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의 오누이탑
계룡산의 오누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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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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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도 다시 세우는 우리의 손길이 있기에
오누이탑도, 그 전설도 아름답게 이어져 간다

오를 때 좋은 산이 있고 내려갈 때 좋은 산이 있다. ‘좋은 산’이라는 구절이 너무 추상적이긴 하나 산의 느낌이란 게 내게 그렇게 구체적이 않은 것이고 보면 불가피한 어휘 선택이다.

‘좋은 산’이란 구절을 좀더 구체적으로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요구하는 사람은 산을 놓고 풍광을 따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를 때 더 풍광이 좋은 산이 있고 내려갈 때 더 풍광이 좋은 산이 있다’고 말해 준다.

산을 많이 탐방해 봤다는 사람들은 대개 내려갈 때 풍광이 더 좋다고 한다. 오를 때는 산꼭대기를 목표로 하다 보니 주위를 둘러볼 경황이 없지만 내려갈 때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주위를 훑어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산을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만 내게는 오를 때 산의 모습이 더 좋다.

산은 올려다보는 것이지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좋은 풍광이 올라가는 힘든 발걸음에 힘을 더해 준다.

산만 단순히 탐방하지 않을 때가 있다. 거기에 문화재라든지 사적지가 있어서 그곳을 들려야 할 때가 있다. 이 때는 올라갈 때 문화재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는 뒤쪽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계룡산을 탐방할 때 은선폭포에서 관음봉(정상이 출입금지라서 이곳이 정상 역할을 맡고 있다)으로 오른 후 자연성능을 지나 삼불봉을 거쳐 하산하기로 했다.

삼불봉을 거쳐 자연성능을 타고 관음봉으로 올라가야 풍경이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불봉으로 나중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삼불봉 아래 오누이탑(남매탑이라고도 불린다)이 있기 때문이다.

몇 시간 동안 계룡산을 탐방한 후 오누이탑에 도착했다. 그 이름은 70년대 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두 탑이 나란히 서 있는 게 우선 정감이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남녀의 인연을 맺지 않고 도반(道伴)으로 평생을 살고 난 후 남매탑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갑사로 가는 길’의 구절을 빌리자면 ‘천년 후에도 여전히 따뜻하다.’

탑을 보고 앉아 있는데 할머니 셋이 다가왔다.

“너무나 둘이서 좋아했다는데 결혼을 못 했다네.” 한 할머니의 애절한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할머니가 나섰다. “오빠와 여동생이었다면서 결혼은 무슨?” “친남매는 아니었어.” “그런데 왜 결혼을 안 해?” 듣고만 있던 할머니가 결론을 내렸다. “그들 속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도반으로 평생을 살아갔던 그 마음을 범인들이 어찌 알겠는가?

다시 탑을 돌아본다. 키가 큰 탑이 오빠탑이고 작은 탑이 누이탑이다. 오빠 탑은 한 번 무너진 탓에 다시 쌓아 올렸다.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은 데가 눈에 띈다.

무너졌다가 다시 선 탑에 내 눈길이 오래 머문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단단하게 마음 여민 자세도 좋지만 무너진 탑을 다시 쌓아올린 그 애정이 정녕 따뜻하다.

프랑스인들의 똘레랑스(torelence; 포용)가 칭송된 적이 있지만 그들의 똘레랑스는 각각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 위한, 다시 말해 내가 너를 포용해 주었으니 너도 나를 그렇게 해 달라는 상호 편의주의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우리의 애정은 내게 돌아올 것을 계산한 후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베푸는 일이다. 무너진 탑이 있으면 다시 쌓아 올리는 그런 일이다.

오누이탑은 언젠가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 이번에는 누이탑이 무너지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탑을 다시 쌓아올릴 것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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