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력산업과 경제적 접근 - ⑥
[칼럼] 전력산업과 경제적 접근 -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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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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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시장

이창호 /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1960년 한전으로 통합된 이후 30년 넘게 수직적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급속한 수요증가와 더불어 발전설비 규모가 5000만kW에 근접하였으며, 이후에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었다. 1994년 발전부문에 민간사업자의 진입을 허용하여 석탄발전소 2기, 가스복합발전 2기를 신규민전으로 선정하였다.

1998년 IMF를 계기로 경쟁체제 도입을 목적으로 하는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당시 구조개편 일정에 따르면, 2001년 도매 전력시장 도입하고, 2002년부터 순차적으로 발전사를 민영화하며, 2008년까지 양방향 경쟁시장을 운영한 이후, 2009년부터는 판매시장까지 경쟁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1년 4월 시작된 발전분할은 2003년 들어 배전분할 추진이 중단되면서 지금까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경쟁체제 도입은 당시 세계적으로 불고 있던 자유화 민영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1978년 제정된 ‘공공규제정책법(PURPA)’에 의해 전력회사의 신규설비 건설을 금지하고 민간발전사(IPP)로부터 전력구입을 의무화하였다. 1992년 ‘에너지정책법(EPA)’에서는 전력회사 송전망을 개방하여 제3자의 자유로운 전력거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캘리포니아, 뉴욕, P-J-M, 텍사스, 뉴잉글랜드 등 주요지역에 독립적 시스템운영자(ISO)가 설치되어 전력융통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은 대처정부 들어 항공, 석탄, 철도 등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으며,  독일, 이태리, 스페인, 북구 등에서도 ‘90년대 이후 경쟁체제를 도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과 중남미 국가들도 전력시장 자유화에 동참하고 있었다.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하고자 하는 논의는 1990년 들어 전력산업에 대한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어, 1994년 ‘민자발전사업 추진절차 개발연구(정책, 요금, 기술)’를 통해 민간 발전사의 진입이 허용되었다. 1998년 ‘발전시장 장기전망과 빈자발전 추진방안 연구’에서는 발전부문의 경쟁 확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신규설비의 일정비율을 민간에 할당하여 한전의 설비 비중을 낮춤으로써 발전부문에서 유효경쟁이 가능한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구조개편이 결정된 이후에는 2001년 ‘도매전력시장규칙 설계’, 2003년 ‘양방향시장(TWBP) 운영을 위한 제도정비방안’ 등 향후 전력시장 설계에 관한 연구와 ‘배전분할방안’, ‘송배전경제성평가’ 등 배전부문 분할방안도 검토되었다.

구조개편이나 경쟁체제 도입은 많은 부분에서 경제학 지식을 필요로 한다. 특히, 전력시장의 도입과 운영은 통상‘전력경제(power system economics)’라 하는 전력산업에 특화된 이론적 토대에서 설계된다. 전력산업을 규제적 독점체제에서 과점이나 경쟁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사회적 후생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력경제는 주로 경쟁모델을 통해 쌍무계약과 전력-풀 등을 고려하여 전력시장의 구조와 유형을 결정한다. 특히, 에너지시장은 미시경제학의 개념인 소비자 잉여, 효용함수, 한계비용, scarcity rent 등을 통해 가격이 결정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만약 가격이 균형을 벋어나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된다면 수요는 줄게 되고 생산자는 초과수익을 얻게 된다. 반대로 가격이 지나치게 낮으면 생산자의 수익 감소로 발전량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소매요금에 있어서도 최저요금이나 최대요금과 같은 지나친 요금규제는 도매가격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력시장은 전기의 특수성에 따른 전력품질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별도로 보조서비스시장을 필요로 한다. 한편 송전망 투자는 통상 지역별한계비용(LMP)을 토대로 하며, 지역의 부하변동에 따른 시스템비용 변동을 반영할 수 있는 노드 또는 지구별 가격(Nodal or Zonal Pricing)이 적용되고 있다.

우리 전력시장과 시장가격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오래된 과제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시장인지, 시장가격의 역할과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기를 파는 자는 다수지만, 사는 자는 수요독점자인 한국전력밖에 없는 반쪽짜리 시장이다.

말로는 도매시장이라 하지만 가격입찰이 아닌 사업자 비용을 평가하여 가격을 정하고 있다. 그나마 가격이 적용되는 대상도 설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한전 자회사를 뺀 나머지 민간발전사만 해당된다. 한전과 발전자회사간에는 정산계수라는 별도수단으로 손익을 조정하는 구조이다. 결국 전력시장은 있으되 실제로 기능하지 않는 특이한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가격의 시장신호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다. 이러다 보니 공기업은 과잉투자의 유인이 여전하며, 민간은 왜곡된 시장정보와 오판으로 투자실패가 빈발하여 전력산업 발전에 부담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장기능의 회복이 시급한 과제하다. 원전-석탄-가스 간에 원가차이가 큰 우리의 현실에서 유효경쟁은 쉽지 않다. 이제라도 원전, 석탄 등은 계약방식으로 전환하고, 경쟁이 가능한 전원 간에 가격입찰을 허용하다면 시장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원가가 낮은 발전기의 초과이윤 문제나 투자위험의 분산 문제도 완화될 것이다. 향후 공급안정이 우려된다면 용량시장을 개설하여 설비투자유인을 제공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번잡하고 자의적인 사업자 비용평가,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진 잡다한 계수들도 정리될 것이다.

시장참여자에 따라서는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으나, 보완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정상화되면 경쟁력 없는 자원의 진입이 억제되어 전력사업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다. 현재 방식을 지속하는 것은 전력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비효율을 방임하는 것과 같다. 이제라도 전력시장 거래와 가격결정방식을 제자리로 되돌려 전력산업을 정상화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