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의 산천제(山天齊)
남명의 산천제(山天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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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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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뜻을 둔 것과 배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황은 삼베 한 필을 짠 것이다. 나는 비단 한 필을 채 짜지 못하고 있고.”
이황을 두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그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이황은 일을 끝냈으나 자신은 그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삼베와 비단의 엇박자가 내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둘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도산서원 뒷산과 산천제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의 차이만큼이나.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남명이 말년을 보낸 산천제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산천제라는 집 이름은 주역의 대축괘(大蓄卦)의 ‘산천(山天)’에서 가져온 말로 ‘밖으로 빛나고 안으로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천제는 덕천강을 향해 지어서 조선시대 가옥으로는 흔치 않은 서향집이다. 덕천강은 남명 조식이 아끼던 강이다. ‘빈손이라고 해서 걱정할 것 없다. 은하수가 십리에 걸쳐 있으니 그걸 마시면 된다.’고 남명이 노래했던 그 은하수가 바로 덕천강이다.

은하수를 마시면 된다는 시구절은 말장난이 아니다. 그가 말년에 이르러서도 정녕 갈구한 것은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저 높은 덕성’이었다.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달고 다니고 한 자 길이의 칼을 차고 다니면서 늘 정신이 깨어 있기를 바란 남명이었다. 그리하여 그 정신이 지리산처럼 듬직하길 바랬다.

창녕 조씨이고 호가 남명인 조식은 조선 명종 때의 사람으로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시절 좌씨전과 유종원의 글을 읽었다.

청년 시절에도 학문 연마를 거듭했다. 25세 때 원나라 허형(許衡)이 "벼슬에 나아가서는 이룬 일이 있고, 물러나서는 지조를 지켜야 한다. 벼슬에 나아가서 이룬 바가 없고 물러나 있으면서 지조를 지키지 않는다면, 뜻을 둔 것과 배운 것이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구절에 크게 깨달아 이를 평생의 행동 지침으로 삼았다.

그는 성리학을 통해서 백성을 위하는 것이 곧 나라의 근본(爲民邦本)의 사상을 확립시켰으며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실학파의 비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는 벼슬을 원하지도 않았고 조정의 부름도 거부했다. 헛된 마음으로 선비를 부르는데 거기 응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이유였다. 그는 스스로를 처사로 여기면서 제자들을 길러낸다. 그의 제자들은 정인홍(鄭仁弘), 오건(吳健), 정구(鄭逑), 김우옹 등으로 이들에 의해 경상 우도의 성리학 본류라는 남명학파가 설립되었다.

이순(耳順)에 이른 그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에 산천제를 짓고 처사로서 생활했다. 당시 그는 칼에다 경(敬)과 의(義)를 새겨 넣고 그걸 차고 다니면서 경과 의에 입각한 생활을 해 나갔다.

그의 사후에 제자 정구는 제문에서 ‘스승의 재식(才識)은 일세를 눌렀고 기개는 천고를 덮었다.“고 말했다. 스승에게 보내는 제자의 찬사라서 과장된 감이 없지 않으나 재식과 기개에서 남명은 과연 남다른 바 있었다.

남명이 누구였으며 그 정신이 과연 어떠했는지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남명학회가 활동중이며 매년 역사학자와 동양철학자들에 의해 남명 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남명의 넓고 깊은 세계는 지리산처럼 많은 이들을 끌어들여 감동을 주게 된 것이다.

남명은 자신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되길 바라며 산천제에서 살았던 것일까? ‘덕산의 개울가 정자에서(題德山溪亭)’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 그의 시가 그 답을 해 준다.
큰 종을 보게나.

세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네.
정녕 두류산(지리산)을 닮아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구나.
(請看千石鍾 非大?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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