 한전의 단가 공사 현장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오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도시에 있는 공사업체는 나은 편입니다. 시골에서 운영되는 한전 단가업체는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정말 드물고요. 젊은이들이 시골에 살려고 해야죠.”

이게 사실인가를 전기공사업체 사장 몇 명에게 확인해 보았다.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금은 싸고 한번 입사하면 그래도 2,3년 동안은 제 자리를 지킬 거라는 것이다.

현재 외국인노동자고용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종래의 산업연수생제와 병행해 외국인력의 합법적인 고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 출국이 재유예된 불법체류 외국인 22만여명에 대한 합법화 조치가 추진됨으로써 외국 노동자의 산업현장 진출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 한전 단가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가 등장하는 상황이 이어질것인가? 노동부는 송출비리를 없애기 위해 고용안정센터와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외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선정해 도입하고, 우리 정부가 해당 국가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는 일단은 전기공사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은 있다.

노동부가 규정한 채용 절차에는 1개월 이상 내국인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채용하지 못한 사용자에 한해 노동부 직업안정기관에서 인력부족 확인서를 발급받아 1년 단위로 총 3년 범위내에서 외국인 근로자와 고용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도서벽지에 위치한 전기공사업체가 내국인 인력을 1개월 이상 채용하지 못했을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채용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그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들이다.

정부의 방안



이공계를 인재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걸 정부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이공계에 인재를 유안하기 위해 정부는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우수 신입생 3500명에게 수업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이공계 대학생에 대한 정부장학금 지원사업은 309억원에 이른다.

장학금을 받는 신입생은 지방대학의 경우 수능 2등급에 해당된다고 한다. 수능 2등급에 해당되는 학생은 공과대학 아닌 타 대학을 가도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장학금 지급이 인재 육성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 또한 이것을 알고 있어서 이공계를 우대하기 위한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제36회 과학기술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과학입국과 이공계 우대를 천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서는 이공계 출신 인사 중용을 골자로 하는 인사 개혁이 착수됐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베이징 주재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밝힌 인사 개혁 내용에는 이공계 우대가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정부는 지난 8월 이공계 우대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이공계의 공직 확대를 도모하기 위해 2005년까지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행정고시’로 통합하고 2008년까지 5급 신규채용 인원의 절반 이상을 과학 전공자로 충원하기로 했다.
3급 이상 행정직의 경우는 직급이 이사관급으로 통합된다.

4급의 경우는 서기관(행정직)과 기술서기관(기술직)으로 통합되는 동시에 2010년까지 정부전체 4급 이상 계급에 기술직 출신 비율이 30%로 확대된다.

정부 방안의 핵심은 4급 이상의 고위직에 있어서 기술직의 보임을 차차 확대하고 5급 기술직 신규채용을 늘리는 동시에 채용과 인사관리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직의 승진과 전보를 제약해온 직급인 4급 이상은 서기관과 기술서기관으로 통합되고 복수직위가 확대된다.

기술직의 충원은 공채, 특채, 개방형, 계약직 신규채용 등은 물론 다른 부처와의 상호 파견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정부의 이공계 우대 방안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이다. 더구나 정부 조직 내에 이공계 인사의 비율을 확대한다고 해도 결국 이공계는 소수의 위치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방안은 없는가?



현재의 요건을 최대한 이용하는,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는 전국의 과학기술고 학생들을 공과대학으로 진학시키는 것이다.

이 때의 대학은 대전의 카이스트와 같은 특수목적의 공과대학임은 물론이다.

광주과기원 안병하 부원장은 “현재 전국에 16개의 과학고가 있으며 일년에 약 12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됩니다. 이들의 3분지 1을 대전 카이스트에서 받아들입니다. 나머지는 일반 대학의 의대나 치대로 진학합니다.

만약 대전 이외의 지역에, 그러니까 광주광역시에 카이스트를 설립한다면 과학고 출신자를 흡수해 내게 될 것입니다.”라고 진단했다. 과학고 출신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학이 존재할 때 이공계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 외면과 관련해 의식 차원의 문제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아직도 창조적인 직업보다는 돈벌이 직업에 연연해 하는 게 문제라는 것.

이런 점은 가치 창조의 자부심을 가질 때 타파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양태용 교수는 가치 창조에 자부심을 느끼는 공학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는 실리콘벨리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골짜기인 이곳은 그 길이가 천안에서 대전 정도나 될 것입니다. 여기에 소재하는 기업의 주식 총액이 프랑스 전체 주식 총액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실리콘벨리와 같은 벤처 단지가 활성화된다면 국가 경제를 견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실리콘벨리를 만들 수 있는 기본은 무엇인가? 가치 창조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공학도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해서 인류와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돈벌이에 나선 개업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회가 돈에 연연해 하지 않고 가치 창조를 대접해 줄 때 사회를 이끄는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의 역할을 공학도에가 해 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이공계 외면 현상의 종말이라는 진단이다.

이공계 외면 현상을 타파해 내기 위해서는 이공계 출신자들이 타분야보다 더 많은 노력과 희생으로써 가치 창조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공계 외면현상이 사회의 분위기 탓만은 아니라 이공계 자신의 문제에서도 비롯했으며 그 타파 역시 이공계의 몫이라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론을 확인하게 된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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