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를 통해 되새겨보는 ‘우리의 오늘’
‘원숭이’를 통해 되새겨보는 ‘우리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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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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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의 모델로 쓰인 모자 원숭이의 천진난만 찾을 길 없어

단장(斷腸)의 고사가 보여주는 모성애 대신에 타산만 늘어

눈앞의 이익을 쫓는 조삼모사(朝三暮四) 행태는 모두의 공동책임


우리 민족은 설날을 두고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등으로도 불렀다.

순우리말인 설날의 어원은 여럿이다. 일반적으로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설날의 어원 중의 하나로 ‘삼가다’ 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를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적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설날에는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몸가짐을 정결하게 하는 날임을 나타내고 있다.

설날은 그 해의 시작이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정중하게 맞는 날. 여기에는 지난날의 되새김이 선행돼야 한다.

원숭이해의 설날, 우리는 무엇을 되새기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원숭이가 등장하는 문화재와 고사를 통해서 ‘오늘의 우리’를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고려 청자에서 만나는 원숭이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를 안고 있다. 새끼 원숭이는 앞발을 어미에게 내밀고 있다. 이런 정겨운 모습을 포착해내 청자로 만들었다.

국보 270호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청자모자원형연적(靑瓷母子猿形硯滴)이 바로 그것이다. (간송미술관에는 청자모자원형연적 이외에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같은 국보급 청자가 있다. 청화백자로는 양각진사철채난국조충문병 등이 있다.)

연적은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작은 그릇이다. 그래서 청자모자원형연적은 높이가 10.1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다. 이렇게 작은 크기에다 원숭이 모자의 정감을 표현해 놓은 고려도공의 솜씨가 놀라운 바이다.

미술사가들은 청자모자원형연적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을 주목하여 12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12세기 후반은 고려 청자의 절정기이다. 이런 원숙함은 또한 청자모자원형연적이 당시 탐진(지금의 강진군)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탐진은 고려 청자의 최고, 최대 생산지였다.

고려 청자, 여기에서도 상감청자 아닌 순청자를 놓고 많은 이들은 그 절대의 순수함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청자모자원형연적의 원숭이 모자는 순수한 동시에 또한 정감이 어린다. 이는 곧 천진난만이다.

원숭이 모자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대로 청자로 옮겨놓기에는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야 한다. 원숭이 모자의 천진난만은 이미 고려 도공의 마음에 깃들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도공의 마음에만 있었겠는가? 고려 시대 이 땅에서 살았던 모두의 마음 속에 깃들여 있었다.

민족문화 혹은 민족정신의 원형질이 이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그 천진난만은 지금 우리의 마음 저 깊숙이 살아 있다.

원숭이해의 아침 우리에게 청자모자원형연적이 있다는 것이,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한 구절을 빌려오자면, 고마울 따름이다.

고사의 원숭이가 보여주는 모정


단장(斷腸).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이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한국전쟁 당시의 어려움을 나타낸 유행가에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있어서 우리에게 낯익은 단어이기도 하다.

단장이란 단어가 만들어진 데는 고사가 있다. 고사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것이 기록돼 있는 곳은 세설신어(世說新語)이다.

세설신어의 기록에 의하면 동진시절(東晉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해당된다) 환온(桓溫)이 서쪽의 촉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했다. 군대는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올라가서 삼협에 이르렀다. 삼협은 양자강 중류인데 양쪽에 바위 벼랑이 있어서 물살이 거세기로 소문난 곳이다. 벼랑에는 원숭이들이 모여 산다.

환온의 부하가 강가에서 원숭이 새끼를 붙잡게 됐다. 그는 원숭이 새끼를 배에 실었다. 이걸 알고서 어미 원숭이가 울부짖었다. 군대를 태운 배가 강을 따라 올라가자 어미 원숭이는 물가를 따라 쫓아오며 슬피 울었다.

배는 계속 나아가 강을 100여미터 가량 거슬러 올라갔다. 배가 강기슭에 닿자 거기까지 따라온 어미 원숭이가 배 위로 뛰어올랐다. 어미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 옆에서 죽고 말았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새끼를 잃고 너무나도 애통하여 창자가 그렇게 된 것이다.
토막 나버린 창자. 이것이 바로 ‘단장’이다.

세태가 험악해져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다툼이 흔하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지는 오래다. 지난 연말에는 자식을 강물에 빠뜨린 아버지도 있었다.

환온은 원숭이 새끼를 배에 실은 부하를 매로 두들겨 내쫓아버렸다고 한다. 원숭이 모자의 정을 외면한 그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부모 자식간의 정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아왔다. 효(孝)는 모든 행위의 근본(百行之本)이었다.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너짐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부하를 내쫓은 환온의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무리들


조삼모사(朝四暮三)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아는 4자성어이다. 여기에 관련된 고사도 잘 알고들 있다.

중국의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저(狙)는 원(猿)처럼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이다. 그는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저공과 원숭이들은 서로 마음을 통할 정도가 됐다.

원숭이들이 많아지자 식량이 문제가 됐다. 저공은 원숭이 먹이를 줄이기로 맘먹었다. 그는 원숭이 한 마리에게 매일 도토리 일곱 개를 주기로 하고 이렇게 말했다.

“원숭이들은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朝三暮四]' 받는다."
저공의 말에 원숭이들은 화를 냈다. 줄 참이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라는 거였다. 저공은 정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원숭이들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삼모사의 고사는 열자(列子)의 황제편(黃帝篇)과 장자(莊子)의 제물편(齊物論)에 나온다. 그 뜻은 문자 그대로 하면 아침에는 도토리 세 개, 저녁에는 도토리 네 개가 되는데 ‘눈앞의 이익만을 알고 그 결과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이와 함께 조삼모사는 또 다른 비유로도 쓰인다. ‘잔꾀로 남을 속이는 짓’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조삼모사의 비유가 ‘눈앞의 이익만을 알고 그 결과를 모르는 어리석음’이라고만 알고 있다. 미련한 원숭이들을 떠올리면서 남들 또한 그렇게 미련하다고 여긴다.

고사에서 보듯 원숭이만 있는 게 아니다. 원숭이를 속이는 저공이 있다. ‘눈앞의 이익만을 알고 그 결과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있다면 그들을 ‘잔꾀로 속이는 사람’도 또한 있다.

죄는 혼자 저지르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방조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삼모사 고사는 모두를 포함한다.

어리석은 원숭이도 나쁘고, 그를 속이는 저공도 나쁘며, 그것을 보고만 있는 우리도 나쁘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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