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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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0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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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이꾸꼬(井上 郁子)

이노우에 이꾸꼬(井上 郁子)는 1971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지난 94년 유학차 한국에 건너와 서울대 어학연구소 등에서 수학했다. 지난 2000년까지 ‘한스걸’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 ‘남자친구와의 사연’ 등을 게재하며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도 했으며 현재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지난 99년부터 경기대학교 어학교육원 전임교수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인정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오늘도 달빛을 벗삼아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나이 30을 넘어 ‘앞으로 20수년 밖에 살지 못할지도…’라고 생각하니 요즈음 들어 ‘운명’이라든가 ‘인연’이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일본어로는 그냥 ‘緣(연)’이라 하는 이 단어의 뜻은 사전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을 맺는, 사람의 힘을 초과한 신기한 힘. 운명적인 만남’

아침 지하철 탈 때 옆에 앉은 아저씨나 계단을 올라갈 때 엇갈리는 초등학생, 학교 식당에서 매일 인사하는 아주머니들도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친구로써 깊이 사귀어 온 사람들도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친한 일본친구들, 초등학교시절의 선생님, 친동생, 친언니, 여행친구들, 어학당 시절에 재미있게 같이 공부한 친구들, 그리고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헤어진 친구들… 수없이 머리 속에서 여러 추억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영향의 깊이와 폭을 감안한다면 역시 어머니를 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일에 성실한 아버지와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께 자주 듣던 이야기는 나를 유산할 뻔했다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수영과 등산을 좋아하신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내가 뱃속에 있는 것도 모르고 친구와 3000m 이상의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그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만약 애기를 가지면 이름을 <馬子(말자)>로 할까?”

그 산 이름이 白馬山(백마산)이란 이름이라서 그랬다는데, 나는 어머니가 그 생각을 취소해 준 것에 감사한다.

어쨌든 그런 농담을 하시던 어머니는 병원에서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유산한다는 말을 듣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3kg도 안 되는 작은 아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나에게 글이나 산수 같은 공부를 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나의 손을 잡고 산책할 뿐이었다. 공원에 가서는 꽃을 보고, 논에 가서는 봄이 온 것을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매일 잘 걸었다고나 할까.

어머니는 내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대신 지금 아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잘 관찰하셨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또한 남 달리 곤충이나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아이였다.

그것을 보고 있던 어머니는 책을 한 권 사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은 곤충 책이다.

사진은 아니었지만 실물과 같이 컬러로 그려졌고, 곤충들의 이름·생식지·특징이 함께 설명돼 있었다. 일종의 사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것을 매일 봤다. 그리고 카타카나로 쓰여진 곤충들의 이름을 어머니께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셨다. 2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가서 많은 책을 빌려오셔서 주무시기 전에 읽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이 되면 책이 많이 있는 옆 동네 도서관까지 높다란 언덕을 넘어 빌리러 갔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좋아했던 것은 주로 셜록 홈즈 등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었다. 얼룩모양의 뱀이 사람을 해쳐간다는 이야기는 자기 전에 읽으면 꿈에 나올 것 같아 무서웠지만 두근거리면서 몇 십번을 읽었다.

도서관 이외에도 집에는 아버지의 서재가 있었는데 그 서재도 나에게는 보물창고였다. 한국신화 책이나 ‘서형제옥중(徐兄弟獄中)에서의 편지’란 책도 거기서 읽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는 밖에서 잘 놀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했는데 어떻게 보면 나와 한국과의 시작은 아버지의 서재였을지도 모른다.

노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놀이에 대해 첨언한다면, 내가 어릴 때는 학교가 끝나면 밖에서 놀다가 5시에 집에 가는 것이 일과였다.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8시였다.

때문에 피아노 연습도 8시까지라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닌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밖에서 잘 놀았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현관에 던져놓고는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는 ‘도둑과 경찰’이란 놀이었다. 도둑팀과 경찰팀으로 나눠 경찰팀이 100까지 세는 사이에 도둑팀이 도망간다는 놀이인데 우리는 그 룰은 개조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예를 들어 경찰팀에 보물을 놔두고 경찰은 그것을 지켜야 한다든가, 경찰은 자전거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도망가는 도둑을 경찰이 자전거로 쫓는 것이다. 참으로 스릴이 넘쳤다. 노는 범위도 500m를 넘어 집에 가는 5시까지는 정말 많이 달리고 놀았다.

또 하나 좋아했던 놀이는 논이나 산에서 노는 것이었다. 산에는 ‘기지’를 13개까지 만들어 친구들과 “오늘은 **기지에서 보자!”고 하고는 거기서 모여 놀았다. 논은 봄부터 여름까지 놀기에 좋은 장소였다.

3월 중순쯤에 되면 꼭 뚜꺼비 알을 잡아 와서는 꼬리가 없어질 때까지 집에서 키웠다. 가재도 잘 잡았고 때로는 뱀도 잡아왔다.

그러다보면 팔다리에 흙이 묻어 돌아오기 마련이지만 마당에 있는 수도로 가볍게 씻고 집 안에 들어온다. 아마 다른 어머니였다면 금지했을지도 모르지만 내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안하셨다. 단 흙투성이가 된 구두를 씻는 것은 나의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는 노는 것이 공부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번도 학원에 가라고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배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더 기다려라”

2학년, 3학년 때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조금 더 기다리란 말씀이셨다. 그리고 4학년이 된 어느 날, 내가 다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럼 배워라”

처음에는 피아노도 없이 집에 있는 낡은 오르간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중고 피아노를 사주셨다. 매우 기뻤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왜 1학년 때 배우게 하지 않았을까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답변은 “정말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지 알고 싶어서”였다.

생각을 해보니 어떤 것을 배우기 시작하고 금방 그만두는 애들이 많다. 어머니는 아마도 그러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의 교육법은 아이가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 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를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낌 없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반면 그냥 돈을 주시는 일은 설날 외에는 없었다.

용돈은 집안 일을 해야만 조금 주셨다. 예를 들어 나는 빨래, 남동생은 설거지나 욕조에 물 담기 등이다. 매일 하면 용돈을 주시고 하지 않으면 그만큼 적어졌다.

용돈은 그렇게 주셨지만, 내가 중학교 때 몇 번 전국대회 유화부문에서 상을 받고 나서는 필요할 때 물감과 도구를 사주셨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언젠가 엄마 얼굴 그려줘”
그 반면 대학교 입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으셨다. 내가 학교추천으로 국립대학교 시험을 치고 떨어졌을 때 어머니는 느긋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 추천 받으면 다 합격하는 줄 알았네”

실제로는 시험장에서 만난 7명중 합격한 학생은 한 명 뿐이었는데 떨어진 나도 꽤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다음 말씀은 조금 무서웠다. “사립도 떨어지면 우리 집은 재수는 안 된다. 취직해”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은 고등학생이었지만 아직 취직은 하기 싫다는 생각에 사립대 시험날까지의 한 달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운 좋게 입학, 졸업, 그리고 취직을 했다.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님 말씀은 “가도 되지만 학비는 스스로 벌어라”

그런 분이셨으까 내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그냥 가고 싶다는 이야기로는 허락해주지 않으실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어 라디오 강좌를 아침과 회사 끝나고 잘 때까지의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들었다. 대학교 입시 때 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유학비용을 모았다.

1년 후 한국어 시험 4급도 합격하고 비용도 반을 모았을 때,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다. “저, 한국에 유학 가고 싶은데요. 돈도 반은 모았고 4급까지는 합격했어요”

어머니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갔다 와. 하지만 비용은…… “
어머니는 특별히 돈으로 뭔가를 지원해주시지는 않았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해주셨다.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내가 한국에 와서 힘들었을 때, 집에 국제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물었다.

“몇 개 고민이 있는데?”
“큰 고민이 하나 있고 작은 고민이 3개”
3주 후 무엇인가 큰 소포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천으로 만들어진 큰 가방이 하나, 작은 가방이 3개가 있었다. 어머니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가 아니지만 고민은 모두 가방 안에 말하고 닫으렴”
나는 어머니의 그런 특이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정을 좋아했다.
그 때 어머니는 또다른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이 말은 지금도 나에게 도움이 된다.

“고민이란 것은 고민을 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고민하는 거야. 바쁘면 고민 같은 것은 없어진다”
몇 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 어머니가 창고에서 상자를 꺼내왔다.

“이제 슬슬 정리해도 괜찮겠지?”
내가 2,3살 때 그린 낙서나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모두 보관해두셨는지…… 한 장 한 장 깨끗이 정리되어 상자 안에 보관돼 있었다. 이럴 때 나는 어머니의 정을 느낀다.

내가 언젠가 아기를 가졌을 때, 관찰력 있으면서 따뜻한 정이 묻어나는 어머니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마도 아기의 손을 잡고 매일 산책은 할 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어머니가 지난 번에 귀국했을 때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꾸꼬하고 앞으로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그렇다. 현재 우리는 1년에 많이 만나야 한 달도 못 만난다.
환갑 넘으신 어머니가 많이 사셔도 20년? 앞으로 어머니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2년 남짓 밖에 안되는 것이다. 나도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아직까지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은 서투르다. 하지만 서투르게 그려도 어머니는 기뻐해주실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귀국할 때는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

물론 부모님 이외에도 좋은 만남이 있었고, 전기산업신문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인생 중에 큰 영향을 준 소중한 인연이 있었을 것이다. 인연이란 것은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지만, 나는 좋은 인연은 살아가는 데 커다란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과의 좋은 추억들을 자신의 원동력으로 삼아 열심히 살아간다면 반드시 나머지 20수년안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는 무교지만 만약 하나님이라든가 운명, 인연이라는 신기한 힘이 있다면 그런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장소를 빌려 말하고 싶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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