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의 원전센터 유치 건의문 의미
과학적 논리만 앞세우며 국민정서 외면해 온 관행 반복
서울대 교수들의 원전센터 유치 건의문 의미
과학적 논리만 앞세우며 국민정서 외면해 온 관행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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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1.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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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사태 해결에 큰 도움 안될 듯·주민정서 바로 읽어야

‘부안사태를 염려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이 서울대학교에 핵폐기물 시설을 짓자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 황우석 수의과대 교수, 이무하 농생대학장, 오연천 행정대학원장 등 63명이 서명한, 핵폐기장을 서울대학교 지하에 짓자는 건의문이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제출된 것이다.

‘부안사태를 염려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이 발표한 건의문은 핵폐기물을 처분장에서 보관할 때 안전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건의문은 원전수거물 관리센터와 같은 핵폐기물 시설을 서울대 지하에다 유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부연하고 있다.

또한 이런 건의문을 발표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이런 엄동설한에 왜 부안에서 아이들이 밤마다 촛불을 들고 나가고 시골 아낙네들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쳐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부안 사태를 둘러싼 갈등에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혐오시설을 자진해서 유치하겠다고 나선 일’ 자체만 놓고 볼 때는 환영할 만한 일인 듯하다. 혐오시설을 타지역에 설립하는 일은 찬성해도 자신의 터전에다 설립하는 것은 반대하는 현실에서 이번 제안은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 당연히 ‘부안사태를 염려하는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의 건의는 언론 매체에 대서특필되됐다.

그러나 이번 건의문은 부안사태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도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안사태에 관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건의문의 큰 개요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반대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만 부안사태의 근본은 안전 문제만이 아니다.

부안사태는 핵폐기물이 안전하다는 게 입증되기만 하면 바로 해소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안사태가 지난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것은 논리의 문제에서 비롯한 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주민들의 정서가 깔려 있었다. 핵폐기장이 논리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그것을 부안 주민들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여론 정치라고 한다. 이 때의 여론은 논리적인 공공의 의견(public opinion)만이 아니라 공공의 감정(public emotion)까지 포함한다. 이런 사실이야 이번 건의문을 제출한 서울대 교수들도 잘 알 터이다. 그런데도 건의문에서는 이런 공공의 감정을 외면했다.

이번 건의문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건의문과 관련해 관악구청은 즉시 반대의사를 발표했다. 관악구청은 건의문이 발표된 당일 성명서를 내고 ‘교수들의 경솔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라고 말함으로써 이번 건의문을 해프닝으로 여긴다는 뜻을 드러냈다.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단체와 사람들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전제한 후 반대의 발언을 했다.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부장이 과학기술 지상주의라고 비판한 것이 한 실례이다.

진정 부안사태를 염려한다면 돌출적인 발언이나 행동 대신 주민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결정된 일이라면 공공의 감정이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은 부안사태의 당사자인 정부만이 아니라 ‘부안사태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 사회에도 적용된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번 건의문은 과학적 논리만 앞세우며 부안 주민의 감정은 외면했다. 이는 2003년도에 부안사태와 관련해 산자부와 한수원이 매달렸던 관행인데, 건의문을 제출한 교수들 역시 그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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